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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갔다. 읽으니까 시작해. 일 가. 어떻게 있는지 기자 admin@reelnara.info[편집자주] 법전의 차가운 글자보다 이웃의 젖은 눈망울을 닦아주는 이들이 있다. 화려한 조명 대신 변호사 한 명 없는 섬마을과 오지 등 ‘무변촌(無辯村)’을 직접 찾아가 무료 법률 상담을 이어가는 마을변호사들이다. 어느덧 13년, 1228명의 변호사가 전국 1414개 읍·면·동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온 그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담았다.
조영민 변호사가 지난달 22일 인천 남구 로앤조 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손덕 릴게임황금성 호 기자
“변호사님 덕분에 이제 발 뻗고 잡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사무소, 일주일 전부터 “법률 상담 받으러 오라”는 마을 방송이 울려 퍼지며 주민들이 줄을 잇는다. 대부도를 지나 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온 조영민 변호사(사법연수원 41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10년 릴게임꽁머니 넘게 섬마을 주민들의 ‘법률 주치의’를 자처해 온 그의 인생 역정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영화다.
조 변호사는 1987년 중2 시절 가난한 이를 돕는 변호사 영화를 보며 꿈을 품었다. 하지만 형편상 상고로 진학했고 졸업 후엔 은행원을 꿈꿨다. 그때 담임교사가 길을 터줬다. “꿈 가까이에 머물라”는 조언에 1992년 법무법인 태평양 비서로 입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사했다. 7년간 낮엔 실무를 익히고 밤엔 법전을 뒤적였다.
퇴직금을 털어 들어간 신림동 고시촌, 창문 없는 월세 10만원 방이 그의 전쟁터였다. 헌책과 씨름하며 버틴 10년, 남편의 응원 속에 마침내 사법시험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주례는 친정 같던 태평양 설립자 김인섭 변호사가 맡았다.
변호사를 꿈꾼 지 27년 만인 20 골드몽게임 14년, 그는 인천 영흥도 ‘마을변호사’가 됐다.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만나는 것이 내 소명”이라는 조 변호사의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조영민 변호사가 지난달 22일 인천 남구 로앤조 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손덕호 기자
오리지널골드몽
─마을변호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변호사가 된 후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베푸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재능 기부로 학교 강의 등을 하던 중 마을변호사 모집 공고를 보고 주저 없이 지원했다. 중학교 시절 영화를 보며 가졌던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변호사’라는 꿈을 실천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영흥도라는 지역의 특수성은.
“인구 6400여 명의 영흥면은 영흥도와 선재도 두 섬으로 이뤄져 있다. 다리가 놓여 차량 이동은 가능하지만, 법률 서비스 면에서는 여전히 소외된 ‘무변촌’이다. 1년에 두 번 면사무소에서 ‘찾아가는 상담소’를 여는데, 일주일 전부터 마을 방송이 나갈 정도로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 한 번에 10명 넘게 줄을 잇는다.”
─주민들은 주로 어떤 고민을 토로하나.
“임대차 분쟁, 사기, 파산 등 생계형 사건이 많다. 안타까운 사연도 부지기수다. 20~30년 전 채권을 들고 와 억울함을 호소하시지만, 이미 소멸시효가 지나 법적으로 도와드릴 수 없을 때 가슴이 아프다. 최근엔 외지인 유입으로 인한 토지 분쟁이 잦다. 평생 내 땅인 줄 알고 살았는데, 외지인이 땅을 사서 측량해 보니 마당이나 집 일부가 남의 땅으로 나오는 식이다.”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가 있다면.
“‘주위토지통행권’ 사건이다. 외지인이 방치했던 농지를 팔려다 보니 예전 농로가 사라져버린 경우였다. 그 땅 주인이 길을 내겠다며 평생 농사짓던 주민에게 소송을 제기했고, 당황한 주민이 나를 찾아왔다. 맹지(盲地) 소유자가 남의 땅을 지나갈 권리는 인정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법적으로 정교하게 조율하는 것이 마을변호사의 역할이다.”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로 고소당해 실형 위기에 처했던 주민이 있었다.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민사 소송까지 패소한 상태라 매우 불리했다. 그분의 억울함을 하나하나 분석해 형사 재판에서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법률 지식이 부족해 벼랑 끝에 몰린 분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는 것이 마을변호사의 존재 이유다.”
─변호사 3만명 시대에도 ‘무변촌’ 문제가 심각한가.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가 흔해졌다지만, 여전히 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에 하소연하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모르는 분들이다. 대형 로펌에 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변호사의 도움이 정말 절실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계신다.”
─활동이 개인적인 영업에도 도움이 되나.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은 없다. 하지만 상담 오시는 분들이 ‘좋은 일 하시는 분이니 더 진심으로 잘해주겠지’라고 신뢰를 보내주신다. 그런 좋은 인식이 변호사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자산이다.”
─정부나 법무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사실상 재능 기부지만, 얼마 전부터 건당 5만원의 활동비가 지급되기 시작했다. 나는 육지와 연결된 곳이라 괜찮지만, 백령도처럼 먼 섬을 찾는 변호사들은 시간적·경제적 손해가 상당하다. 풍랑에 배가 묶이면 생업을 며칠씩 쉬어야 한다. 이런 분들을 위한 현실적인 지원과 능동적인 방어 체계가 뒷받침된다면 마을변호사 제도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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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 변호사가 지난달 22일 인천 남구 로앤조 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손덕 릴게임황금성 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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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사무소, 일주일 전부터 “법률 상담 받으러 오라”는 마을 방송이 울려 퍼지며 주민들이 줄을 잇는다. 대부도를 지나 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온 조영민 변호사(사법연수원 41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10년 릴게임꽁머니 넘게 섬마을 주민들의 ‘법률 주치의’를 자처해 온 그의 인생 역정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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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이 개인적인 영업에도 도움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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