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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라유빛 작성일26-01-11 09:07 조회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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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사랑을 위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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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reelnara.info
‘학살자’.
그는 제 밥그릇에 손을 대는 자에게, 결코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경쟁자를 자근자근 밟아서, 시장에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만들었다. 시장은 모두 그의 것이어야 했고, 그 외의 자가 군침을 흘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경쟁자를 죽일 궁리에 밤낮이 없어서, 온몸에 털이 다 빠져나가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탐욕이 무궁하여서, 그는 터럭을 모두 잃었으나, 그 대가로 석유 시장을 완전히 지배했다. 그는 석유의 황제였다. 미국의 모든 돈이 그의 주머니로 향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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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름은 다 록펠러 것이라오.” 뱅크시의 크루드 오일. [사진출처=소더비]
사업에서 주린 들짐승 같았던 사내는, 일터에서 돌아온 후에는 ‘신의 아들’이었다. 성경을 펼치고, 신의 말씀을 다시 새겼다. 억만금의 돈은 모두 신의 것이라면서, 바다신2 다운로드 신의 어린양들에게 다시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번 것만큼이나, 내놓는 금액도 천문학적이어서, 그는 지상에 천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경제사에 길이 남는 회사 ‘스탠다드 오일’로 미국 제국을 기름칠했고, 전례 없는 기부로 미국에 윤을 낸 사나이. 홀로 미국 GDP의 3%를 차지한 남자, 존 D. 록펠러의 이야기다. 세계 릴게임손오공 역사상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인물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사나이였다.
“미국의 GDP 3%를 가진 부자는 나밖에 없지.” 존 D. 록펠러.
빅뱅의 사나이, 록펠러
야마토게임다운로드모든 존재는 아주 ‘작은 점’의 폭발에서 기원한다. 빅뱅이었다. 존 D. 록펠러를 설명할 때 ‘빅뱅이론’을 갖다 붙이는 것만큼 적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그의 씨앗은 작고, 가난하여서, 그만큼 가여운 것이었으니까.
록펠러 생가. 뉴욕의 리치포 골드몽릴게임릴게임 드.
방탕한 파락호와 정숙한 요조숙녀의 씨앗에서 존 D. 록펠러가 발아했다. 1839년 미국 뉴욕에서였다. 아버지 윌리엄은 허풍으로 뉴욕을 주름잡는 인사였고, 가족에게도 허세를 부리는 걸 멈추지 않아서, 큰돈을 벌어오겠다며 몇 달 동안 집을 나서서 돌아오지 않기 일쑤였다. 약조한 돈은 만무하고, 윌리엄은 빈털터리였다. 이 여자 저 여자 들쑤시면서 사생아를 여럿 낳아 자손이 많았으므로 완전한 빈손은 아니었다. 윌리엄은 그렇게 가족을 떠나 버렸다. ‘떠났다’보다는 ‘버렸다’에 방점이 찍히는 행보였다.
품행이 바른 어머니 엘리자는, 이 고통 속에서도 신의 뜻이 있을 것이라면서, 남편의 호색행위를 반면교사 삼아 자신의 행실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았다.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를 것을 훈육했다. “일하고, 저축하고, 베풀라”는 목사의 말씀을 뼈에 새겼다.
거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어머니가 자랑스러워서, 존 D. 록펠러는 그녀를 본보기 삼아 하나님의 양으로 살기를 맹세했다. 무료 공립학교에 들어가 회계를 공부하고, 밤에는 집안일을 거드는 든든한 아들이 록펠러였다. 엘리자는 신의 저주와 같은 남편으로부터, 신의 축복인 록펠러가 태어난 신묘함에 탄복했다.
“어머니, 제가 가난에서 구해드릴게요.” 18세의 록펠러.
일의 세계로 나아간 작은 씨앗 록펠러
록펠러는 어머니의 어깨를 짓누르는 가난이 싫어서 고작 16살 때부터 일터에 나갔다. 클리블랜드 농산물 위탁 회사 휴잇 앤 터틀(Hewitt & Tuttle)이었다. 일개 회계 보조원이었으나, 그의 업무 능력은 남달랐다. 농산물 운송료 협상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서였다. 회사의 군살을 줄여서, 조직의 움직임이 재빨라졌고, 회사 규모도 그만큼 커졌다. 록펠러의 월급은 매해 올라갔다.
