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화, 그리고 비아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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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라유빛 작성일25-12-13 08:03 조회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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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화, 그리고 비아그라
1. 대화가 관계를 결정한다
사랑은 말로 표현해야 한다. 이 말이 식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관계를 오래 유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연인 사이에서 대화는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니라 감정을 나누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면 연인에게 사랑받는 대화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대화법이 비아그라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단순히 말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하느냐다. 효과적인 대화는 연인의 마음을 열고,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감정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교류 역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여기서 비아그라가 등장한다. 대화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처럼, 비아그라는 관계를 더욱 깊고 만족스럽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화법
1 상대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라
대화를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잘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그 말 들으니까 나도 기분이 좋아지네.
너무 멋진 생각이야. 역시 넌 다르다니까
이런 반응은 상대방이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적 안정감은 관계의 모든 부분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 문제 해결보다 공감이 먼저다
많은 남성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연인의 고민을 들으면 해결하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이다.
예를 들어, 연인이 오늘 직장에서 너무 스트레스 받았어.라고 말하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좋다.
잘못된 예: 그럼 그냥 신경 쓰지 마. 회사는 원래 그런 곳이야.
좋은 예: 정말 속상했겠다. 요즘 회사에서 힘든 일 많아 보여서 걱정했어.
이렇게 반응하면 상대는 이 사람이 내 감정을 이해하고 있구나라고 느낀다.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심리적 친밀감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3 애정 표현은 구체적으로
사랑해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애정 표현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해야 더 큰 효과가 있다.
오늘 입은 옷이 너무 잘 어울려. 정말 매력적이야.
너랑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그만큼 즐겁다는 거겠지?
네가 웃는 모습 보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져.
이런 말들은 상대방을 특별하게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감정적인 교류가 쌓이면, 신체적인 친밀감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3. 대화와 비아그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좋은 대화가 관계를 가깝게 만든다면, 그 관계를 더욱 깊고 만족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비아그라다.
많은 남성들이 나이가 들면서 성적인 변화를 겪는다. 호르몬 감소, 피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예전과 같은 활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자신감 저하와 관계 소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비아그라다.
비아그라는 신체적인 변화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변화도 가져온다.
나는 아직 충분히 매력적인 남자다.
연인과 더 깊은 친밀감을 나눌 수 있다.
이제 걱정 없이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는 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신감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대화도 활기차고 긍정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결국 더 깊은 감정적, 신체적 친밀감으로 이어진다.
4. 비아그라의 효과적인 사용법
비아그라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기억해야 한다.
적절한 타이밍 성관계 30~60분 전에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공복 상태에서 복용 추천 지방이 많은 음식과 함께 섭취하면 효과가 늦어질 수 있다.
하루 1회 복용 원칙 과다 복용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정 약물과 병용 금지 질산염 계열 약물과 함께 복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사항을 지킨다면 비아그라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연인과의 관계를 더욱 만족스럽게 만들어줄 것이다.
5. 대화비아그라 = 완벽한 관계
사랑받는 대화법을 익히고, 비아그라를 적절히 활용하면 관계는 더욱 깊고 만족스럽게 변한다.
대화로 감정적인 친밀감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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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연인 관계는 더욱 견고해진다.
비아그라는 단순한 발기부전 치료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감을 회복하고, 연인과 더욱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다.
사랑받는 대화법을 배우고, 비아그라와 함께 더 깊고 뜨거운 관계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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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mega.info
언제부터, 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명료했던 정신은 술에 절여지고, 깨끗했던 육체는 육욕에 찌들었다. 술에 취한 사내들은 응당 가야 할 곳이라도 되는 양, 매음굴로 향했다.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 같은 아내의 얼굴은 희뿌옜다. 취기는 감각을 마비시켜서, 도덕과 윤리는 취객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윤락녀와 한바탕 뒹굴고 온 사내는 코 골며 잠이 들거나, 자지 않으면 가족을 두들겨 팼다. 가족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망나니나 진배없는 가장이 그저 침실로 직행하기를 바라고 바랐다.
“술과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매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법이지.” 알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 거리의 살롱’. 1894년.
술과 매춘이 만연한 사회. 가정은 무너지고, 도덕은 넝마가 되어버린 나라. 일련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잃어버린 가치를 되살리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경건하고, 순백의 마음으 사이다쿨 로 돌아가야만, 잃어버린 에덴동산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 ‘신의 사도’들이었다.
