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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있다. 앉아. 위로했다. 이상해 나무라지 부장은이 글은 부산노동권익센터가 주최한 '2025 제3회 감정·비정규 노동자 수기 공모전' 수상작 중 하나로, 감정·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필자의 동의하에 오마이뉴스 게재용으로 일부 편집·구성하였습니다. <기자말>
[부산노동권익센터]
▲ 아침 출근길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CHAT GPT를 활용하여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검증완료릴게임
ⓒ 부산노동권익센터
오전 7시 50분, 센터에 도착했다. 하루 입은 근무복에서 약간의 땀냄새가 난다. 이번 주는 주방 담당이라 배식 시간에는 주방에 가야 한다. 송영 후 신체 활동을 준비하고 사이다쿨접속방법 주방까지 가려면 오늘도 바쁠 것 같다.
출근하는 버스에서 오늘 모실 어르신들의 근황을 확인했다. 옥녀 어르신은 동생 댁에 가셨으니 제외, 필분 어르신은 집 앞에서 기다리실 가능성이 있어 진모 어르신보다 먼저 모시기로 했다. 오전 8시, 차량에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어르신, 실내화로 갈아 신으세요. 온라인골드몽 "
차정 어르신의 실내화를 찾아 발 앞에 두고, 신발을 신기도록 도와드린 후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3층 버튼을 눌러 드린다.
"먼저 올라가세요. 저는 또 다녀오겠습니다."
골목골목을 지나 부산대 후문 방향으로 차를 몰면 벌써 필분 어르신이 대문 앞에 앉아 계신다. 차를 발견하시고 손을 흔들며 차를 세우신 메이저릴게임사이트 다.
"선생님~""오늘 혼자가? 그 영감은 안 오나? 혼자 가면 심심한데.""이제 모시러 갑니다."
차에 올라타신 후 부채질을 연신 하시며 에어컨을 3단으로 켜고, 식물원을 거쳐 전자공고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필분 어르신은 치매가 있으시다. 올해 97세로, 17살에 해방을 맞았다. 해방 전 정신대로 끌려갈 뻔했는데 집안 바다신릴게임 오빠가 어르신만 빼냈다고 한다.
17살에 두 살 많은 남편을 만나 시집을 갔다. 딸이 서울로 이사 가면서 자기 옷들을 모두 집에 두고 갔다며 한참을 흉을 보신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딸이 보고 싶다는 말씀이다. 따지고 보면 그 딸도 벌써 70이 넘은 노인이다.
혼자 큰집에 살며 일상생활은 거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아침을 드셨냐고 여쭈면, 반찬이 없어 간장에 밥을 찍어 먹었다고 하신다. 센터에서 점심과 저녁을 드시지만, 집에서의 생활은 엉망이다. 씻는 것, 식사, 빨래 모두 제대로 되지 않는다. 옆구리가 아프다 하셨는데 대상포진이었다. 2주가 지나 딱지가 거의 떨어졌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진모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80이 다 되어가는 남자 어르신 집은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코를 찌른다. 화장실이 있음에도 마치 아무 데서나 소변을 본 것처럼 냄새가 난다. 진모 어르신 역시 점심과 저녁을 센터에서 드신다. 제대로 된 식사는 하루 두 끼뿐이다.
매일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두 어르신을 모시고 9시가 넘어서야 센터로 돌아왔다. 어르신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만, 요양보호사인 나는 3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어르신과 함께 타지 않는 이상, 엘리베이터는 탈 수 없는 규칙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3층을 오르내린다.
인사와 칭찬으로 시작되는 오전
3층 생활실로 들어서며 자리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과 눈을 맞춘다.
"안녕하세요.""오늘도 멋진 모자를 쓰고 오셨네요.""역시 우리 센터의 패셔니스타는 다르십니다. 멋지십니다.""어머, 벌써 퍼즐을 다 맞추셨어요? 대단하세요. 다른 거 드릴까요?"
어르신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며 인사드린다. 이런 인사만으로도 어르신들은 웃으신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5개월 차인 지금은 익숙하다.
9시 30분, TV 영상으로 건강 체조가 시작된다. 국민체조부터 치매 예방 체조, 율동과 스트레칭까지 50분 정도 진행된다. 여자 어르신들은 대체로 잘 따라 하신다. 애교도 많고, 건강에 대한 관심도 많아 스스로 움직이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신다.
반면 남자 어르신들은 눈으로 운동을 한다. 여자 어르신들이 많아 부끄럽기도 하고, 체조를 할 만큼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분도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건강 체조를 하는 동안 오전 간식을 준비하러 주방으로 간다. 매일 똑같은 간식은 마차다. 오늘도 왕원장은 주방을 들락거린다.