급여는 뛰었지만, 가족을 건사하기엔 빠듯한 액수였다. 부를 일구겠다는 록펠러의 야망을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농산물이 수확되고, 유통되고, 시장에서 팔리는 경로를 모두 꿰뚫었으므로, 동업자와 어엿한 자기만의 회사를 차렸다. ‘클러크&록펠러’였다. 농산물 위탁판매를 업으로 하는 회사였다. 그의 나이 고작 20살이었다.
“전쟁은 밥심, 아니 빵심으로 하는 것이다.” 남북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앤티텀 전투를 묘사한 그림.
신은 그의 사업을 축복하는 듯이, 록펠러에게 선물을 안겼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터져서였다. 전쟁은 총만큼이나, 밥이 중요한 것이어서, 링컨의 북군은 농산물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클러크&록펠러’의 수익이 급증했다. 록펠러의 정신은 언제나 또렷하여서, 성공에 취하지 않았다. 이번 성공이 ‘업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발성 행운’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경쟁자들이 1리 앞을 보고 달릴 때, 록펠러는 1000리를 내다보는 눈이 있어서, 그는 농산물 위탁업 대신 새로운 사업에 눈을 돌렸다. ‘석유 산업’이었다.
“여기서 인류의 에너지 역사가 새로 쓰일 것이네.” 미국에서 첫 유정을 발견한 에드윈 드레이크.
고래의 세계에서, 석유의 세계로
1860년 이전까지, 세계를 밝히는 건 고래였다. 향유고래기름이 기계를 굴리는 윤활유였고, 부잣집 램프에서 타올랐다. 고래의 크기만큼이나, 가격도 비싸서, 고래기름은 오직 대저택에서만 빛났다. 포경선은 매일같이 대해(大海)를 누비며 집채만 한 고래에 작살을 던졌다.
고래를 구한 건 ‘검은 물’, 석유였다. 땅속에서 길어 올린 원유(crude oil)를 불에 가열하면, 등유가 뽑아져 나왔고, 고래기름만큼이나 활활 타올랐다. 그만큼 훌륭한 에너지원이라는 의미. 점점 더 많은 사업가들이 고래의 바다에서, 석유의 미국 들판으로 눈을 돌렸다.
“자~~~떠나자~~~고래 잡으러~~~” 뉴잉글랜드의 고래잡이. 1860년 그림.
석유는 생산비용이 낮았다. 고래기름을 얻기 위해서는 거대한 포경선, 고래의 꽁무니를 쫓을 수 있는 감, 배짱이 두둑한 바다 사나이가 필요했다. 석유 채굴은 그저 삽과 곡괭이면 충분했다. 석유로 큰 부를 이루겠다는 뜨내기들이 너도나도 삽질해댔다.
허풍선과 다름없는 이 치들은 막 파낸 검은 물이 “진짜 고품질 등유”라면서 마구잡이로 팔아댔고, 순진한 사람들은 고래기름보다 저렴한 가격에 눈이 돌아서 “나도 부자놈들처럼 램프 한번 써보자”면서 덜컥 등유를 사들였는데, 램프에 검은 물을 담아 성냥불을 붙이자 기다렸다는 듯 폭발해버렸다. ‘정제’(Refining)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었다. 폭발 사고는 하루가 멀다고 벌어졌다. 사람들은 검은 물에서 악마를 봤다. 석유는 ‘악마의 불’이었다.
“이것도 설마 터지진 않겠지...” 노르웨이 화가 해리엇 배커의 그림. 램프를 사용하는 여인이 그려져 있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세우다
록펠러는 뜨내기들이 만든 무질서를 혐오했다. 석유 산업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겠다는 소명의식이 움텄다. ‘악마의 불’을 ‘신의 불’로 만들겠다고 그는 굳게 마음먹었다. 그가 만든 석유 회사가 ‘스탠다드 오일’인 이유였다. 석유의 기준을 만들겠다는 록펠러의 의지가 녹아있었다.
