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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간 지고 뒤통수에 것 입으면 프로포즈를 알고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비영리재단 ‘푸르메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장애인 복지 선진국’ 캐나다 밴쿠버를 찾았다. 푸르메재단 조사단이 2025년 초여름 목격한 캐나다 장애인의 ‘보통의 삶’을 전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동체 ‘라르시 그레이트 밴쿠버’ 구성원인 콘라드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원 생활 주택 공용 공간에서 푸르메재단 조사단과 대화하고 있다. 푸르메재단 제공 



"어서 오세요. 이웃집 낙엽 청소를 도와주고 지금 막 들어오는 길이에요. 나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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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버나비시 서섹스 애비뉴 7415번지에 있는 한 건물. 이곳에서 만난 '라르시 그레이트 밴쿠버(L'Arche Greater Vancouver)'의 구성원 콘라드 씨가 푸르메재단 조사단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콘라드 씨는 조사단에게 자기 삶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했고, 주변에 앉아 있는 다른 구성원들과도 자연스럽게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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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처럼 다양한 이가 모인 곳라르시 그레이트 밴쿠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인 공동체다. 1964년 장 바니에(Jean Vanier)가 2명의 지적장애인과 프랑스 농장에서 함께 살았던 것을 모태로 한 '라르시 공동체' 중 하나다. 바니에는 캐나다인 신학자이자 토론토대 성 미카엘 신학대학 철학 교수였다. 라르시는 프랑스어로 '재테크상담
방주(the Ark)'를 뜻하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에 여러 생명이 탔듯이 라르시 공동체에서는 배경과 개성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지낸다. 라르시 공동체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 형성돼 있다. 캐나다에는 31개가 있고 한국에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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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시 그레이트 밴쿠버가 지은 한 지원 생활 주택이었다. 이곳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룹홈(장애인이 자신을 지원하는 사람과 함께 거주하는 공간) 3가구와 독립 생활공간 10가구, 비장애인 주민을 위한 임대주택 29가구가 있다. 침실 같은 개인 공간은 약 6.6~10㎡(2~3평) 크기로 다소 좁은 반면, 공동 주방과 거실, 옥상 편의시설, 회의실, 도서관, 예마이웨이스탁
배실 등 입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은 널찍하게 마련돼 있다. '생활을 공유한다(share life)'는 라르시 공동체의 정체성을 반영한 듯했다.
라르시 공동체는 발달장애가 있는 핵심 멤버와 이들을 돕는 어시스턴트 멤버, 그리고 임대주택에 사는 비장애인들로 구성된다. 핵심 멤버와 어시스턴트 멤버는 식사 준비, 설거지, 청소, 쇼핑, 산책 같은 일상생활을 함께한다. 주말에는 같이 마을로 나가 볼링을 치거나 영화를 보는 등 구성원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즐기기도 한다. 어시스턴트 멤버는 지원 생활 주택에서 핵심 멤버와 함께 거주하거나 핵심 멤버가 있는 곳으로 출퇴근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버나비에 있는 지원 생활 주택. 이곳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룹홈 3가구와 독립 생활공간 10가구, 비장애인 주민을 위한 임대주택 29가구가 살고 있다. 푸르메재단 제공 



고령 장애인도 함께 지내는 공동체어시스턴트 멤버는 단순한 '돌봄 제공자'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생활 동반자로 여겨진다. 라르시 공동체의 저녁식사 문화가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구성원들이 매일 식탁에 모여 저녁밥을 함께 먹으면서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등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함께 여름휴가를 계획해 휴식을 즐기기도 한다.

페이페이 펭 라르시 그레이트 밴쿠버 전무이사는 라르시 공동체에 대해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신뢰하는 관계로 성장하는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장애가 있는 핵심 멤버를 단순한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구성원과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주체로 인정한다고 했다. 짐 래티머 라르시 그레이트 밴쿠버 사장은 "각자에게 어떤 능력이 있든 모두가 소중하며 사회에 이바지할 고유한 재능을 가졌다"고 말했다.
라르시 공동체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희망' 그 자체다. 라르시 공동체 구성원들은 가족의 보살핌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건강 지원 등 고령 장애인을 위한 지원체계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펭 전무이사는 "얼마 전 지역 내 한국인 부모들이 방문해 라르시 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봤다"며 "그들은 '(라르시 공동체는) 부모가 없는 장애 자녀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고령의 한 발달장애인이 라르시 그레이트 밴쿠버가 운영하는 지원 생활 주택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다. 푸르메재단 제공 



잦은 구성원 이탈은 숙제라르시 그레이트 밴쿠버는 장애인이 안전한 '내 집'을 일구고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 이를 위해 소셜믹스(Social Mix: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것) 주택을 건립해 비장애인 입주민에게 낮은 임대료만 받고 주택을 제공했다.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 입주민의 교류는 기대만큼 활발하지 않았다.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비용과 법적 문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자 라르시 그레이트 밴쿠버는 장애인 구성원을 위한 서비스 기관과 건물 등 자산을 관리하는 재단을 분리해 운영했다. 그런데 이러한 운영 방식 때문에 지원 생활 주택에 함께 거주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물리적으로만 가까울 뿐 실질적으로는 교류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 이에 라르시 그레이트 밴쿠버는 공동 식사, 생일 같은 기념일 축하 행사, 지역 내 봉사활동 등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입주민이 지역사회에서 이웃들과 활발히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어시스턴트 멤버가 공동체를 이탈하는 것도 이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어시스턴트 멤버 중에는 외국인이 적잖은데 비자 문제 등으로 라르시 공동체를 떠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이다. 구성원의 잦은 교체는 공동체에 새로운 문화를 불어넣는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인간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과의 잦은 이별로 장애인 구성원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라르시 공동체는 장애인을 위한 진정한 통합 주거모델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한 건물 안에 모아두는 것을 넘어 이웃 간 자발적인 교류와 공동체성이 살아나는 주거모델이 필요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장애인에게 안전한 집과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라르시 그레이트 밴쿠버의 여정은 장애인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과정일 것이다. 
버나비=서빛나 과천시장애인복지관 서비스지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