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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eastorygame.top
[안내] ‘심층기획, 아직 그날에 산다’는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재 기사입니다. 전투 상황에 대한 묘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심약자와 노약자 및 임산부는 구독 전 주의 바랍니다.
해군이 창설 80주년을 맞아 지난해 11월 9일부터 11일까지 남해와 동해에서 첫 함대급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대한민국 해군 제공]
릴게임모바일 “참전하신 분들은 다 국가유공자 아닌가요?”
지난달 18일 배현진·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의 공동 주최로 개최된 ‘전후 지연성 PTSD에 대한 이해와 보훈정책’ 세미나에서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국가보훈부를 향해 이같이 질문했다. 세미나에 집중하던 그는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는데 지금 와서 또 경청하겠다?”라며 분개했다.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이 평론가는 “국회 세미나에 많이 참석하고 발제도 했지만, 오늘처럼 고통스러운 자리는 처음이다.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성폭력과 관련해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세미나가 있다고 했을 때, 피해자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내면서 얘기해야 하겠느냐”고 따졌다.
그의 지적에 세미나 참석자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박 야마토게임장 수로 화답했다. 그러나 참전용사들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고, 경직된 미간과 움츠러든 어깨는 마치 형사 법정의 피고인을 연상케 했다. 세미나에서는 끝내 속 시원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목숨 걸고 싸워 이긴 대가, 위로금 2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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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이 ‘보훈 사각지대’에 놓인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현행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릴게임바다이야기
현행법에 따르면 유공자 등록은 그 당사자나 유족 또는 가족이 되려는 사람이 보훈부 장관에게 등록을 신청하면서부터 이뤄진다.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 전몰·전상 군경, 순직·공상 군경, 무공·보국 수훈자, 순직·공상 공무원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공자 등록 단계에서 구분되는 그 종류는 무려 18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이 실제로 지원할 수 있는 항목은 ‘전상군경(戰傷軍警)’ 하나뿐. 법령에서는 참전유공자 역시 가능하다고 적혀있지만, 법이 인정하는 참전은 6·25 전쟁과 베트남전뿐이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적용 대상자.
북한군과 교전 끝에 승전했으니 무공훈장 수훈을 통한 유공자 신청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 또한 불가능하다. 해군 참수리 고속정(PKM) 325정에 탑승했던 수병 10명 중 훈장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서다. 무공훈장은 간부 10명(대위~하사)에게만 수여됐다.
교전 중 다친 A상병(기관병)과 B일병(갑판병)이 각각 무공포장을 받았지만, 이들 역시 지난해 2월 보훈부 심사에서 비해당으로 판정받았다가 재심의를 거쳐 겨우 요건 해당 판정을 받았다. 이들을 포함해 참전했던 수병 8명(총 10명 중 2명은 전역 후 사망) 중 유공자는 4명뿐이다.
물론 비해당 판정자 4명도 표창은 받았다. ▲국방부장관 1명 ▲합참의장 1명 ▲함대사령관 2명 등이다. 그러나 표창은 ‘훈장’이 아니라서 유공자 예우 적용 대상이 아니다. 참전용사지만, 유공자는 아닌 이들 4명이 당시 해군에서 받은 위로 격려금은 한 사람당 20만원.
제1연평해전 발발 다음달인 1999년 7월 해군이 작성한 ‘연평해전 격려금 세부 분배계획’. 우측 문건에서 당시 장병 ‘1인당 지급액’이 부상 정도 등 기준에 따라 차등 책정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325정 수병 4명은 모두 각 20만원을 받았다. [국가보훈행정사무소 제공]
현시점에서 설령 중앙정부나 국방부·보훈부 등 부처가 확고한 의지로 상훈심사를 다시 하려 한들, 현행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상훈법과 정부표창규정이 동일한 공적에 대해 훈장 또는 포장을 거듭 수여하거나 이중으로 표창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까닭이다.
직장 9번 옮겼어도 “사회생활 어려움 없어”
국군수도병원.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이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항목, 전상군경.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직무수행 중 상이를 입고 전역·퇴직한 군인이나 경찰공무원을 말한다. 상이 정도가 보훈부 장관이 실시하는 신체검사에서 상이등급 1급 내지 7급으로 판정되어야 비로소 그 자격을 인정받는다.
신체 부상자거나, 신체 부상과 정신장애를 모두 가진 참전용사라면 유공자 등록 절차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만으로 유공자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다.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처럼 26년의 세월이 지났다면 더 그렇다.