다른 어중이떠중이 사업자처럼 대중없이 대충 생산해서, 적당히 파는 방식과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록펠러는 독일 출신 천재 화학자 허먼 프레시와 손을 잡았다. 아주 정교한 정제를 위해서였다. 록펠러의 등유는 맑고 고왔다. 안전하게, 은은하게, 폭발하지 않고 타오르는 등유가 경이로워서,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스탠다드 오일’은 석유의 기준을 새로 세웠다.
“석유의 새로운 기준, 그게 스탠다드 오일이라네.” 록펠러 초상화.
1880년 오하이오주 리마에서 거대한 유전이 발견됐다.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유전에 ‘황’ 성분이 많아 달걀 썩은 내가 진동해서였다. 석유보다는 썩은물에 가까웠다. 록펠러가 이 유전을 염가에 사들였을 때, 사람들은 “그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상황은 반전했다. 그가 화학자 허먼을 부려서, 석유에 붙은 황 성분을 쉽게 제거했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원재료에서, 최고의 등유를 뽑아낸 마술사가 록펠러였다. 록펠러의 부는 가늠할 수 없었다.
“달러보다 더 안전한 스탠다드 오일 주식 사세요~” 1878년 5월 1일 발행된 스탠다드 오일 회사 주식.
경쟁자 학살에 나선 록펠러
“경쟁은 죄악입니다.”
석유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세웠으나, 스탠다드 오일의 경쟁자는 여전히 여럿이었다. 록펠러는 이 경쟁에 경기를 일으켜서, 스탠다드 오일만이 독점하는 세계를 새로 그리기 시작했다. 석유 시장은 신이 약속한 록펠러의 땅이었고, 이단자들이 존재해선 안 되는 땅이었다.
록펠러는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했다. 등유의 가격을 후려침으로써, 선전포고에 나섰다. 경쟁자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의 제품을 앞세웠다. 1860년 갤런당 58센트던 등유 가격을 1870년 26센트로 떨어뜨렸다. 철도 업자들로부터 막대한 운송 배송을 약속하면서, 배송 비용을 대폭 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텅 빈 기차가 두려운 업자들은 스탠다드 오일로 가득찬 기차가 기껍고 반가워서, 록펠러에게 경쟁사의 배송 현황까지 갖다 바쳤다.
“자 기름 뽑아라, 경쟁자가 죽을 때까지.” 스탠다드 오일 유정.
록펠러의 무차별 총질에도, 여전히 견디는 경쟁자가 있어서, 스탠다드 오일은 등유 가격을 갤런당 9센트까지 밀어붙였다. 만들수록 손해였어도 상관없었다. 석유의 땅에서, 록펠러가 아닌 이름은 지워져야 했으니까. 마지막 숨을 헐떡이던 경쟁자들의 숨통이 끊겼다. 경쟁자의 통곡은 쉽게 들리지 않았다. 소비자의 환호가 덮어서였다.
공포에 떨던 경쟁자의 앞에 록펠러가 나타났다. 인수·합병을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록펠러의 표정은 단호했다. “회사를 넘기든가, 파산하든가.” 1872년 단 3개월 사이 클리블랜드에 있던 26개의 정유사 중 22개가 록펠러의 손으로 넘어갔다. ‘클리블랜드의 대학살’이었다. 경쟁의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에 치어서, 그의 털들이 송이째 흩날렸다. ‘전신탈모증’이었다.
세상은 록펠러를 ‘학살자’라고 불렀지만, 록펠러는 자신을 ‘정원사’로 여겼다. 스탠다드 오일이라는 장미가 돋보이기 위해서, 잔가지는 잘려야 하는 법이었다. 록펠러가 만든 에덴동산의 붉은빛이 장밋빛인지, 핏빛인지, 사람들은 헷갈렸다.
“모든 건 스탠다드 오일의 것이어야해” 스탠다드 오일의 독점 상황을 풍자한 1904년 9월 그림.
석유의 왕 록펠러
록펠러. 그는 석유의 왕이었다. 말 한마디로 미국을 멈춰 세울 수 있는 권력자였다. 집을 밝히는 등유도, 차를 굴리는 휘발유도, 만병통치약인 바셀린도, 모두 록펠러의 지휘 아래 유통되고 있었으니까. 1870년에만해도 시장 점유율이 4%에 불과했던 스탠다드 오일은,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시장의 90%를 먹어 치운 공룡으로 변해 있었다.