"샘, 너무 진해.""연하면 맛이 없잖아요. 이 정도는 해야 그래도 마실만 한데.""원장이 싫어해요."
공짜로 먹는 것도 아닌데, 밥값과 간식값은 다 내는데, 속에서 부아가 치민다. 하지만 나는 이제 5개월 차 요양보호사다.
"어머니, 오늘 무슨 요일이지요? 오늘은 7월 8일 화요일입니다. 오늘은 새로 민요 선생님이 오실 거에요. 맛있게 마차 드시고 즐겁게 하루 보내요. 자, 겨드랑이를 많이 두드리면 좋아요. 열 번씩 칠게요. 하나 둘. 가슴도 만져 줘야 유방암 예방에 좋대요. 아버지들이 보시니까 돌아앉아 가슴도 주물러 주세요. 하나 둘..."
"오늘 신체는 뭐 하지?""볼링 할까요? 이번 달에는 아직 안 한 거 같은데요?"
10시 30분, 마차를 다 드신 어르신들의 컵을 회수하며, 홍보 담당과 오늘 신체 활동을 무엇을 할지 의논한다. 볼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10개의 책상을 양쪽으로 밀고, 의자도 재배치해야 한다. 어르신들이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운다.
활동력이 좋은 어르신들은 직접 책상을 밀고 의자를 당기며 도와주시지만, 넘어지라도 하면 큰일이다. 지팡이를 짚으시는 어르신은 반드시 이동을 보조해야 한다. 책상이 옮겨지는 어수선함 속에서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어르신은 눈만 멀뚱히 뜨고 계신다.
"오늘은 볼링을 할 겁니다. 공 2개를 드릴 거예요. 공을 굴려서 핀 10개 중 8개를 넘어뜨리면 동전 하나를 드립니다."
볼링핀을 세우는 사람, 공을 주는 사람, 어르신을 순서대로 이동시키는 사람, 넘어지지 않게 잡아드리는 사람 등 5명의 요양보호사가 긴장 상태다. 사회복지사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다. 5개월 차인 나는 어르신 이동을 담당하며, 넘어지지 않도록 팔과 허리를 잡는다.
선임 요양보호사들도 신체 활동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저 선임의 방식을 보고 따라 할 뿐이다. 놀이 규칙만 배우고, 진행 역량은 제각각이다. 그래도 신체 활동은 경쟁이 붙어 어르신들이 흥미로워 한다. 잘하면 박수, 못하면 안타까워하며 서로 응원한다. 진행하는 요양보호사들도 덩달아 '잘했다' 추임새를 넣고, 손을 잡고 춤도 춘다.
반면 인지 활동으로 그림 색칠을 진행할 땐 상황이 다르다. 주제 설명과 관련 이야기, 어르신의 답변을 이끌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주에는 실장이 시범을 보여주고, 다음부터 우리에게 맡겼다. 욕이 절로 나왔다. 매일 신체·인지 활동을 10분 전에 준비하고, 개인 역량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때 주방에서 부른다. 밥이 왔다고.
▲ 식사 시간 가장 잔인한 계산의 순간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CHAT GPT를 활용하여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
39인분으로 50명이 먹는 점심
오늘도 39인분의 식사가 도착했다. 오늘 등원한 어르신은 40명. 종사자가 10명, 총 50명이 39인분으로 점심을 먹어야 한다. 저녁에 5인분이 들어오니 4인분 정도는 덜어 둬야 한다.
"진짜 왜 먹는 걸 가지고 장난하는 건데.""밥 먹는 사람이 50명인데, 39인분으로 찍어 바르려니 참."
"이모님, 저녁밥 빼 놓으셔야지요?""그건 내가 맨 먼저 하는 것이라,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진짜 못할 짓이다. 이게 맨날 뭐하는 짓이고?"
어르신들에게 좀 더 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종사자들이 먹을 게 없다. 아무 말 없다고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치사하게 식사를 속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말씀이 없다.
고기를 드시지 않는 분들은 따로 분리하여 냉장고를 뒤져 넣는다. 음식 준비 여건이 제한적이라 전날 남은 반찬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그걸 그렇게 놓으면 어떠하노?"
왕원장이 팔을 확 쳐 올리며, 자신이 준비한 반찬을 들고 나간다. 상왕은 하루 종일 센터의 일을 감시하고 간섭한다.