사탄의 도시에서, 신의 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이들은 대규모 사회 정화 운동을 벌였다. 술집, 윤락업소 앞에서 서로 팔짱을 끼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탄의 행위를 중단하라”고 목청껏 외쳤다. 외침이 절실하고 눅진하여서, 목소리가 정치권에 릴게임다운로드 까지 닿아 도시에서 매춘과 주류 판매가 정지됐다. 1920년 미국의 ‘금주법’ 얘기다.
사회를 정화하려는 순결의 운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를 한층 더 사탄의 집으로 밀어 넣었다. 모든 죄악의 행위가 물밑으로 숨어들어서, 사회 전역으로 파고들었다. 한낱 불량배가 금주법 이후 ‘그림자 경제’(Shadow Economy)의 돈을 쓸어 담아 야마토연타 대부호가 되기도 했다. ‘금주법’이 남긴 역설이었다.
“술과의 술푼 이별입니다.” 금주법 기간 중 주류 폐기.
미국, 새로 선 나라의 고단함
미국은 1 릴짱 776년 영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홀로 서겠다는 미국의 의지는 가상했지만, 바람은 찼고, 땅은 황량했다. 미국인은 광활한 광야로 나아가면서, 원주민과 싸우고, 들짐승을 죽이며, 거친 땅을 개간했다.
새 땅에는 도덕과 윤리가 미처 뿌리 내리지 않아서, 바깥일에 고단한 남자들은 술로써 피로를 씻어냈다. 깨끗한 물을 발견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만취한 사내들이 깽판을 치는 일도 자주 벌어졌지만, 나름 사내다운 배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프런티어(개척자)가 되려는 사내는 자고로 거친 자유를 즐길 줄 알아야 하고, 술·도박·매춘으로 연대를 맺을 줄도 알아야 했다. 점잔빼는 인사들은 샌님 취급을 받으며 구석으로 밀려났다. 새로 개척된 도시에는 교회와 법원보다, 술집과 매춘업소가 먼저 둥지를 틀었다.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당시 포스터.
동부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유럽 전역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포부를 안고 몰려오는 사람들로 항구는 북적였다. 사방팔방에서 오는 사람들 간의 만남은 종교의 충돌이었고, 가치관의 부딪침이었다. 이민자들은 서로 자기 말이 옳다며 악다구니를 놀리다가 종국에는 어깨동무하며 술 한잔을 걸쳤다.
취기가 오르면 매춘업소로 종종걸음을 쳤다. 19세기 미국은 술과 매춘의 나라였다. 뉴욕에만 해도 19세기 중반 매춘업소가 600개나 됐을 정도였으니까. 40년 만에 3배나 늘어난 수치였다.
“너 고향이 어디여?” 1900년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
“우리 다시 신의 나라로 돌아갑시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광활한 바다를 건너온 곳 아니었던가. 청교도가 누구인가. 누구보다 신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사탄의 타액에 젖어, 고주망태가 되고, 난봉꾼이 되어버린 미국을 그들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제 성경을 다시 펼 시간이었다.
신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율법에 맞춰, 알코올에 젖은 인간을 성수로 해독할 차례였다. 술과 매춘에서 벗어나, 다시 경건한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외침. 1820년대부터 본격화된 대각성(Great Awakening) 운동이었다.
“이 놈의 술통 다 깨부수자.” 1874년 금주법 지지 만평.
지지는 들불처럼 번졌다. 술에 취한 가장에게 두들겨 맞은 아내들, 일하지 않은 아버지 밑에서 배를 주린 아이들, 주폭에 지친 선량한 시민들이 운동에 동참했다. 음주와 매춘은 더 이상 개인의 악행으로 치부되지 않았다. 가정 파괴의 원인이었고, 더 나아가 국가와 사회를 좀먹는 바이러스였다.
운동에 감화되어, 성스런 운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인물들이 해마다 늘어나서, 금주 조직은 비 온 뒤 죽순처럼 늘어났다. 1874년에는 ‘여성 기독교 절제회’가, 1893년에는 ‘반(反) 살롱 동맹’이 결성됐다. 신의 뜻을 전하자는 참된 목소리에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크게 감동하여서, 일부 지역에서는 ‘주류 판매 금지법’이 통과됐다. 세상은 시나브로, 바른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진보시대’(Progressive Era)의 막이 열리고 있었다.