“난 이 시대의 카이사르지…” 록펠러를 산업 황제로 묘사한 잡지.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어서, 독점이 완성된 주(State)에서 스탠다드 오일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경쟁자가 떡하니 버틴 곳에서만 스탠다드 오일은 가격을 후려쳤다.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경쟁자를 폐업시키기 위해서였다. 느닷없이 올라가는 기름 가격에, 미국 소비자는 악소리를 냈다.
미국 의회는 이 신음에 놀라, 날뛰는 스탠다드 오일에 재갈을 물리는 반독점법을 통과시켰다.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이었다. (셔먼은 상원의원의 이름). 신문쟁이들은 이를 ‘반(反)록펠러 법’이라고 읽었다.
록펠러는 정치의 위에 있는 기업인이었다. 뉴저지에 스탠다드 오일 지사를 새로 세워서, 전국 지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 구조를 창조해냈다. 뉴저지에서는 독점에 관한 규정이 느슨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반독점법은 독하고 날카로웠으나, 록펠러의 성은 그보다 더 견고하여서, 법은 록펠러 앞에서는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독점이라고 자네들이 부르는 걸, 난 혁신이라고 부르지.” 미국 화가 존 싱어 서전트가 그린 록펠러 초상화. 1917년.
루즈벨트, 몽둥이를 꺼내다
법 위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분하고 복받친 사내가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었다. 테디 베어의 모델일 정도로 둥글둥글 하고 곰살맞은 인물이지만, 그의 속은 야생 곰에 가까웠다. 루스벨트는 매일같이 되뇌었다. “말은 부드럽게하되 몽둥이를 지니고 다녀라.”(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
“미친 개와 미친 기업은 몽둥이가 약이지.” 존 싱어 서전트가 1903년 그린 루즈벨트.
루스벨트는 몽둥이를 스탠다드 오일에 겨눴다. 1910년 3월 미국 정부는 스탠다드 오일을 셔먼법(반독점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역사적인 법정 다툼인 ‘스탠다드 오일 뉴저지 VS 미합중국’ 케이스였다. 1년의 치열한 법정 공방, 그 끝에 나온 연방대법원의 결론은 극적이었다.
“모든 독점이 불법인 것은 아니며, 오직 ‘비합리적(unreasonable)’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행위만이 불법이다. 스탠다드 오일의 행위는 명백히 비합리적이고 약탈적이다. 스탠다드 오일은 34개의 기업으로 해체하라.”
승리의 여신은 미합중국에 미소 지었다. 세계 경제사에 유례없는 독점 기업의 해체였다.
“곰이 뱀을 찢는 진귀한 장면을 보여주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뱀으로 변한 록펠러와 싸우는 풍자화.
다시, 신의 아들로
‘주라, 그리하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누가복음 6장 38절)
록펠러는 정치적으로는 패배했으나, 경제적으로는 크게 이겼다. 분열된 회사들이 각자 경쟁 체제로 들어가면서, 실적이 크게 뛰어서였다. 대주주인 록펠러의 재산도 덩달아 불어났다는 의미였다. 스탠다드 오일 뉴저지는 엑손으로, 뉴욕은 모빌로, 인디애나는 아모코로, 캘리포니아는 셰브론으로 다시 훨훨 날았다. 해체 전 록펠러의 재산은 3억달러였으나, ‘분할당한’ 후 재산은 9억달러로 3배나 증가했다. 미국의 첫 억만장자라는 왕좌에 앉은 사람은 록펠러였다.
셈할 수 없는 재산으로, 그는 신의 뜻을 잇기로 했다. 야수같은 정신으로 빨아들인 수익을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3500만 달러로 시카고 대학교를 세운 뒤에는 주로 의료기관에 돈을 댔다. 1901년 설립된 록펠러 의학연구소가 대표적이었다.
시카고 대학에 세워진 록펠러 채플. [사진출처=puroticorico]
거침없는 지원액으로, 미국에서 황열병이 사라졌다. 연구소는 수막염과 폐렴의 치료법도 발견했다. 소아마비 전염 경로를 밝히고, 스페인독감의 원인까지 찾아냈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말라리아, 황열병 퇴치 사업을 벌인 것도 록펠러 재단이었다. 하나님의 양들 사이에서는, 피부색의 구분이 없다고 믿어서, 흑인 여성 교육 기관에도 거금을 쾌척했다.