식판을 들고 어르신들 옆 빈자리를 찾아 앉아 밥을 먹는다. 102세 명순 어르신이 바닥에 흘린 것을 닦으려 허리를 굽히자,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난다.
"어르신, 제가 할게요.""아이다, 내가 해도 된다."
손을 휘이휘이 저으시지만,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어르신을 돕는다. 바닥을 닦다가 넘어지면 큰일이니까.
밥을 먹는 동안에도 귀는 사방으로 열려 있다. 젓가락 떨어지는 소리, 빨리 식사를 마친 어르신이 일어설 때, 자동으로 식판을 받아야 한다. 처음엔 체할 것 같았지만, 5개월 차인 지금은 소화불량까지는 가지 않는다. 30분 동안 점심을 먹고, 12시 30분부터 순차적으로 30분 휴식 시간이다.
쉴 곳 없는 휴게 시간
▲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감당해야 하는 시간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CHAT GPT를 활용하여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
휴게공간은 엘리베이터 앞 의자뿐이다. 독립된 공간이 없어 커튼을 치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최근에는 2층 CCTV 사각지대를 찾아 잠시 누워 쉰다. 선풍기는 없지만 창문을 열고 등을 붙이면 잠시라도 시원하다.
2시 30분까지는 어르신들의 자유 시간이다. 고스톱을 치는 분들, 수면실에서 주무시는 분들, 담소를 나누는 분들, 미스터트롯을 보고 노래 부르는 분들... 하우스를 방불케 하는 고스톱판이 5~6곳 펼쳐진다. 십원짜리 동전으로 치는 고스톱은 이기고 지는 것보다 시간을 보내기 딱 좋다.
처음엔 규칙과 점수 계산이 어려웠지만, 한 달도 안 돼 익혔다. 그림 따먹기로 모은 화투 장을 점수 계산하며 승자를 판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순 어르신과 외근 어르신 자리에 앉아 같이 고스톱을 친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7살 때까지 땅에 발을 안 붙였다.""내는 틀림없는 사람이다. 속이려 하면 가만 안 둔다, 확 팼뿐다."
외근 어르신과 화투를 치다가 정순 어르신이 갑자기 큰소리로 화를 낸다. 외근 어르신이 속였다고, 자기는 화투장이 몇 개 없는데 왜 많냐고 따진다.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어르신, 속인 게 아니고 싼 거 들고 가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이 번쩍 올라온다. 순간 흠짓 놀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려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가만 있으면 정말 맞을 판이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정순 어르신 귀에 대고 설명한다. 귀가 어두운 정순 어르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손을 잡고 웃으신다.
"이게 무슨 냄새지?""샘, 어디서 똥냄새 안나요?"
방금 덕남 어르신 화장실에서 나오셨는데, 변 실수를 하신 듯 하다. 덕남 어르신은 배변은 스스로 하실 수 있는데 오늘은 왜 그런지 살펴보니 설사였다.
"내가 다 했다. 화장실 가는데 나와서 내가 다 정리했다."
어르신도 급해 화장실로 가셨지만, 정리까지는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선임이 1층 목욕실로 모시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나는 화장실 정리를 담당한다. 변기와 바닥을 닦고, 휴지통을 비우고 새 비닐을 끼우니 땀에 절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세상에 온 듯 시원했다.
오늘은 민요 강사가 오는 날이다. 월요일은 실버 스포츠, 화요일은 민요, 수요일은 웃음 치료, 목요일은 자체 프로그램, 금요일은 블록 활동 등 매일 정해진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는 어르신들이 참여하시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요양보호사는 정해진 위치가 있다. 보통 매달 담당하는 어르신은 7명 정도다. 매일 요양일지를 기록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담당 어르신 주변에서 활동을 보조했다. 지난달 직원회의에서 원장은 요양보호사들이 뒷자리에 몰려 있는 것을 지적했다. CCTV로 보고 선생님들이 모여 있으니 지적했다는 것이다.
CCTV로 감시된다는 말을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 불쾌함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만의 분노를 삭힌다. 그다음은 자기검열이다.
하루의 끝, 바나나 반 개
어느덧 하루가 끝나간다. 오후 프로그램이 끝나는 3시 30분, 간식으로 바나나 반 개가 나왔다. 한 개도 아니고 반 개라니. 접시에 담아 드렸다면 조금 나아 보였을까? 그마저도 손에 들려 드린다.
간식을 다 드시면 어르신들의 얼굴이 약간 들뜬 모습이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학교에 있다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즐겁고 신나듯,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꼭 그와 같은 얼굴빛이 보인다.