알코올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묘사한 1910년 만화.
금주법의 시작
1917년, ‘금주법’의 판이 크게 벌어졌다.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의 불똥이, 바다 건너 미국에 튀어서였다. 독일군은 북해 앞바다의 민간 함선에까지 대포를 쏘아댔는데, 미국 국적의 배가 침몰했다. 고장 난 테이프처럼 “중립”만 노상 외쳐대던 미국이 1917년 참전을 결정했다.
전쟁은 총기의 화력이 아닌 밥심으로 결정되는 법이어서, 미국 정부는 군량 확보에 주력했다. 풍요로운 들에서 생산되는 ‘밀’이 오직 빵을 위해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미국의 아들들이 독일의 총탄에 스러져 가는 마당에, 귀한 밀로 술을 빚는 이들은 역적 취급을 받아야 했다.
특히나 ‘맥주’를 만드는 이들은 매국노로 손가락질받았는데, ‘맥주=독일’이라는 인식이 퍼져서였다. 미국의 아들들의 배를 채울 밀을, 적국 독일의 음료를 만드는 데 쓸 강심장은 없었다.
“독일 맥주 맛있어 안맛있어?” 1917년 미군에 못을 박는 독일군을 묘사한 만평.
정부는 반독일 정서를 불쏘시개 삼아서 ‘금주법’의 열기를 지폈다. 전시 금주법이 전쟁 중 도입됐는데, 그 지지가 열화와 같아서, 전쟁이 끝난 뒤에도 금주법은 알코올을 만난 불처럼 더욱 커졌다. 1918년 수정헌법 1조로 주류 판매 금지의 토대가 놓이고, 1920년 1월 ‘볼스테드 법’으로 쐐기를 박았다. ‘모든 주류의 제조·판매·운송을 전면 금지한다.’
드디어 신의 목소리가 인간의 법으로 새겨지는 순간이라며, 복음주의자들은 목놓아 울었다.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알코올을 사랑하는 지도자여서, 자신의 엄청난 주류를 워싱턴 자택으로 몰래 옮겼다. 후임자인 워런 G. 하딩도 마찬가지였다.
“자, 마지막 바겐 세일.” 버드와이저가 1919년 마지막 판매 판촉을 벌이고 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사탄의 도시가 정화되고 있었다. 취한 이가 없었고, 취기를 못 이겨 여자를 찾는 사내들이 줄었다. 1인당 알코올 소비가 75%나 급감하면서였다. 맨정신의 남자들은, 멀뚱히 앉아 눈만 꿈뻑꿈뻑 거리거나, 객쩍게 농담만 늘어놓다가,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취객과 함께 술집이 사라지자, 도시는 성스러운 여인들과 순진한 아이들의 것으로 보였다. 악에 대한 성전에는 승전보만 가득해서, 음주와의 전쟁은 종식된 것 같았다.
난파된 자동차와 술을 압수한 경찰관. 1922년.
사라진 건 취객과 난봉꾼만이 아니었다. 경제는 줄기로 얼기설기 얽힌 복잡계로 이뤄져 있는 법이어서, 술집이 폐쇄되자, 양조장이 문을 닫았고, 이 술을 배달하면서 먹고 사는 트럭운전사, 술병을 만들면서 자식을 먹이는 병 제조업자,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바텐더와 음악가들도 도시에서 자취를 감췄다. 금주법으로 직접적으로 일 자리를 잃은 사람만 25만명. 그 여파에 휩쓸린 이들의 숫자는 측정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정부도 깨끗한 도시에 웃지 못했다. 세수의 큰 부분인 주류세가 완전히 사라져서였다. 1920년대 사라진 주류세만 해도, 11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 술을 완전히 증발시키겠다’고 선언한 지도자들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주류 단속은 매년 이뤄져야 했는데, 이 비용만 해도 연간 3억 달러 이상이 소요됐다. 벌어들이는 돈은 무참하게 줄었는데, 써야 할 돈은 곱절로 늘어난 셈이었다. 차라리 돈은 사소한 문제였다. 더욱 가혹하고, 더욱 모진 후폭풍이 미국으로 몰려오고 있어서였다.