1935년 5월, 그가 97세로 눈을 감을 때, 그의 총 기부금액은 5억 4000만 달러였다. 수중에 재산은 겨우(?) 2500만 달러. 전성기 재산의 5% 미만이었다. 일하며 인류를 석유의 세계로 이끌었고, 베풀면서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사나이, 존 D. 록펠러. 한때 세계의 모든 걸 가졌던 사나이는 맨몸이 되어 다시 신에게 돌아갔으나, 인류의 삶은 록펠러 전과 록펠러 후로 달라져 있었다. 경제 혁신은 물론, 독점에 대한 교훈까지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세워진 록펠러의 무덤. [사진츨처=THD3]
“인간은 다시 날것으로 신께 돌아가야 하지.” 존 D. 록펠러.
<네줄요약>
ㅇ‘스탠다드 오일’ 창업자 존 D 록펠러는 1910년대 미국 GDP의 2.3%에 버금가는 부를 가지면서 역사상 최고 부자 중 하나로 통한다.
ㅇ그는 무질서한 석유산업에서 과학적인 정제 방식을 통해 석유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ㅇ경쟁을 극도로 혐오해서 저가 후려치기로 경쟁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시장에서 내쫓았다.
ㅇ미국 정부가 독점 혐의로 스탠다드 오일을 해체한 이후, 그는 자신의 부를 대부분 사회로 환원하는 기부의 전범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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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제가 가난에서 구해드릴게요.” 18세의 록펠러.
일의 세계로 나아간 작은 씨앗 록펠러
록펠러는 어머니의 어깨를 짓누르는 가난이 싫어서 고작 16살 때부터 일터에 나갔다. 클리블랜드 농산물 위탁 회사 휴잇 앤 터틀(Hewitt & Tuttle)이었다. 일개 회계 보조원이었으나, 그의 업무 능력은 남달랐다. 농산물 운송료 협상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서였다. 회사의 군살을 줄여서, 조직의 움직임이 재빨라졌고, 회사 규모도 그만큼 커졌다. 록펠러의 월급은 매해 올라갔다.
급여는 뛰었지만, 가족을 건사하기엔 빠듯한 액수였다. 부를 일구겠다는 록펠러의 야망을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농산물이 수확되고, 유통되고, 시장에서 팔리는 경로를 모두 꿰뚫었으므로, 동업자와 어엿한 자기만의 회사를 차렸다. ‘클러크&록펠러’였다. 농산물 위탁판매를 업으로 하는 회사였다. 그의 나이 고작 20살이었다.
“전쟁은 밥심, 아니 빵심으로 하는 것이다.” 남북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앤티텀 전투를 묘사한 그림.
신은 그의 사업을 축복하는 듯이, 록펠러에게 선물을 안겼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터져서였다. 전쟁은 총만큼이나, 밥이 중요한 것이어서, 링컨의 북군은 농산물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클러크&록펠러’의 수익이 급증했다. 록펠러의 정신은 언제나 또렷하여서, 성공에 취하지 않았다. 이번 성공이 ‘업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발성 행운’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경쟁자들이 1리 앞을 보고 달릴 때, 록펠러는 1000리를 내다보는 눈이 있어서, 그는 농산물 위탁업 대신 새로운 사업에 눈을 돌렸다. ‘석유 산업’이었다.
“여기서 인류의 에너지 역사가 새로 쓰일 것이네.” 미국에서 첫 유정을 발견한 에드윈 드레이크.
고래의 세계에서, 석유의 세계로
1860년 이전까지, 세계를 밝히는 건 고래였다. 향유고래기름이 기계를 굴리는 윤활유였고, 부잣집 램프에서 타올랐다. 고래의 크기만큼이나, 가격도 비싸서, 고래기름은 오직 대저택에서만 빛났다. 포경선은 매일같이 대해(大海)를 누비며 집채만 한 고래에 작살을 던졌다.