저녁을 드시는 10명의 어르신을 제외하고, 차량별로 귀가가 시작된다. 매일 타는 차량이지만, 어르신들은 흰색인지 노란색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매일 바뀌는 작은 차량 운전자의 손에 이끌려 귀가 송영이 시작된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되는 송영은 5시 퇴근 시간에 맞추어 바쁘게 진행된다.
어르신들이 모두 내려가면 에어컨이 꺼진다. 에어컨 온도를 25도 이하로 낮출 수 없는 실내, 하루 종일 40여 명의 어르신과 10여 명의 종사자가 웅성거렸던 3층 생활실은 싸움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더위에 예민해진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는 정말 빠르게 흐른다. 우리 어르신들에게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갈까. 5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집에 가면 또 요양일지가 기다린다. 칼퇴근을 좋아했지만, 퇴근 후에도 최소 30분은 또 일을 해야 한다. 몸에서 쉰내가 난다.
존엄을 지킬 틈이 없는 하루
▲ 요양보호사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
저는 5개월 차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입니다. 주간보호센터의 하루는 금세 지나갑니다. 오전 8시에 출근하면 오후 5시 퇴근이 순식간입니다. 그렇게 5개월이 흘렀습니다.
15년 동안 해 오던 아동·청소년 돌봄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구직활동을 하던 중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8시 출근, 5시 퇴근. 손이 많이 가는 아이를 돌볼 시기는 지나 이제는 이른 출근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렇게 주간보호센터 어르신 돌봄이라는, 어쩌면 극과 극에 있는 연령대의 돌봄 노동자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면서, 말로만 듣던 3개월·6개월 단위 근로계약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수습 기간이라고는 하지만 보통은 1년 단위 계약에 그 안에 수습 기간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던가요. 제가 알고 있던 노동 상식은 첫 출근 날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깨졌습니다.
업무를 알려주는 선임은 저보다 두 달 먼저 입사한, 저와 마찬가지로 수습 기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별도의 매뉴얼은 없는 듯했고, 선임이 두 달간 익힌 내용을 그대로 전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어르신 송영과 내부 업무, 주방 담당, 간호 업무, 홍보 등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 보이는 일들은 모두 말로 전달되었고, 저는 받아 적으며 익혀야 했습니다. 인수인계 없이 현장에 바로 투입되어 부딪치며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며 가장 낯설었던 풍경은 어르신들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였습니다. 호칭은 '엄마', '아버지'였습니다. 아무도 '어르신'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현관 출입문에는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라는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40여 명의 어르신들은 모두 엄마, 아버지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거나 반말을 하는 것도 일상이었습니다. 좋게 보면 진짜 부모를 대하듯 친근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생판 남인 어르신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메모였습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의 이름을 외워야 했습니다. 간식이나 식판을 들고 어르신께 다가가야 하는데, 누가 누군지 몰라 한참을 서성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요양일지를 작성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컸습니다. 기본 포맷도, 작성 요령도 없었고, 무엇보다 어르신 이름을 모르니 내용을 쓸 수 없었습니다. 배정된 7~8명의 어르신 하루 일과와 특이사항, 기억에 남는 말씀들을 따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메모하는 제 모습을 보고 실장과 주임이 궁금해하며 이유를 묻기도 했습니다.
일을 시작하며 어르신을 돌보는 일이 제 체질에 맞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과는 달리, 지금 이 순간 함께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는 점이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저를 예뻐해 주셔서 적응도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나면서 돌봄 노동자로서의 자부심과 긍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이야기, 금사동 공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이야기 등 어르신들의 삶의 흔적은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CCTV 아래에서 일한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존중과 배려, 이해와 존엄의 태도로 대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하루 종일 쫓기듯 움직여야 했습니다. 돌봄은 개인에게 맡겨진 채, 운영자들은 이익을 좇아 사소한 비용에도 지나치게 인색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마인드에도 점점 지쳐 갔습니다.