참전용사 8명이 처음 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던 지난해 2월에는 전원이 ‘비해당’으로 판정받았다. PTSD 발병과 제1연평해전 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이 중 4명은 재심의에서 인정받았다. 다른 4명은 재심의를 요구했음에도 인정받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서울 소재 모 보훈지청이 발급한 325정 병기병 이성민(가명, 48) 씨의 국가유공자 비해당 통지서(재심의). 1차 심사 때와 달리 중앙보훈병원에서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최종진단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명시됐다. 성민 씨는 보훈병원과 서울의 한 대학병원 등 총 3개 병원의 진료 및 치료 기록을 제출했으나, 국가보훈부는 “전역 후 PTSD로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비해당 판정을 내렸다. [국가보훈행정사무소 제공]
두 차례나 유공자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는 제법 구체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을 지원하는 안종민 국가보훈행정사무소 대표 행정사의 도움으로 보훈지청이 작년 8~9월 발부한 참전용사 4명의 비해당 결정서를 자세히 살펴봤다.
결정서에는 ‘특별한 어려움 없이 대학 졸업과 취업을 했음’, ‘해외 출장 업무도 수행함’, ‘전공과 관련 있는 곳에 취업’,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음’, ‘전역 후 대학을 졸업해 회사에 취직, 현재까지 근무 중임’ 등이 비해당 사유로 제시됐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나, 일반적인 직장생활이 버거워 보훈부 청문회 전까지 9번 이직했다는 박한솔(가명, 48) 씨의 경우 “복학하고 졸업 후 취업한 사실이 확인되나,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경험한 사실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혔다.
김민규(가명, 325정 통신병) 씨가 지난해 9월 보훈지청에서 받은 국가유공자 비해당 통지서(재심의) 중 ‘의결요지’ 일부. 민규 씨 역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료 및 치료를 위해 2년여간 병원을 방문한 기록은 인정받았으나, 국가보훈부는 “전문위원의 의견을 종합할 때 연평해전 참전과 PTSD 발병 간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가보훈행정사무소 제공]
보훈부는 매경AX의 관련 질의에도 “재심사 과정에서 객관적 자료와 청문 절차를 통해 충분한 소명 기회를 부여하며 심사를 진행했지만, 전역 이후 PTSD와 관련해 일상생활 제약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아 요건 인정이 어렵다고 보았음”이라고만 답변했다.
참전용사들 “심사 허술하고 2차 가해까지”
보훈부 청사 앞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표지판. [국가보훈부 제공]
참전용사들은 보훈부의 심사 결과에도 반발했지만, 그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훈부가 언급한 ‘청문 절차’에서 부처 관계자들의 태도가 진지하다고 보기는 어려웠으며, 일부는 ‘2차 가해’ 소지가 있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325정 병기병이었던 이성민(가명, 48) 씨는 “정말 너무 관심이 없다고 느낀 게, 저에 관한 질문을 해야 하는데 제가 전혀 모르는 질문을 하더라”며 “제가 ‘그건 무슨 내용이냐’고 되물었더니 8명 정도 앉아있던 심사위원들이 ‘아, 그건 다른 사람 것’이라고 서로 얘기했다”고 떠올렸다.
또 M60 부사수였던 한솔 씨도 “심사위원장이 ‘아니 그렇게 힘들었으면 내과라도 가지, 왜 안 갔느냐’는 이야기를 막 하더라”며 “우리가 (마음이) 아프다는 인식이 있으면 진작 갔겠지. 그만큼 아픔을 아픔으로 인지하질 못하고 살았단 건데”라며 울분을 토했다.
한솔 씨는 이어 “결과를 이미 내놓고서는 형식적으로 (청문회를) 한 게 아닐까. 별로 관심도 없었던 것”이라며 “정말 제 얘기를 들어줄 거였으면 서류라도 더 받았을 텐데 들고 갔더니 읽지도 않고, 일절 얘기도 안 하더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서해수호의날(3월 넷째 금요일) 행사를 앞두고 국가보훈부가 325정 M60 기관총 부사수 박한솔(가명, 48) 씨에게 전달한 초청장. 우측 상단 표시된 부분에 ‘제8연평해전 참전장병’이라는 오타가 있다. 참전용사들은 ‘제15연평해전, 제13연평해전’ 등 식으로 잘못 제작된 초청장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솔 씨는 인터뷰 중 이와 관련, “인간미 있다”며 쓴웃음을 보였다. [참전용사 제공]
청문 절차가 부실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솔 씨는 “진석이(가명, 325정 갑판병, 재심의 결과 유공자 인정)는 청문회 때 거의 얘기가 없었는데 오히려 점수가 더 플러스 됐다. 대답 자체를 못했는데 ‘아 얘는 그만큼 힘들어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훈부 보훈심사위원회의 청문 절차가 공정하거나, 체계를 갖춘 청문 절차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게 참전용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 때문에 8명 중 끝내 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한 4명은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끼고 있다.