고래를 구한 건 ‘검은 물’, 석유였다. 땅속에서 길어 올린 원유(crude oil)를 불에 가열하면, 등유가 뽑아져 나왔고, 고래기름만큼이나 활활 타올랐다. 그만큼 훌륭한 에너지원이라는 의미. 점점 더 많은 사업가들이 고래의 바다에서, 석유의 미국 들판으로 눈을 돌렸다.
“자~~~떠나자~~~고래 잡으러~~~” 뉴잉글랜드의 고래잡이. 1860년 그림.
석유는 생산비용이 낮았다. 고래기름을 얻기 위해서는 거대한 포경선, 고래의 꽁무니를 쫓을 수 있는 감, 배짱이 두둑한 바다 사나이가 필요했다. 석유 채굴은 그저 삽과 곡괭이면 충분했다. 석유로 큰 부를 이루겠다는 뜨내기들이 너도나도 삽질해댔다.
허풍선과 다름없는 이 치들은 막 파낸 검은 물이 “진짜 고품질 등유”라면서 마구잡이로 팔아댔고, 순진한 사람들은 고래기름보다 저렴한 가격에 눈이 돌아서 “나도 부자놈들처럼 램프 한번 써보자”면서 덜컥 등유를 사들였는데, 램프에 검은 물을 담아 성냥불을 붙이자 기다렸다는 듯 폭발해버렸다. ‘정제’(Refining)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었다. 폭발 사고는 하루가 멀다고 벌어졌다. 사람들은 검은 물에서 악마를 봤다. 석유는 ‘악마의 불’이었다.
“이것도 설마 터지진 않겠지...” 노르웨이 화가 해리엇 배커의 그림. 램프를 사용하는 여인이 그려져 있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세우다
록펠러는 뜨내기들이 만든 무질서를 혐오했다. 석유 산업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겠다는 소명의식이 움텄다. ‘악마의 불’을 ‘신의 불’로 만들겠다고 그는 굳게 마음먹었다. 그가 만든 석유 회사가 ‘스탠다드 오일’인 이유였다. 석유의 기준을 만들겠다는 록펠러의 의지가 녹아있었다.
다른 어중이떠중이 사업자처럼 대중없이 대충 생산해서, 적당히 파는 방식과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록펠러는 독일 출신 천재 화학자 허먼 프레시와 손을 잡았다. 아주 정교한 정제를 위해서였다. 록펠러의 등유는 맑고 고왔다. 안전하게, 은은하게, 폭발하지 않고 타오르는 등유가 경이로워서,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스탠다드 오일’은 석유의 기준을 새로 세웠다.
“석유의 새로운 기준, 그게 스탠다드 오일이라네.” 록펠러 초상화.
1880년 오하이오주 리마에서 거대한 유전이 발견됐다.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유전에 ‘황’ 성분이 많아 달걀 썩은 내가 진동해서였다. 석유보다는 썩은물에 가까웠다. 록펠러가 이 유전을 염가에 사들였을 때, 사람들은 “그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상황은 반전했다. 그가 화학자 허먼을 부려서, 석유에 붙은 황 성분을 쉽게 제거했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원재료에서, 최고의 등유를 뽑아낸 마술사가 록펠러였다. 록펠러의 부는 가늠할 수 없었다.
“달러보다 더 안전한 스탠다드 오일 주식 사세요~” 1878년 5월 1일 발행된 스탠다드 오일 회사 주식.
경쟁자 학살에 나선 록펠러
“경쟁은 죄악입니다.”
석유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세웠으나, 스탠다드 오일의 경쟁자는 여전히 여럿이었다. 록펠러는 이 경쟁에 경기를 일으켜서, 스탠다드 오일만이 독점하는 세계를 새로 그리기 시작했다. 석유 시장은 신이 약속한 록펠러의 땅이었고, 이단자들이 존재해선 안 되는 땅이었다.
록펠러는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했다. 등유의 가격을 후려침으로써, 선전포고에 나섰다. 경쟁자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의 제품을 앞세웠다. 1860년 갤런당 58센트던 등유 가격을 1870년 26센트로 떨어뜨렸다. 철도 업자들로부터 막대한 운송 배송을 약속하면서, 배송 비용을 대폭 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텅 빈 기차가 두려운 업자들은 스탠다드 오일로 가득찬 기차가 기껍고 반가워서, 록펠러에게 경쟁사의 배송 현황까지 갖다 바쳤다.