CCTV로 직원들을 감시하고, 목욕 후에는 가림막을 친 복도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며, 가스요금이 나온다며 설거지할 때 따뜻한 물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 전기요금 때문에 에어컨을 켜지 말라는 말도 듣습니다. 식사 인원보다 적은 식사량, 그리고 무엇보다 어르신들을 수익 대상으로 여겨 결석도 출석으로 입력하고 송영 시간을 늘리는 불법과 편법을 보며, 과연 이 일을 계속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자신은 늙지 않을 것처럼, 혹은 늙어도 이런 곳에는 오지 않을 것처럼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려 움직이는 이곳에서, 어르신의 존엄을 지키는 돌봄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이제 겨우 5개월 차이지만, 어르신 돌봄이라는 인생 2막의 직업이 언젠가는 자랑스러워지기를 바랍니다. 처음 어르신을 돌보는 일이 마치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람 있었다고 말하던 어느 선임 요양보호사의 말처럼, 돌봄 노동이 자랑스럽고 존경받는 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국가 돌봄 책임을 요구하는 돌봄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함께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미 이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있고, 그 뒤를 따라가는 저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돌봄은 이미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이, 제가 하는 이 돌봄 노동이 언젠가는 다른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일이기를 희망해 봅니다. 종국에는 저 역시 이곳에 오게 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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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골목을 지나 부산대 후문 방향으로 차를 몰면 벌써 필분 어르신이 대문 앞에 앉아 계신다. 차를 발견하시고 손을 흔들며 차를 세우신 메이저릴게임사이트 다.
"선생님~""오늘 혼자가? 그 영감은 안 오나? 혼자 가면 심심한데.""이제 모시러 갑니다."
차에 올라타신 후 부채질을 연신 하시며 에어컨을 3단으로 켜고, 식물원을 거쳐 전자공고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필분 어르신은 치매가 있으시다. 올해 97세로, 17살에 해방을 맞았다. 해방 전 정신대로 끌려갈 뻔했는데 집안 바다신릴게임 오빠가 어르신만 빼냈다고 한다.
17살에 두 살 많은 남편을 만나 시집을 갔다. 딸이 서울로 이사 가면서 자기 옷들을 모두 집에 두고 갔다며 한참을 흉을 보신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딸이 보고 싶다는 말씀이다. 따지고 보면 그 딸도 벌써 70이 넘은 노인이다.
혼자 큰집에 살며 일상생활은 거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아침을 드셨냐고 여쭈면, 반찬이 없어 간장에 밥을 찍어 먹었다고 하신다. 센터에서 점심과 저녁을 드시지만, 집에서의 생활은 엉망이다. 씻는 것, 식사, 빨래 모두 제대로 되지 않는다. 옆구리가 아프다 하셨는데 대상포진이었다. 2주가 지나 딱지가 거의 떨어졌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진모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80이 다 되어가는 남자 어르신 집은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코를 찌른다. 화장실이 있음에도 마치 아무 데서나 소변을 본 것처럼 냄새가 난다. 진모 어르신 역시 점심과 저녁을 센터에서 드신다. 제대로 된 식사는 하루 두 끼뿐이다.
매일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두 어르신을 모시고 9시가 넘어서야 센터로 돌아왔다. 어르신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만, 요양보호사인 나는 3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어르신과 함께 타지 않는 이상, 엘리베이터는 탈 수 없는 규칙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3층을 오르내린다.
인사와 칭찬으로 시작되는 오전
3층 생활실로 들어서며 자리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과 눈을 맞춘다.
"안녕하세요.""오늘도 멋진 모자를 쓰고 오셨네요.""역시 우리 센터의 패셔니스타는 다르십니다. 멋지십니다.""어머, 벌써 퍼즐을 다 맞추셨어요? 대단하세요. 다른 거 드릴까요?"
어르신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며 인사드린다. 이런 인사만으로도 어르신들은 웃으신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5개월 차인 지금은 익숙하다.
9시 30분, TV 영상으로 건강 체조가 시작된다. 국민체조부터 치매 예방 체조, 율동과 스트레칭까지 50분 정도 진행된다. 여자 어르신들은 대체로 잘 따라 하신다. 애교도 많고, 건강에 대한 관심도 많아 스스로 움직이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신다.
반면 남자 어르신들은 눈으로 운동을 한다. 여자 어르신들이 많아 부끄럽기도 하고, 체조를 할 만큼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분도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건강 체조를 하는 동안 오전 간식을 준비하러 주방으로 간다. 매일 똑같은 간식은 마차다. 오늘도 왕원장은 주방을 들락거린다.
"샘, 너무 진해.""연하면 맛이 없잖아요. 이 정도는 해야 그래도 마실만 한데.""원장이 싫어해요."
공짜로 먹는 것도 아닌데, 밥값과 간식값은 다 내는데, 속에서 부아가 치민다. 하지만 나는 이제 5개월 차 요양보호사다.