도시가 메마르면(음주가 없으면) 매일매일이 일요일 같을 것이다라는 문구. 금주법 홍보 포스터.
인간, 술 냄새를 그리워하다
인간은 7000년 동안 술을 마셨다. DNA에 알코올이 깊이 각인돼 있다는 의미여서, ‘금주’란 사실상 불가하다는 걸, 미국의 복음주의자들과 정치인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인간은 술 생각이 절실했다. 입 한가득 술을 채울 수 있다면, 뭉칫돈이라도 꺼내 놓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명민한 사업가들이 금지된 술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
나라가 금지했지만, 업자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면서 술을 만들어 팔았고, 주당들은 얼마 만에 맡는 술 냄새냐면서 지갑을 기꺼이 열었다. ‘금주법’라는 이름의 위험수당이 붙어서 술값은 미친 듯이 올라갔다. 맥주 가격은 700%, 브랜디는 400%, 위스키는 270%나 뛰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줄었지만, 알코올에 소비되는 가격은 외려 늘었다. 술에서 돈냄새가 진해지자, 술판이 커졌다. 조직적으로 이 판에 뛰어든 집단이 있었다.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 보스턴의 마피아들이었다.
불법 증류 장비를 재현한 모습. [사진출처=Joe Mabel]
마피아에게 술 사업은 ‘식은 술 먹기’나 다름없었다. 해안선과 국경선 경비대원들에게 돈을 먹이면, 술로 가득 찬 배와 트럭이 가뿐히 미국 땅에 들어왔다. 밀수로 제법 돈을 만진 마피아들은 외국 술로 만족하지 못해서, 비밀 양조장과 증류시설에서 ‘밀주’를 직접 만들어 팔았다.
싸고 구하기 쉬운 산업용 알코올을 가져다 술을 만들자, 정부가 술 생산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으려고 산업용 알코올에 유독성 물질을 넣을 것을 강제화 했는데, 마피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짜술을 만들어 팔았고, 미국의 여러 고주망태는 ‘독주야말로 참 것’이라면서 호기롭게 가짜술을 들이키다가 죽어버렸다. 수만명의 사상자가 나왔지만, 이들의 사업은 멈춰 서지 않았다. 인간은 좀처럼 술을 끊지 못했다.
“밀수범은 우리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좋은 친구지.” 미국 해안경비대 말 순찰대.
마피아가 지배한 미국
동네 부랑배에 지나지 않았던 마피아들은, 인간에게 다시 술을 먹임으로써, 재벌 못지않은 부를 누렸다. 알 카포네, 럭키 루치아노, 마이어 랜스키, 너키 존슨. 그 이름도 유명한 마피아들이 금주법을 기반으로 대성한 깡패들이었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금주법 날 키우시니...”. 이탈리아 출신 미국 마피아 알 카포네.
술에 다시 입을 댄 시민들은 눈이 돌았다. 1년 동안 응축된 욕망이 고삐풀린 말처럼 풀려버렸다. 비밀 술집인 ‘스픽이지’가 곳곳에 생겨났다. 금주법이 생겨나기 직전인 1920년 뉴욕에는 합법적 술집이 5000곳이 있었는데, 5년 만에 스픽이지는 3만2000곳으로 불어났다..
금주법으로 인해 외려 더 많은 술집이 독버섯처럼 번진 것이었다. 과거에는 술집에서 나오는 세금이 정부로 향했지만, 스픽이지의 돈은 100% 마피아에게 흘렀다. 마피아는 이 돈을 기반 삼아, 매춘업, 도박소로 영업을 확장했다. ‘신의 사도’들이 기함하던 것이었다.
“자 여기서 좀 놀다 가세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의 사창가 거리. 높은 범죄율로 ‘살인만’(Murder Bay)로도 불렸다. 왼쪽 나무에 서 있는 남자들은 호객꾼이다.
금주법이 남긴 교훈
나쁜 짓은 몰래했을 때 더 짜릿하기 마련이어서, 지하경제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1927년 당시 불법 주류 시장이 연간 매출 3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 전체 GDP의 5%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시카고 기반 마피아 알 카포네의 조직은 한 해 동안 1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단속반은 매년 덩치를 키웠지만 소용없었다. 알 카포네가 달콤한 뒷돈을 먹여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마피아가 경제를 움켜쥐면서, 서로 간 이권다툼에 피가 튀겼다. 살인율은 1920년 인구 10만명당 5.6명에서, 1920년 중반 10명 수준까지 올랐다. 폭력 범죄, 재산 범죄 사건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경찰·행정력이 금주 단속에 집중되면서, 민간 치안력이 헐거워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진 술이 알카포네 건 아니겠지...” 밀주를 단속하는 경찰.
