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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간만에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 한창 걷고 있는데 어르신 한 분이 내 앞을 막아섰다. “나, 집 좀 찾아줘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디 사시는지 여쭙자 갑자기 기억이 안 난다고 답하셨다. 순간 난감했다. 경찰에 신고할까 고민하다 직접 가족에게 알리기로 했다. 어르신께 휴대전화를 건네받았다. ‘아내’라는 번호로 전화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곧바로 ‘아들’이라는 이름을 찾아 눌렀다. 긴 벨소리 끝에 통화가 연결됐지만,보험관련주
속히 오기는 어렵다고 했다. 알고 보니 어르신은 가벼운 인지장애를 앓고 계셨다.
그 대신 주소를 듣고 집까지 모셔다드리기로 했다. 가는 길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어르신은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오래 했다고 말씀하셨다. 현재는 부부만 사는데, 아내가 잠깐 외출한 사이 멀리 나섰다가 길을 잃으셨다. 나이 들면서 통 꼼증권사
짝하지 않아 완전히 맹꽁이가 됐다며 우울해하셨다. 집에 도착해서는 연신 감사함을 표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왠지 모를 불안감도 엄습했다. 오래 걸으며 생각한 끝에 퇴직 이후 생애를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에 관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퇴직 후에도 긴 노년의 삶이 남아 있다. 요즘 사람들은 2011추천주
오래 산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긴 지 오래다. 단순 계산으로 50세에 퇴직하면 30년, 60세에 퇴직하면 2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이제 퇴직은 인생의 끝이 아닌 중간 지점이 돼버렸다.
문제는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보내느냐다. 그 기간이 텅 빈 상태로 지나갈지, 값어치 있게 채워질지는 온전히 내 선택에 달려 있다. 고심만 하다 끝바다이야기게임
내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무심코 흘려보낸 세월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무엇을 하려 하지 않으면 그저 사라질 따름이다.
둘째, 건강과 시간은 함께 있을 때 가장 소중하다. 퇴직하니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다. 하고 싶었던 일을 맘껏 할 수 있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아무오리지날 양귀비
리 많아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혼자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그 시간은 의미를 잃는다.
반대로 건강은 있는데 시간이 없어도 마찬가지였다. 직장 다닐 때가 그랬다. 몸은 멀쩡한데 시간이 부족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여행도 운동도 일단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하면 된다고 넘겨버렸다. 그런데 그 나중이 왔을 때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건강과 시간,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있는 시기는 드물었다. 그 순간이 바로 퇴직한 지금이다.
셋째, 여전히 나는 젊은 나이이고 많은 걸 할 수 있다. 퇴직하고 나니 나이를 의식하게 됐다. 늙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처음 모임에 나가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몇 안 됐다. 구직 과정에서 여러 번 연령 제한에 걸린 경험도 한몫했다. 무언가 시작하려다가도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회의가 먼저 들었다. 어느덧 스스로 선을 긋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이로 구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사실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로 한 거였다. 낯선 언어를 배우지 않은 것도, 새로운 악기를 익히지 않은 것도 모두 불가능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시작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미루는 가운데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젊음이란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느냐에 관한 문제다. 신체적 노화보다 심리적 노화가 더 큰 벽이다.
그날 만난 어르신은 내 앞날을 연상케 했다. 막연한 노년기의 이미지가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30년 이후를 마주하게 했다. 혼자 멀리 나왔다가 길을 잃으신 그 헤맴이, 무언가 하려다가도 기어이 하지 않기로 결정해버리는 내 모습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남겨진 날들은 미래의 나를 위해 쓰겠노라고. 이제부터는 ‘못 한다’라는 말 대신에 ‘해보자’로, ‘나중에’가 아닌 ‘지금’으로 행동의 기준을 바꾸기로 했다. 그 출발점으로 매일 근력운동을 하고 매달 디지털 신기술을 하나씩 익히기로 마음먹었다. 작지만 반복되는 이 루틴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지 않을까.
여기서 제일 큰 걸림돌은 나 자신이다. 돌아보면 이제껏 안주하려는 습성이 번번이 내 발목을 잡아왔다. 무심코 미루고 또 미루다 보니 내 삶의 반경이 좁아져 있었다. 게다가 가면 갈수록 무감각해지기까지 했다. 어쩌면 세월이 흘러 나도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과거의 나를 원망하지 않도록 오늘을 충실히 살기로 했다. 미루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는 것, ‘퇴직 후 잘산다’라는 말은 그런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의미라고 믿는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