"어머니, 오늘 무슨 요일이지요? 오늘은 7월 8일 화요일입니다. 오늘은 새로 민요 선생님이 오실 거에요. 맛있게 마차 드시고 즐겁게 하루 보내요. 자, 겨드랑이를 많이 두드리면 좋아요. 열 번씩 칠게요. 하나 둘. 가슴도 만져 줘야 유방암 예방에 좋대요. 아버지들이 보시니까 돌아앉아 가슴도 주물러 주세요. 하나 둘..."
"오늘 신체는 뭐 하지?""볼링 할까요? 이번 달에는 아직 안 한 거 같은데요?"
10시 30분, 마차를 다 드신 어르신들의 컵을 회수하며, 홍보 담당과 오늘 신체 활동을 무엇을 할지 의논한다. 볼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10개의 책상을 양쪽으로 밀고, 의자도 재배치해야 한다. 어르신들이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운다.
활동력이 좋은 어르신들은 직접 책상을 밀고 의자를 당기며 도와주시지만, 넘어지라도 하면 큰일이다. 지팡이를 짚으시는 어르신은 반드시 이동을 보조해야 한다. 책상이 옮겨지는 어수선함 속에서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어르신은 눈만 멀뚱히 뜨고 계신다.
"오늘은 볼링을 할 겁니다. 공 2개를 드릴 거예요. 공을 굴려서 핀 10개 중 8개를 넘어뜨리면 동전 하나를 드립니다."
볼링핀을 세우는 사람, 공을 주는 사람, 어르신을 순서대로 이동시키는 사람, 넘어지지 않게 잡아드리는 사람 등 5명의 요양보호사가 긴장 상태다. 사회복지사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다. 5개월 차인 나는 어르신 이동을 담당하며, 넘어지지 않도록 팔과 허리를 잡는다.
선임 요양보호사들도 신체 활동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저 선임의 방식을 보고 따라 할 뿐이다. 놀이 규칙만 배우고, 진행 역량은 제각각이다. 그래도 신체 활동은 경쟁이 붙어 어르신들이 흥미로워 한다. 잘하면 박수, 못하면 안타까워하며 서로 응원한다. 진행하는 요양보호사들도 덩달아 '잘했다' 추임새를 넣고, 손을 잡고 춤도 춘다.
반면 인지 활동으로 그림 색칠을 진행할 땐 상황이 다르다. 주제 설명과 관련 이야기, 어르신의 답변을 이끌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주에는 실장이 시범을 보여주고, 다음부터 우리에게 맡겼다. 욕이 절로 나왔다. 매일 신체·인지 활동을 10분 전에 준비하고, 개인 역량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때 주방에서 부른다. 밥이 왔다고.
▲ 식사 시간 가장 잔인한 계산의 순간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CHAT GPT를 활용하여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
39인분으로 50명이 먹는 점심
오늘도 39인분의 식사가 도착했다. 오늘 등원한 어르신은 40명. 종사자가 10명, 총 50명이 39인분으로 점심을 먹어야 한다. 저녁에 5인분이 들어오니 4인분 정도는 덜어 둬야 한다.
"진짜 왜 먹는 걸 가지고 장난하는 건데.""밥 먹는 사람이 50명인데, 39인분으로 찍어 바르려니 참."
"이모님, 저녁밥 빼 놓으셔야지요?""그건 내가 맨 먼저 하는 것이라,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진짜 못할 짓이다. 이게 맨날 뭐하는 짓이고?"
어르신들에게 좀 더 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종사자들이 먹을 게 없다. 아무 말 없다고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치사하게 식사를 속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말씀이 없다.
고기를 드시지 않는 분들은 따로 분리하여 냉장고를 뒤져 넣는다. 음식 준비 여건이 제한적이라 전날 남은 반찬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그걸 그렇게 놓으면 어떠하노?"
왕원장이 팔을 확 쳐 올리며, 자신이 준비한 반찬을 들고 나간다. 상왕은 하루 종일 센터의 일을 감시하고 간섭한다.
식판을 들고 어르신들 옆 빈자리를 찾아 앉아 밥을 먹는다. 102세 명순 어르신이 바닥에 흘린 것을 닦으려 허리를 굽히자,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난다.
"어르신, 제가 할게요.""아이다, 내가 해도 된다."
손을 휘이휘이 저으시지만,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어르신을 돕는다. 바닥을 닦다가 넘어지면 큰일이니까.
밥을 먹는 동안에도 귀는 사방으로 열려 있다. 젓가락 떨어지는 소리, 빨리 식사를 마친 어르신이 일어설 때, 자동으로 식판을 받아야 한다. 처음엔 체할 것 같았지만, 5개월 차인 지금은 소화불량까지는 가지 않는다. 30분 동안 점심을 먹고, 12시 30분부터 순차적으로 30분 휴식 시간이다.