국가보훈행정사무소는 보훈심사위 운영 규칙에 따라, 신청인의 유공자 등 사실 확인서 발급 관련 기관 소속자의 참관이 가능함에도 보훈부가 이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안 대표는 또 4명의 유공자 비해당 결정서 어디에도 ‘지연성 PTSD’ 판례가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두 차례나 유공자 신청이 불발된 참전용사 4명은 지난해 말 보훈부의 재결을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냈고, 현재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행정심판은 통상적으로 재결까지 3~6개월이 걸리고, 인용률은 8% 남짓에 불과하다.
다음 연재로 이어집니다.
매경AX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한 편견과 사회적 낙인 가능성을 고려, 참전용사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상세한 개인의료정보나 유출 시 국익을 저해할 소지가 있는 군사상 비밀도 비공개합니다.
해군이 창설 80주년을 맞아 지난해 11월 9일부터 11일까지 남해와 동해에서 첫 함대급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대한민국 해군 제공]
릴게임모바일 “참전하신 분들은 다 국가유공자 아닌가요?”
지난달 18일 배현진·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의 공동 주최로 개최된 ‘전후 지연성 PTSD에 대한 이해와 보훈정책’ 세미나에서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국가보훈부를 향해 이같이 질문했다. 세미나에 집중하던 그는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는데 지금 와서 또 경청하겠다?”라며 분개했다.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이 평론가는 “국회 세미나에 많이 참석하고 발제도 했지만, 오늘처럼 고통스러운 자리는 처음이다.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성폭력과 관련해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세미나가 있다고 했을 때, 피해자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내면서 얘기해야 하겠느냐”고 따졌다.
그의 지적에 세미나 참석자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박 야마토게임장 수로 화답했다. 그러나 참전용사들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고, 경직된 미간과 움츠러든 어깨는 마치 형사 법정의 피고인을 연상케 했다. 세미나에서는 끝내 속 시원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목숨 걸고 싸워 이긴 대가, 위로금 2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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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이 ‘보훈 사각지대’에 놓인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현행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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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에 따르면 유공자 등록은 그 당사자나 유족 또는 가족이 되려는 사람이 보훈부 장관에게 등록을 신청하면서부터 이뤄진다.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 전몰·전상 군경, 순직·공상 군경, 무공·보국 수훈자, 순직·공상 공무원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공자 등록 단계에서 구분되는 그 종류는 무려 18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이 실제로 지원할 수 있는 항목은 ‘전상군경(戰傷軍警)’ 하나뿐. 법령에서는 참전유공자 역시 가능하다고 적혀있지만, 법이 인정하는 참전은 6·25 전쟁과 베트남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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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중 다친 A상병(기관병)과 B일병(갑판병)이 각각 무공포장을 받았지만, 이들 역시 지난해 2월 보훈부 심사에서 비해당으로 판정받았다가 재심의를 거쳐 겨우 요건 해당 판정을 받았다. 이들을 포함해 참전했던 수병 8명(총 10명 중 2명은 전역 후 사망) 중 유공자는 4명뿐이다.
물론 비해당 판정자 4명도 표창은 받았다. ▲국방부장관 1명 ▲합참의장 1명 ▲함대사령관 2명 등이다. 그러나 표창은 ‘훈장’이 아니라서 유공자 예우 적용 대상이 아니다. 참전용사지만, 유공자는 아닌 이들 4명이 당시 해군에서 받은 위로 격려금은 한 사람당 2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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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 소재 모 보훈지청이 발급한 325정 병기병 이성민(가명, 48) 씨의 국가유공자 비해당 통지서(재심의). 1차 심사 때와 달리 중앙보훈병원에서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최종진단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명시됐다. 성민 씨는 보훈병원과 서울의 한 대학병원 등 총 3개 병원의 진료 및 치료 기록을 제출했으나, 국가보훈부는 “전역 후 PTSD로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비해당 판정을 내렸다. [국가보훈행정사무소 제공]
두 차례나 유공자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는 제법 구체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을 지원하는 안종민 국가보훈행정사무소 대표 행정사의 도움으로 보훈지청이 작년 8~9월 발부한 참전용사 4명의 비해당 결정서를 자세히 살펴봤다.