시민은 금주법이 같잖았다. 그 누구도 지키지 않으면서, 오히려 도시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짙게 취하고, 더 난잡하게 놀았으며, 더 거칠게 굴었다. 법은 지켜도 그만,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겠다는 금주법 13년. 미국의 선은 흐릿했고, 악은 완연하여서, 도시는 사탄의 것으로 보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맥주 한 잔 하기에 좋은 시간이군요(I think this would be a good time for a beer)”라고 말했다. 금주법 폐지에 서명했고, 정책이 실패했음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었다. 법으로써 세상을 바로 세우겠다는 선한 인간들이 만든 악한 결과물. 주정뱅이의 문뱃내를 완전히 없애려고 한 위대한 사회적 실험이 경제사에 진득한 교훈으로 남은 셈이었다.
“미국은 이제 맥주 한잔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 1935년 8월 14일 사회보장법에 서명하는 루스벨트. 기사 내용과는 관계 없음.
“13년만의 술은 더욱 달콤하구나.” 1933년 금주법 폐지를 축하는 미국인들.
<네줄요약>
ㅇ1920년 미국 사회는 술과 매춘으로 만연한 사회를 정화하겠다면서 ‘금주법’을 도입했다.
ㅇ초기에는 술 소비량이 대폭 줄어 성공한 듯 보였지만, 곧 밀수와 밀주가 성행하면서 ‘지하 경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ㅇ밀주를 마피아들이 주도하면서 알 카포네, 럭키 루치아노와 같은 재벌급 마피아들도 등장했다.
ㅇ도입 13년 후 루스벨트 대통령이 금주법 폐기 법안에 결국 사인하면서 사회를 선하게 만드려는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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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매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법이지.” 알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 거리의 살롱’. 1894년.
술과 매춘이 만연한 사회. 가정은 무너지고, 도덕은 넝마가 되어버린 나라. 일련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잃어버린 가치를 되살리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경건하고, 순백의 마음으 사이다쿨 로 돌아가야만, 잃어버린 에덴동산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 ‘신의 사도’들이었다.
사탄의 도시에서, 신의 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이들은 대규모 사회 정화 운동을 벌였다. 술집, 윤락업소 앞에서 서로 팔짱을 끼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탄의 행위를 중단하라”고 목청껏 외쳤다. 외침이 절실하고 눅진하여서, 목소리가 정치권에 릴게임다운로드 까지 닿아 도시에서 매춘과 주류 판매가 정지됐다. 1920년 미국의 ‘금주법’ 얘기다.
사회를 정화하려는 순결의 운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를 한층 더 사탄의 집으로 밀어 넣었다. 모든 죄악의 행위가 물밑으로 숨어들어서, 사회 전역으로 파고들었다. 한낱 불량배가 금주법 이후 ‘그림자 경제’(Shadow Economy)의 돈을 쓸어 담아 야마토연타 대부호가 되기도 했다. ‘금주법’이 남긴 역설이었다.
“술과의 술푼 이별입니다.” 금주법 기간 중 주류 폐기.
미국, 새로 선 나라의 고단함
미국은 1 릴짱 776년 영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홀로 서겠다는 미국의 의지는 가상했지만, 바람은 찼고, 땅은 황량했다. 미국인은 광활한 광야로 나아가면서, 원주민과 싸우고, 들짐승을 죽이며, 거친 땅을 개간했다.
새 땅에는 도덕과 윤리가 미처 뿌리 내리지 않아서, 바깥일에 고단한 남자들은 술로써 피로를 씻어냈다. 깨끗한 물을 발견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만취한 사내들이 깽판을 치는 일도 자주 벌어졌지만, 나름 사내다운 배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프런티어(개척자)가 되려는 사내는 자고로 거친 자유를 즐길 줄 알아야 하고, 술·도박·매춘으로 연대를 맺을 줄도 알아야 했다. 점잔빼는 인사들은 샌님 취급을 받으며 구석으로 밀려났다. 새로 개척된 도시에는 교회와 법원보다, 술집과 매춘업소가 먼저 둥지를 틀었다.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당시 포스터.