쉴 곳 없는 휴게 시간
▲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감당해야 하는 시간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CHAT GPT를 활용하여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
휴게공간은 엘리베이터 앞 의자뿐이다. 독립된 공간이 없어 커튼을 치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최근에는 2층 CCTV 사각지대를 찾아 잠시 누워 쉰다. 선풍기는 없지만 창문을 열고 등을 붙이면 잠시라도 시원하다.
2시 30분까지는 어르신들의 자유 시간이다. 고스톱을 치는 분들, 수면실에서 주무시는 분들, 담소를 나누는 분들, 미스터트롯을 보고 노래 부르는 분들... 하우스를 방불케 하는 고스톱판이 5~6곳 펼쳐진다. 십원짜리 동전으로 치는 고스톱은 이기고 지는 것보다 시간을 보내기 딱 좋다.
처음엔 규칙과 점수 계산이 어려웠지만, 한 달도 안 돼 익혔다. 그림 따먹기로 모은 화투 장을 점수 계산하며 승자를 판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순 어르신과 외근 어르신 자리에 앉아 같이 고스톱을 친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7살 때까지 땅에 발을 안 붙였다.""내는 틀림없는 사람이다. 속이려 하면 가만 안 둔다, 확 팼뿐다."
외근 어르신과 화투를 치다가 정순 어르신이 갑자기 큰소리로 화를 낸다. 외근 어르신이 속였다고, 자기는 화투장이 몇 개 없는데 왜 많냐고 따진다.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어르신, 속인 게 아니고 싼 거 들고 가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이 번쩍 올라온다. 순간 흠짓 놀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려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가만 있으면 정말 맞을 판이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정순 어르신 귀에 대고 설명한다. 귀가 어두운 정순 어르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손을 잡고 웃으신다.
"이게 무슨 냄새지?""샘, 어디서 똥냄새 안나요?"
방금 덕남 어르신 화장실에서 나오셨는데, 변 실수를 하신 듯 하다. 덕남 어르신은 배변은 스스로 하실 수 있는데 오늘은 왜 그런지 살펴보니 설사였다.
"내가 다 했다. 화장실 가는데 나와서 내가 다 정리했다."
어르신도 급해 화장실로 가셨지만, 정리까지는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선임이 1층 목욕실로 모시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나는 화장실 정리를 담당한다. 변기와 바닥을 닦고, 휴지통을 비우고 새 비닐을 끼우니 땀에 절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세상에 온 듯 시원했다.
오늘은 민요 강사가 오는 날이다. 월요일은 실버 스포츠, 화요일은 민요, 수요일은 웃음 치료, 목요일은 자체 프로그램, 금요일은 블록 활동 등 매일 정해진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는 어르신들이 참여하시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요양보호사는 정해진 위치가 있다. 보통 매달 담당하는 어르신은 7명 정도다. 매일 요양일지를 기록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담당 어르신 주변에서 활동을 보조했다. 지난달 직원회의에서 원장은 요양보호사들이 뒷자리에 몰려 있는 것을 지적했다. CCTV로 보고 선생님들이 모여 있으니 지적했다는 것이다.
CCTV로 감시된다는 말을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 불쾌함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만의 분노를 삭힌다. 그다음은 자기검열이다.
하루의 끝, 바나나 반 개
어느덧 하루가 끝나간다. 오후 프로그램이 끝나는 3시 30분, 간식으로 바나나 반 개가 나왔다. 한 개도 아니고 반 개라니. 접시에 담아 드렸다면 조금 나아 보였을까? 그마저도 손에 들려 드린다.
간식을 다 드시면 어르신들의 얼굴이 약간 들뜬 모습이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학교에 있다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즐겁고 신나듯,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꼭 그와 같은 얼굴빛이 보인다.
저녁을 드시는 10명의 어르신을 제외하고, 차량별로 귀가가 시작된다. 매일 타는 차량이지만, 어르신들은 흰색인지 노란색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매일 바뀌는 작은 차량 운전자의 손에 이끌려 귀가 송영이 시작된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되는 송영은 5시 퇴근 시간에 맞추어 바쁘게 진행된다.
어르신들이 모두 내려가면 에어컨이 꺼진다. 에어컨 온도를 25도 이하로 낮출 수 없는 실내, 하루 종일 40여 명의 어르신과 10여 명의 종사자가 웅성거렸던 3층 생활실은 싸움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더위에 예민해진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는 정말 빠르게 흐른다. 우리 어르신들에게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갈까. 5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집에 가면 또 요양일지가 기다린다. 칼퇴근을 좋아했지만, 퇴근 후에도 최소 30분은 또 일을 해야 한다. 몸에서 쉰내가 난다.
