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젊은 피아니스트들은 모두 나보다 뛰어나서 오히려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할 판이다.”



마스트미디어폴란드 명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지난 6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 협연하는 모습.


폴란드 출신 명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9)이 웃으며 말했다. 내년 1월 13·15·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독주회를 앞두고 성사된 인터뷰 자리였다. 물론 다분히 겸양 섞인 덕담일 것이다. 지메르만은 1975년 릴게임손오공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반세기 동안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으니까. 주어진 인터뷰 시간은 딱 1시간.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기로 소문난 이 피아니스트에게 그동안 켜켜이 쌓인 의문들을 풀어놓았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후배’인 조성진이나 2021년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인 박재홍의 우상이자 조언자(멘토)로도 유명하다.
바다이야기릴게임2“50년 전 제가 쇼팽 콩쿠르 우승한 직후에는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서 무척 외로웠다. 당시 나는 ‘나중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도 전 세계 피아니스트 50여 명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는다. 브루스 리우(2021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는 얼마 전 일본에서 다이빙을 하기 전에 내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40년 전에 릴게임신천지 다이빙 자격증을 딴 뒤 해저 120m까지 잠수하고 지중해의 해저 지도를 그리는 팀에 참여하기도 했다.”
-공연장에서 모든 녹음·녹화·사진 촬영 금지는 물론이고, 무대 위 촬영용 카메라에는 덮개까지 씌웠는데.
“불법 해적판의 범람 때문이다. 나만 해도 유튜브에 불법 녹음이 100여 개에 이르고 조회 수도 수십만 건에 이르 바다이야기5만 지만, 유튜브는 연주자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심지어 저명한 평론가들도 그런 불법 해적판만 듣고서 잘못된 리뷰를 쓰기도 한다.”
-앙코르에 인색하다는 불만도 있다.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에는 5~7곡씩 앙코르를 했고 고국 폴란드에서는 22곡의 앙코르를 연주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많은 앙코르로 실제 연주를 가리는 ‘값싼 사이다쿨 효과(cheap effect)’에 의존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쇼팽 소나타 2번이나 시마노프스키 변주곡,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 세 곡을 연주한 뒤 땀으로 범벅이 되고 초주검이 된 채로 앙코르를 연주해야 할까. 혹시 메인 요리와 디저트까지 먹고 난 뒤에 또다시 연어와 캐비아를 찾는 격은 아닐까.”
-예전에는 해외 연주를 할 때 피아노 전체를 공수(空輸)하다가 최근에는 건반 부분(액션)만 직접 들고 다니는데.
“피아노는 내 파트너와도 같다. 예전에는 비행기로 피아노 전체를 공수했지만 몇 차례 파손된 이후에는 건반 부문만 따로 들고 다닌다. 건반에 따라서 터치나 음색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건반이 파손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손수 장비를 챙겨서 수리나 교체 작업을 한다.”
-그만큼 완벽한 사운드에 대한 집념이나 집착이 강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베토벤의 청력 이상을 이해하고 싶어서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피아노 건반에 긴 나무 막대를 꽂은 채 반대쪽 막대를 입에 물고서 진동을 느끼면서 연습한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새벽 4시에 헬멧 쓰고 연주하다니 미쳤다’고 잔소리했다(웃음).”
-가끔은 관객들에게 차갑다는 오해도 받을 것 같은데.
“내게는 여전히 청중이 절실히 필요하다. 음악회는 연주자와 관객이 나누는 사랑의 대화와도 같다. 집에서 연습하는 건 홀로 거울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표정을 짓거나 혼잣말을 하는 것과 같다. 관객들이 있을 때 사랑의 대화도 비로소 완성된다.”
-때로는 무대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데.
“피아니스트는 침묵을 지키고 오로지 연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발언이나 진의가 왜곡되거나 와전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 정작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데(웃음).”
-조성진·임윤찬 같은 한국 젊은 피아니스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여러 차례 연주를 들었고 대화도 나눴다. 임윤찬 역시 쇼팽 연습곡을 들었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재능을 지닌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정보 통신(IT) 기술의 발달로 오늘날 피아니스트들은 너무나 쉽게 많은 연주를 접할 수 있다. 자칫 죽는 날까지 남들의 연주를 복제하는 유혹이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평생 자신만의 고유한 독창성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자 admin@119sh.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