동부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유럽 전역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포부를 안고 몰려오는 사람들로 항구는 북적였다. 사방팔방에서 오는 사람들 간의 만남은 종교의 충돌이었고, 가치관의 부딪침이었다. 이민자들은 서로 자기 말이 옳다며 악다구니를 놀리다가 종국에는 어깨동무하며 술 한잔을 걸쳤다.
취기가 오르면 매춘업소로 종종걸음을 쳤다. 19세기 미국은 술과 매춘의 나라였다. 뉴욕에만 해도 19세기 중반 매춘업소가 600개나 됐을 정도였으니까. 40년 만에 3배나 늘어난 수치였다.
“너 고향이 어디여?” 1900년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
“우리 다시 신의 나라로 돌아갑시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광활한 바다를 건너온 곳 아니었던가. 청교도가 누구인가. 누구보다 신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사탄의 타액에 젖어, 고주망태가 되고, 난봉꾼이 되어버린 미국을 그들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제 성경을 다시 펼 시간이었다.
신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율법에 맞춰, 알코올에 젖은 인간을 성수로 해독할 차례였다. 술과 매춘에서 벗어나, 다시 경건한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외침. 1820년대부터 본격화된 대각성(Great Awakening) 운동이었다.
“이 놈의 술통 다 깨부수자.” 1874년 금주법 지지 만평.
지지는 들불처럼 번졌다. 술에 취한 가장에게 두들겨 맞은 아내들, 일하지 않은 아버지 밑에서 배를 주린 아이들, 주폭에 지친 선량한 시민들이 운동에 동참했다. 음주와 매춘은 더 이상 개인의 악행으로 치부되지 않았다. 가정 파괴의 원인이었고, 더 나아가 국가와 사회를 좀먹는 바이러스였다.
운동에 감화되어, 성스런 운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인물들이 해마다 늘어나서, 금주 조직은 비 온 뒤 죽순처럼 늘어났다. 1874년에는 ‘여성 기독교 절제회’가, 1893년에는 ‘반(反) 살롱 동맹’이 결성됐다. 신의 뜻을 전하자는 참된 목소리에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크게 감동하여서, 일부 지역에서는 ‘주류 판매 금지법’이 통과됐다. 세상은 시나브로, 바른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진보시대’(Progressive Era)의 막이 열리고 있었다.
알코올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묘사한 1910년 만화.
금주법의 시작
1917년, ‘금주법’의 판이 크게 벌어졌다.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의 불똥이, 바다 건너 미국에 튀어서였다. 독일군은 북해 앞바다의 민간 함선에까지 대포를 쏘아댔는데, 미국 국적의 배가 침몰했다. 고장 난 테이프처럼 “중립”만 노상 외쳐대던 미국이 1917년 참전을 결정했다.
전쟁은 총기의 화력이 아닌 밥심으로 결정되는 법이어서, 미국 정부는 군량 확보에 주력했다. 풍요로운 들에서 생산되는 ‘밀’이 오직 빵을 위해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미국의 아들들이 독일의 총탄에 스러져 가는 마당에, 귀한 밀로 술을 빚는 이들은 역적 취급을 받아야 했다.
특히나 ‘맥주’를 만드는 이들은 매국노로 손가락질받았는데, ‘맥주=독일’이라는 인식이 퍼져서였다. 미국의 아들들의 배를 채울 밀을, 적국 독일의 음료를 만드는 데 쓸 강심장은 없었다.
“독일 맥주 맛있어 안맛있어?” 1917년 미군에 못을 박는 독일군을 묘사한 만평.
정부는 반독일 정서를 불쏘시개 삼아서 ‘금주법’의 열기를 지폈다. 전시 금주법이 전쟁 중 도입됐는데, 그 지지가 열화와 같아서, 전쟁이 끝난 뒤에도 금주법은 알코올을 만난 불처럼 더욱 커졌다. 1918년 수정헌법 1조로 주류 판매 금지의 토대가 놓이고, 1920년 1월 ‘볼스테드 법’으로 쐐기를 박았다. ‘모든 주류의 제조·판매·운송을 전면 금지한다.’
