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8일 서울 중구 충무로에 서울영화센터가 개관했다. ⓒ시사IN 박미소 



11월28일, 서울 충무로 명보사거리 인근에 서울영화센터가 문을 열었다. 충무로의 낡고 오래된 건물 사이 불쑥 솟은 10층짜리 신축 빌딩이 눈길을 끈다. 한때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등이 몰려 있어서 한국 영화의 메카로 불리던 곳이다. 공공영화문화플랫폼을 표방한 이 공간은 지하 3층 지상 10층 건물로 대지면적 804㎡, 연면적 4806㎡ 규모다. 상영관 3개와 전시 공간, 공유 오피스 등이 들어서 있다. 이날 골드몽게임 개관식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영화센터가 한국 영화의 심장인 충무로를 다시 뛰게 하는 맥박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서울영화센터의 개관을 전후해 영화 단체의 반발이 이어졌다.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등 19개 영화·시민 단체로 이루어진 ‘영화산업 위기 바다이야기부활 극복 영화인연대’는 공동성명을 내고 “서울시가 지난 15년 동안 쌓아온 합의 구조를 일방적으로 변경한 결과, 서울 시민이 누려야 할 세계적 수준의 시네마테크가 껍데기만 남은 채 개관될 상황에 놓였다”라며 “시네마테크의 본래 기능으로 복원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들이 말하는 지난 15년, 영화계와 릴게임하는법 서울시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0년 1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한시협)는 이명세 감독을 위원장으로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마련하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서울시에 전용관 건립을 요청했다. 박찬욱·봉준호·류승완·김지운 감독과 안성기·강수연 배우 등 영화인들이 뜻을 함께했다. 당시 봉준호 감독은 “한국 영화 자부심의 상징이라 할 만 백경게임랜드 한 시네마테크가 언제 방을 빼야만 할까 걱정하는 것은 문화적 수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봉 감독이 말한 시네마테크는 서울아트시네마다. 한시협이 운영하는 극장으로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고전 예술영화를 상영하고 아카이빙하는 등 영화계 저변 확대에 기여했으나 임대계약 문제로 계속해서 이사를 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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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영화계의 요구에 2011년 시네마테크를 포함한 공공상영관의 지원을 담은 조례 개정안이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2016년 ‘서울시네마테크’ 건립안이 통과되고, 2018년 설계 공모가 확정됐다. 서울시네마테크 건립준비위원회의 활동도 시작됐다. 주요 결정이 고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기간에 이루어졌다. 중앙투자심사에서 두 차례 제동이 걸리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20년 착공을 시작했다. 기류가 바뀐 건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 이후다. 서울시네마테크 건립준비위원회 활동이 중단되고 서울시네마테크 운영자문위원회가 새롭게 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명칭이 서울영화센터로 변경되었다.




영화인들의 염원이던 서울시네마테크의 이름이 서울영화센터로 바뀌었다.ⓒ시사IN 박미소



이때부터 영화 단체들은 서울시가 오랜 기간 민관이 협력해서 마련한 사회적 합의와 절차를 뒤집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했다고 반발했다. 명칭을 바꾸고 본래 기능을 축소한 데 이어 민간의 독립적 운영을 배제한 채 서울경제진흥원에 사업을 위탁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이들은 애초 이 사업이 영화인과 시민들의 요구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숙현 한시협 사무국장은 “대중의 합의된 요구에 의해서 사업이 시작됐다. 중간에 사업 목적이 바뀐다면 공개적인 논의나 공청회가 있어야 하는데 한 번도 없었다. 구성원을 알 수 없는 운영자문위원회가 이름을 바꿨다고 하는데 회의록도 공개되어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민의 영화 도서관’ 꿈꿨는데