“자 기름 뽑아라, 경쟁자가 죽을 때까지.” 스탠다드 오일 유정.
록펠러의 무차별 총질에도, 여전히 견디는 경쟁자가 있어서, 스탠다드 오일은 등유 가격을 갤런당 9센트까지 밀어붙였다. 만들수록 손해였어도 상관없었다. 석유의 땅에서, 록펠러가 아닌 이름은 지워져야 했으니까. 마지막 숨을 헐떡이던 경쟁자들의 숨통이 끊겼다. 경쟁자의 통곡은 쉽게 들리지 않았다. 소비자의 환호가 덮어서였다.
공포에 떨던 경쟁자의 앞에 록펠러가 나타났다. 인수·합병을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록펠러의 표정은 단호했다. “회사를 넘기든가, 파산하든가.” 1872년 단 3개월 사이 클리블랜드에 있던 26개의 정유사 중 22개가 록펠러의 손으로 넘어갔다. ‘클리블랜드의 대학살’이었다. 경쟁의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에 치어서, 그의 털들이 송이째 흩날렸다. ‘전신탈모증’이었다.
세상은 록펠러를 ‘학살자’라고 불렀지만, 록펠러는 자신을 ‘정원사’로 여겼다. 스탠다드 오일이라는 장미가 돋보이기 위해서, 잔가지는 잘려야 하는 법이었다. 록펠러가 만든 에덴동산의 붉은빛이 장밋빛인지, 핏빛인지, 사람들은 헷갈렸다.
“모든 건 스탠다드 오일의 것이어야해” 스탠다드 오일의 독점 상황을 풍자한 1904년 9월 그림.
석유의 왕 록펠러
록펠러. 그는 석유의 왕이었다. 말 한마디로 미국을 멈춰 세울 수 있는 권력자였다. 집을 밝히는 등유도, 차를 굴리는 휘발유도, 만병통치약인 바셀린도, 모두 록펠러의 지휘 아래 유통되고 있었으니까. 1870년에만해도 시장 점유율이 4%에 불과했던 스탠다드 오일은,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시장의 90%를 먹어 치운 공룡으로 변해 있었다.
“난 이 시대의 카이사르지…” 록펠러를 산업 황제로 묘사한 잡지.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어서, 독점이 완성된 주(State)에서 스탠다드 오일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경쟁자가 떡하니 버틴 곳에서만 스탠다드 오일은 가격을 후려쳤다.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경쟁자를 폐업시키기 위해서였다. 느닷없이 올라가는 기름 가격에, 미국 소비자는 악소리를 냈다.
미국 의회는 이 신음에 놀라, 날뛰는 스탠다드 오일에 재갈을 물리는 반독점법을 통과시켰다.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이었다. (셔먼은 상원의원의 이름). 신문쟁이들은 이를 ‘반(反)록펠러 법’이라고 읽었다.
록펠러는 정치의 위에 있는 기업인이었다. 뉴저지에 스탠다드 오일 지사를 새로 세워서, 전국 지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 구조를 창조해냈다. 뉴저지에서는 독점에 관한 규정이 느슨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반독점법은 독하고 날카로웠으나, 록펠러의 성은 그보다 더 견고하여서, 법은 록펠러 앞에서는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독점이라고 자네들이 부르는 걸, 난 혁신이라고 부르지.” 미국 화가 존 싱어 서전트가 그린 록펠러 초상화. 1917년.
루즈벨트, 몽둥이를 꺼내다
법 위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분하고 복받친 사내가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었다. 테디 베어의 모델일 정도로 둥글둥글 하고 곰살맞은 인물이지만, 그의 속은 야생 곰에 가까웠다. 루스벨트는 매일같이 되뇌었다. “말은 부드럽게하되 몽둥이를 지니고 다녀라.”(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
“미친 개와 미친 기업은 몽둥이가 약이지.” 존 싱어 서전트가 1903년 그린 루즈벨트.
루스벨트는 몽둥이를 스탠다드 오일에 겨눴다. 1910년 3월 미국 정부는 스탠다드 오일을 셔먼법(반독점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역사적인 법정 다툼인 ‘스탠다드 오일 뉴저지 VS 미합중국’ 케이스였다. 1년의 치열한 법정 공방, 그 끝에 나온 연방대법원의 결론은 극적이었다.