드디어 신의 목소리가 인간의 법으로 새겨지는 순간이라며, 복음주의자들은 목놓아 울었다.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알코올을 사랑하는 지도자여서, 자신의 엄청난 주류를 워싱턴 자택으로 몰래 옮겼다. 후임자인 워런 G. 하딩도 마찬가지였다.
“자, 마지막 바겐 세일.” 버드와이저가 1919년 마지막 판매 판촉을 벌이고 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사탄의 도시가 정화되고 있었다. 취한 이가 없었고, 취기를 못 이겨 여자를 찾는 사내들이 줄었다. 1인당 알코올 소비가 75%나 급감하면서였다. 맨정신의 남자들은, 멀뚱히 앉아 눈만 꿈뻑꿈뻑 거리거나, 객쩍게 농담만 늘어놓다가,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취객과 함께 술집이 사라지자, 도시는 성스러운 여인들과 순진한 아이들의 것으로 보였다. 악에 대한 성전에는 승전보만 가득해서, 음주와의 전쟁은 종식된 것 같았다.
난파된 자동차와 술을 압수한 경찰관. 1922년.
사라진 건 취객과 난봉꾼만이 아니었다. 경제는 줄기로 얼기설기 얽힌 복잡계로 이뤄져 있는 법이어서, 술집이 폐쇄되자, 양조장이 문을 닫았고, 이 술을 배달하면서 먹고 사는 트럭운전사, 술병을 만들면서 자식을 먹이는 병 제조업자,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바텐더와 음악가들도 도시에서 자취를 감췄다. 금주법으로 직접적으로 일 자리를 잃은 사람만 25만명. 그 여파에 휩쓸린 이들의 숫자는 측정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정부도 깨끗한 도시에 웃지 못했다. 세수의 큰 부분인 주류세가 완전히 사라져서였다. 1920년대 사라진 주류세만 해도, 11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 술을 완전히 증발시키겠다’고 선언한 지도자들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주류 단속은 매년 이뤄져야 했는데, 이 비용만 해도 연간 3억 달러 이상이 소요됐다. 벌어들이는 돈은 무참하게 줄었는데, 써야 할 돈은 곱절로 늘어난 셈이었다. 차라리 돈은 사소한 문제였다. 더욱 가혹하고, 더욱 모진 후폭풍이 미국으로 몰려오고 있어서였다.
도시가 메마르면(음주가 없으면) 매일매일이 일요일 같을 것이다라는 문구. 금주법 홍보 포스터.
인간, 술 냄새를 그리워하다
인간은 7000년 동안 술을 마셨다. DNA에 알코올이 깊이 각인돼 있다는 의미여서, ‘금주’란 사실상 불가하다는 걸, 미국의 복음주의자들과 정치인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인간은 술 생각이 절실했다. 입 한가득 술을 채울 수 있다면, 뭉칫돈이라도 꺼내 놓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명민한 사업가들이 금지된 술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
나라가 금지했지만, 업자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면서 술을 만들어 팔았고, 주당들은 얼마 만에 맡는 술 냄새냐면서 지갑을 기꺼이 열었다. ‘금주법’라는 이름의 위험수당이 붙어서 술값은 미친 듯이 올라갔다. 맥주 가격은 700%, 브랜디는 400%, 위스키는 270%나 뛰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줄었지만, 알코올에 소비되는 가격은 외려 늘었다. 술에서 돈냄새가 진해지자, 술판이 커졌다. 조직적으로 이 판에 뛰어든 집단이 있었다.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 보스턴의 마피아들이었다.
불법 증류 장비를 재현한 모습. [사진출처=Joe Mabel]
마피아에게 술 사업은 ‘식은 술 먹기’나 다름없었다. 해안선과 국경선 경비대원들에게 돈을 먹이면, 술로 가득 찬 배와 트럭이 가뿐히 미국 땅에 들어왔다. 밀수로 제법 돈을 만진 마피아들은 외국 술로 만족하지 못해서, 비밀 양조장과 증류시설에서 ‘밀주’를 직접 만들어 팔았다.
싸고 구하기 쉬운 산업용 알코올을 가져다 술을 만들자, 정부가 술 생산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으려고 산업용 알코올에 유독성 물질을 넣을 것을 강제화 했는데, 마피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짜술을 만들어 팔았고, 미국의 여러 고주망태는 ‘독주야말로 참 것’이라면서 호기롭게 가짜술을 들이키다가 죽어버렸다. 수만명의 사상자가 나왔지만, 이들의 사업은 멈춰 서지 않았다. 인간은 좀처럼 술을 끊지 못했다.