시네마테크 전용관 ‘본래의 기능’이란 독립·예술 영화의 상영·보존·열람 기능을 갖춘 ‘서울시민의 영화 도서관’이다. 영화 단체들은 서울시가 그중에서도 핵심인 아카이브 공간을 축소하고 멀티플렉스형 구조로 설계를 변경하는 등 정체성을 흔드는 결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필름을 보관할 수 있는 수장고를 갖추지 못한 점도 공공기록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백재호 영화인연대 공동대표는 “서울시가 한국영상자료원과 기능이 중복된다며 수장고 기능을 변경했다고 하는데 도서관을 예로 들자면 국립도서관, 시립도서관의 성격이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듯 수장고도 그렇다.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 영화를 아카이빙하는 곳이다. 자료가 중복될 수는 있지만 보완해주는 관계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영화인의 아지트이자 영상문화의 거점이 되었던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역시 서울영화센터와의 기능 중복을 이유로 폐관 위기에 놓였다.


서울시가 지난 5월 작성한 서울영화센터 운영 기본계획에 따르면 서울영화센터의 주요 추진 과제는 신진 영화인 발굴 및 비즈니스 지원을 통한 영화산업 활성화, 영화제 지원, 관광명소 조성, 영화인 대상 교육, 교류 공간 제공, 다양한 상영 프로그램 기획·운영 등이다. 산업적 기능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상영관의 좌석수가 애초 계획보다 감축되었다는 추측이 나온다. 일반석은 166석, 컴포트석은 78석, 리클라이너석은 68석이다. 서울시가 밝힌 리클라이너석의 사용 용도 중 ‘비즈니스 매칭 스크리닝 지원’이 있다. 김숙현 사무국장은 “안락한 관람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산업 관계자들의 시사를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은 한 관당 200석 이상이 적합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견해다. 영화제 등 규모 있는 일을 벌이기에는 공간 자체가 협소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 밖에도 예술영화 상영에 필수적인 세로 자막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려운 구조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현재 서울영화센터 상영관을 운영하는 단체는 한국영화인협회다. 상영관 운영 경험은 없지만 운영업체 입찰을 통해 선정되었다. 당시 한시협도 입찰 과정에 참여할지를 고민했다. 김 사무국장은 “중간에 사업의 성격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시작이 시네마테크 전용관이고, 세금이 들어간 건물이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입찰에 응하면 비민주적 의사결정에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렵게 될 것 같았다. 또 한 공간에 자리를 잡으려면 몇 년이 걸리는데 계약기간이 1년2개월로 짧았다”라고 말했다. 백 대표는 시네마테크가 단지 영화를 상영하는 시설이 아니라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반드시 특정 단체가 운영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정체성을 고민하며 쌓아온 신뢰와 네트워크가 공간 운영의 바탕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09년 2월28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네마테크 공모 전환 관련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시사IN 포토



서울시는 영화 단체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명칭과 기능의 변경은 산업적·상업적 변질이 아닌 시대의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정책적 업그레이드”라고 밝혔다. 또한 건립에서부터 명칭, 기능, 운영체계 마련 등 주요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영화인들과 계속 소통해왔으며 센터 운영은 법적 절차와 전문가 협의를 거쳐 마련된 공공정책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카이빙 기능에 대해서는 9층에 별도로 서적과 DVD 등을 보관하는 공간이 있으며, 수장고의 경우 센터가 좁아 효율 면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이 기능을 가져가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리클라이너석은 ‘시민의 관람 환경 개선’을 위한 것이며, 독립·예술·고전 영화 상영 비율이 70% 이상으로 시네마테크가 지향해온 바와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영화센터는 건립에만 약 577억원(200억원은 토지 매입비)이 들었다. 운영 관련 예산은 약 40억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이 지연되는 등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사이 환경도 달라졌다. 트렌드에 맞춰 방향을 잡느라 변화가 있었다. 공간이 조성됐지만 기능 면에서 완성 단계라고 볼 순 없다. 영화인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해 의견을 듣고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려 한다”라고 말했다. ‘오!재미동’ 폐관과 관련해서는 재검토 방침을 밝혔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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