“모든 독점이 불법인 것은 아니며, 오직 ‘비합리적(unreasonable)’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행위만이 불법이다. 스탠다드 오일의 행위는 명백히 비합리적이고 약탈적이다. 스탠다드 오일은 34개의 기업으로 해체하라.”
승리의 여신은 미합중국에 미소 지었다. 세계 경제사에 유례없는 독점 기업의 해체였다.
“곰이 뱀을 찢는 진귀한 장면을 보여주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뱀으로 변한 록펠러와 싸우는 풍자화.
다시, 신의 아들로
‘주라, 그리하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누가복음 6장 38절)
록펠러는 정치적으로는 패배했으나, 경제적으로는 크게 이겼다. 분열된 회사들이 각자 경쟁 체제로 들어가면서, 실적이 크게 뛰어서였다. 대주주인 록펠러의 재산도 덩달아 불어났다는 의미였다. 스탠다드 오일 뉴저지는 엑손으로, 뉴욕은 모빌로, 인디애나는 아모코로, 캘리포니아는 셰브론으로 다시 훨훨 날았다. 해체 전 록펠러의 재산은 3억달러였으나, ‘분할당한’ 후 재산은 9억달러로 3배나 증가했다. 미국의 첫 억만장자라는 왕좌에 앉은 사람은 록펠러였다.
셈할 수 없는 재산으로, 그는 신의 뜻을 잇기로 했다. 야수같은 정신으로 빨아들인 수익을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3500만 달러로 시카고 대학교를 세운 뒤에는 주로 의료기관에 돈을 댔다. 1901년 설립된 록펠러 의학연구소가 대표적이었다.
시카고 대학에 세워진 록펠러 채플. [사진출처=puroticorico]
거침없는 지원액으로, 미국에서 황열병이 사라졌다. 연구소는 수막염과 폐렴의 치료법도 발견했다. 소아마비 전염 경로를 밝히고, 스페인독감의 원인까지 찾아냈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말라리아, 황열병 퇴치 사업을 벌인 것도 록펠러 재단이었다. 하나님의 양들 사이에서는, 피부색의 구분이 없다고 믿어서, 흑인 여성 교육 기관에도 거금을 쾌척했다.
1935년 5월, 그가 97세로 눈을 감을 때, 그의 총 기부금액은 5억 4000만 달러였다. 수중에 재산은 겨우(?) 2500만 달러. 전성기 재산의 5% 미만이었다. 일하며 인류를 석유의 세계로 이끌었고, 베풀면서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사나이, 존 D. 록펠러. 한때 세계의 모든 걸 가졌던 사나이는 맨몸이 되어 다시 신에게 돌아갔으나, 인류의 삶은 록펠러 전과 록펠러 후로 달라져 있었다. 경제 혁신은 물론, 독점에 대한 교훈까지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세워진 록펠러의 무덤. [사진츨처=THD3]
“인간은 다시 날것으로 신께 돌아가야 하지.” 존 D. 록펠러.
<네줄요약>
ㅇ‘스탠다드 오일’ 창업자 존 D 록펠러는 1910년대 미국 GDP의 2.3%에 버금가는 부를 가지면서 역사상 최고 부자 중 하나로 통한다.
ㅇ그는 무질서한 석유산업에서 과학적인 정제 방식을 통해 석유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ㅇ경쟁을 극도로 혐오해서 저가 후려치기로 경쟁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시장에서 내쫓았다.
ㅇ미국 정부가 독점 혐의로 스탠다드 오일을 해체한 이후, 그는 자신의 부를 대부분 사회로 환원하는 기부의 전범을 보였다.
‘경제’는 맛보기에 어려운 식재료입니다. 채권, 이자, 화폐라는 단어만 들어도 쓴맛이 올라옵니다. 맛있게 즐기려면 ‘역사’라는 양념이 필요합니다. 역사(히스토리)와 경제(이코노미)를 결합한 연재물 ‘히코노미’는 먹음직한 요리를 내는 걸 목표로 합니다. 기자 구독을 눌러주세요. 격주로 여러분의 경제 근육을 키워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