“밀수범은 우리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좋은 친구지.” 미국 해안경비대 말 순찰대.
마피아가 지배한 미국
동네 부랑배에 지나지 않았던 마피아들은, 인간에게 다시 술을 먹임으로써, 재벌 못지않은 부를 누렸다. 알 카포네, 럭키 루치아노, 마이어 랜스키, 너키 존슨. 그 이름도 유명한 마피아들이 금주법을 기반으로 대성한 깡패들이었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금주법 날 키우시니...”. 이탈리아 출신 미국 마피아 알 카포네.
술에 다시 입을 댄 시민들은 눈이 돌았다. 1년 동안 응축된 욕망이 고삐풀린 말처럼 풀려버렸다. 비밀 술집인 ‘스픽이지’가 곳곳에 생겨났다. 금주법이 생겨나기 직전인 1920년 뉴욕에는 합법적 술집이 5000곳이 있었는데, 5년 만에 스픽이지는 3만2000곳으로 불어났다..
금주법으로 인해 외려 더 많은 술집이 독버섯처럼 번진 것이었다. 과거에는 술집에서 나오는 세금이 정부로 향했지만, 스픽이지의 돈은 100% 마피아에게 흘렀다. 마피아는 이 돈을 기반 삼아, 매춘업, 도박소로 영업을 확장했다. ‘신의 사도’들이 기함하던 것이었다.
“자 여기서 좀 놀다 가세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의 사창가 거리. 높은 범죄율로 ‘살인만’(Murder Bay)로도 불렸다. 왼쪽 나무에 서 있는 남자들은 호객꾼이다.
금주법이 남긴 교훈
나쁜 짓은 몰래했을 때 더 짜릿하기 마련이어서, 지하경제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1927년 당시 불법 주류 시장이 연간 매출 3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 전체 GDP의 5%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시카고 기반 마피아 알 카포네의 조직은 한 해 동안 1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단속반은 매년 덩치를 키웠지만 소용없었다. 알 카포네가 달콤한 뒷돈을 먹여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마피아가 경제를 움켜쥐면서, 서로 간 이권다툼에 피가 튀겼다. 살인율은 1920년 인구 10만명당 5.6명에서, 1920년 중반 10명 수준까지 올랐다. 폭력 범죄, 재산 범죄 사건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경찰·행정력이 금주 단속에 집중되면서, 민간 치안력이 헐거워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진 술이 알카포네 건 아니겠지...” 밀주를 단속하는 경찰.
시민은 금주법이 같잖았다. 그 누구도 지키지 않으면서, 오히려 도시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짙게 취하고, 더 난잡하게 놀았으며, 더 거칠게 굴었다. 법은 지켜도 그만,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겠다는 금주법 13년. 미국의 선은 흐릿했고, 악은 완연하여서, 도시는 사탄의 것으로 보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맥주 한 잔 하기에 좋은 시간이군요(I think this would be a good time for a beer)”라고 말했다. 금주법 폐지에 서명했고, 정책이 실패했음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었다. 법으로써 세상을 바로 세우겠다는 선한 인간들이 만든 악한 결과물. 주정뱅이의 문뱃내를 완전히 없애려고 한 위대한 사회적 실험이 경제사에 진득한 교훈으로 남은 셈이었다.
“미국은 이제 맥주 한잔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 1935년 8월 14일 사회보장법에 서명하는 루스벨트. 기사 내용과는 관계 없음.
“13년만의 술은 더욱 달콤하구나.” 1933년 금주법 폐지를 축하는 미국인들.
<네줄요약>
ㅇ1920년 미국 사회는 술과 매춘으로 만연한 사회를 정화하겠다면서 ‘금주법’을 도입했다.
ㅇ초기에는 술 소비량이 대폭 줄어 성공한 듯 보였지만, 곧 밀수와 밀주가 성행하면서 ‘지하 경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ㅇ밀주를 마피아들이 주도하면서 알 카포네, 럭키 루치아노와 같은 재벌급 마피아들도 등장했다.
ㅇ도입 13년 후 루스벨트 대통령이 금주법 폐기 법안에 결국 사인하면서 사회를 선하게 만드려는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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