결정서에는 ‘특별한 어려움 없이 대학 졸업과 취업을 했음’, ‘해외 출장 업무도 수행함’, ‘전공과 관련 있는 곳에 취업’,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음’, ‘전역 후 대학을 졸업해 회사에 취직, 현재까지 근무 중임’ 등이 비해당 사유로 제시됐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나, 일반적인 직장생활이 버거워 보훈부 청문회 전까지 9번 이직했다는 박한솔(가명, 48) 씨의 경우 “복학하고 졸업 후 취업한 사실이 확인되나,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경험한 사실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혔다.
김민규(가명, 325정 통신병) 씨가 지난해 9월 보훈지청에서 받은 국가유공자 비해당 통지서(재심의) 중 ‘의결요지’ 일부. 민규 씨 역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료 및 치료를 위해 2년여간 병원을 방문한 기록은 인정받았으나, 국가보훈부는 “전문위원의 의견을 종합할 때 연평해전 참전과 PTSD 발병 간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가보훈행정사무소 제공]
보훈부는 매경AX의 관련 질의에도 “재심사 과정에서 객관적 자료와 청문 절차를 통해 충분한 소명 기회를 부여하며 심사를 진행했지만, 전역 이후 PTSD와 관련해 일상생활 제약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아 요건 인정이 어렵다고 보았음”이라고만 답변했다.
참전용사들 “심사 허술하고 2차 가해까지”
보훈부 청사 앞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표지판. [국가보훈부 제공]
참전용사들은 보훈부의 심사 결과에도 반발했지만, 그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훈부가 언급한 ‘청문 절차’에서 부처 관계자들의 태도가 진지하다고 보기는 어려웠으며, 일부는 ‘2차 가해’ 소지가 있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325정 병기병이었던 이성민(가명, 48) 씨는 “정말 너무 관심이 없다고 느낀 게, 저에 관한 질문을 해야 하는데 제가 전혀 모르는 질문을 하더라”며 “제가 ‘그건 무슨 내용이냐’고 되물었더니 8명 정도 앉아있던 심사위원들이 ‘아, 그건 다른 사람 것’이라고 서로 얘기했다”고 떠올렸다.
또 M60 부사수였던 한솔 씨도 “심사위원장이 ‘아니 그렇게 힘들었으면 내과라도 가지, 왜 안 갔느냐’는 이야기를 막 하더라”며 “우리가 (마음이) 아프다는 인식이 있으면 진작 갔겠지. 그만큼 아픔을 아픔으로 인지하질 못하고 살았단 건데”라며 울분을 토했다.
한솔 씨는 이어 “결과를 이미 내놓고서는 형식적으로 (청문회를) 한 게 아닐까. 별로 관심도 없었던 것”이라며 “정말 제 얘기를 들어줄 거였으면 서류라도 더 받았을 텐데 들고 갔더니 읽지도 않고, 일절 얘기도 안 하더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서해수호의날(3월 넷째 금요일) 행사를 앞두고 국가보훈부가 325정 M60 기관총 부사수 박한솔(가명, 48) 씨에게 전달한 초청장. 우측 상단 표시된 부분에 ‘제8연평해전 참전장병’이라는 오타가 있다. 참전용사들은 ‘제15연평해전, 제13연평해전’ 등 식으로 잘못 제작된 초청장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솔 씨는 인터뷰 중 이와 관련, “인간미 있다”며 쓴웃음을 보였다. [참전용사 제공]
청문 절차가 부실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솔 씨는 “진석이(가명, 325정 갑판병, 재심의 결과 유공자 인정)는 청문회 때 거의 얘기가 없었는데 오히려 점수가 더 플러스 됐다. 대답 자체를 못했는데 ‘아 얘는 그만큼 힘들어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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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나 유공자 신청이 불발된 참전용사 4명은 지난해 말 보훈부의 재결을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냈고, 현재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행정심판은 통상적으로 재결까지 3~6개월이 걸리고, 인용률은 8% 남짓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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