존엄을 지킬 틈이 없는 하루
▲ 요양보호사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
저는 5개월 차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입니다. 주간보호센터의 하루는 금세 지나갑니다. 오전 8시에 출근하면 오후 5시 퇴근이 순식간입니다. 그렇게 5개월이 흘렀습니다.
15년 동안 해 오던 아동·청소년 돌봄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구직활동을 하던 중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8시 출근, 5시 퇴근. 손이 많이 가는 아이를 돌볼 시기는 지나 이제는 이른 출근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렇게 주간보호센터 어르신 돌봄이라는, 어쩌면 극과 극에 있는 연령대의 돌봄 노동자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면서, 말로만 듣던 3개월·6개월 단위 근로계약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수습 기간이라고는 하지만 보통은 1년 단위 계약에 그 안에 수습 기간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던가요. 제가 알고 있던 노동 상식은 첫 출근 날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깨졌습니다.
업무를 알려주는 선임은 저보다 두 달 먼저 입사한, 저와 마찬가지로 수습 기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별도의 매뉴얼은 없는 듯했고, 선임이 두 달간 익힌 내용을 그대로 전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어르신 송영과 내부 업무, 주방 담당, 간호 업무, 홍보 등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 보이는 일들은 모두 말로 전달되었고, 저는 받아 적으며 익혀야 했습니다. 인수인계 없이 현장에 바로 투입되어 부딪치며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며 가장 낯설었던 풍경은 어르신들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였습니다. 호칭은 '엄마', '아버지'였습니다. 아무도 '어르신'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현관 출입문에는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라는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40여 명의 어르신들은 모두 엄마, 아버지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거나 반말을 하는 것도 일상이었습니다. 좋게 보면 진짜 부모를 대하듯 친근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생판 남인 어르신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메모였습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의 이름을 외워야 했습니다. 간식이나 식판을 들고 어르신께 다가가야 하는데, 누가 누군지 몰라 한참을 서성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요양일지를 작성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컸습니다. 기본 포맷도, 작성 요령도 없었고, 무엇보다 어르신 이름을 모르니 내용을 쓸 수 없었습니다. 배정된 7~8명의 어르신 하루 일과와 특이사항, 기억에 남는 말씀들을 따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메모하는 제 모습을 보고 실장과 주임이 궁금해하며 이유를 묻기도 했습니다.
일을 시작하며 어르신을 돌보는 일이 제 체질에 맞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과는 달리, 지금 이 순간 함께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는 점이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저를 예뻐해 주셔서 적응도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나면서 돌봄 노동자로서의 자부심과 긍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이야기, 금사동 공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이야기 등 어르신들의 삶의 흔적은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CCTV 아래에서 일한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존중과 배려, 이해와 존엄의 태도로 대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하루 종일 쫓기듯 움직여야 했습니다. 돌봄은 개인에게 맡겨진 채, 운영자들은 이익을 좇아 사소한 비용에도 지나치게 인색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마인드에도 점점 지쳐 갔습니다.
CCTV로 직원들을 감시하고, 목욕 후에는 가림막을 친 복도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며, 가스요금이 나온다며 설거지할 때 따뜻한 물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 전기요금 때문에 에어컨을 켜지 말라는 말도 듣습니다. 식사 인원보다 적은 식사량, 그리고 무엇보다 어르신들을 수익 대상으로 여겨 결석도 출석으로 입력하고 송영 시간을 늘리는 불법과 편법을 보며, 과연 이 일을 계속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자신은 늙지 않을 것처럼, 혹은 늙어도 이런 곳에는 오지 않을 것처럼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려 움직이는 이곳에서, 어르신의 존엄을 지키는 돌봄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이제 겨우 5개월 차이지만, 어르신 돌봄이라는 인생 2막의 직업이 언젠가는 자랑스러워지기를 바랍니다. 처음 어르신을 돌보는 일이 마치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람 있었다고 말하던 어느 선임 요양보호사의 말처럼, 돌봄 노동이 자랑스럽고 존경받는 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국가 돌봄 책임을 요구하는 돌봄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함께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미 이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있고, 그 뒤를 따라가는 저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돌봄은 이미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이, 제가 하는 이 돌봄 노동이 언젠가는 다른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일이기를 희망해 봅니다. 종국에는 저 역시 이곳에 오게 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