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몽릴게임 & 손오공릴게임 비슷한듯 하지만 다른 매력의 릴게임사이트 들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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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라유빛 작성일26-01-27 11:53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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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몽릴게임 & 손오공릴게임 비슷한듯 하지만 다른 매력의 릴게임사이트 들을 알아보자
골드몽릴게임과 손오공릴게임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한 유형인 릴 게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두 가지 변형입니다. 각각 독특한 테마와 기능을 가지고 있어 사용자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재미를 제공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골드몽릴게임과 손오공릴게임의 차별화된 매력과 이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골드몽 릴게임과 손오공 릴게임이란? (기본 소개)
릴게임은 슬롯 머신처럼 릴(바퀴)이 돌아가며 그림/숫자가 맞는 결과를 예측하는 온라인 게임입니다. 둘 다 한국 유저 중심으로 개발된 테마 기반 릴게임으로, 릴게임사이트(온라인 카지노 플랫폼)에서 제공됩니다.
- 골드몽 릴게임: "Gold Monkey" 테마로, 황금 원숭이와 보물을 모티브로 한 슬롯 게임. 황금색 그래픽과 보물 찾기 요소가 강조됨. (릴 수: 5개, 페이라인: 20-50개 정도.)
- 손오공 릴게임: "Sonogong" (손오공, 서유기 주인공) 테마로, 중국 고전 '서유기'를 기반으로 한 액션 어드벤처 스타일. 요괴 퇴치와 모험 요소가 강함. (릴 수: 5개, 페이라인: 25-100개 정도.)
- 공통점: 둘 다 RNG(랜덤 제너레이터) 기반으로 공정하며, 베팅 금액에 따라 상금(잭팟) 지급. 24/7 운영, 모바일 앱 지원으로 디지털 유행에 맞춤.
이 게임들은 "비슷한듯 다른" 매력으로 팬층이 나뉘며, 릴게임사이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이제 비슷한 점과 다른 점, 매력을 비교해 보죠!
2. 비슷한듯 다른 점: 공통 매력과 차별화
골드몽과 손오공은 릴게임의 기본 구조가 유사하지만, 테마와 기능에서 차이가 나 매력을 더합니다. 이는 릴게임사이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 비슷한 점 (공통 매력 기반):
- 기본 메커니즘: 릴이 회전하며 심볼(그림)이 맞으면 승리. 와일드(대체 심볼), 스캐터(보너스 트리거) 기능으로 스릴 UP. RTP(Return to Player, 환수율) 95-97%로 공정.
- 빠른 플레이: 스핀당 5-10초 소요, 자동 스핀 모드 지원 – 짧은 시간 재미.
- 보너스 시스템: 프리 스핀(무료 회전), 멀티플라이어(상금 배수)로 큰 승리 가능. 작은 베팅(100원)부터 시작 가능.
- 디지털 접근성: 모바일/앱으로 언제든 즐김. 실시간 중계나 애니메이션으로 몰입감 높음.
- 다른 점 (차별화된 매력):
- 테마와 분위기: 골드몽은 "부와 행운" 중심(황금 테마, 밝고 화려함) vs. 손오공은 "모험과 액션" 중심(서유기 스토리, 다이내믹 그래픽과 사운드).
- 기능 차이: 골드몽은 "보물 상자" 보너스(랜덤 잭팟) 강조 vs. 손오공은 "요괴 배틀" 미니게임(액션 보너스 라운드) 추가 – 손오공이 더 인터랙티브.
- 난이도/변동성: 골드몽은 중간 변동성(안정적 소액 승리) vs. 손오공은 고변동성(큰 잭팟 가능하지만 리스크 높음).
- 타깃 유저: 골드몽은 캐주얼 유저(운 중심) vs. 손오공은 스토리 팬(전략/액션 좋아함).
이 "비슷한듯 다른" 점이 릴게임사이트의 매력을 더해, 유저가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합니다!
3. 골드몽 릴게임과 손오공 릴게임의 매력들: 비교하며 알아보기
둘 다 릴게임의 본질(스릴 + 랜덤 재미)을 공유하지만, 테마별로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맞춰 그래픽/사운드가 고퀄리티로 업그레이드되어 "빠져드는" 이유예요.
- 골드몽 릴게임의 매력:
- 황금 테마의 화려함: 금빛 그래픽과 보물 애니메이션이 "부자 되는 기분"을 줌. 잭팟 히트 시 황금 샤워 효과로 시각적 쾌감!
- 안정적 재미: 중간 변동성으로 자주 작은 승리가 나와 "지루함 없이" 플레이. 프리 스핀 보너스가 잦아 초보자 친화적.
- 릴렉스한 분위기: 밝고 긍정적 테마로 스트레스 해소에 좋음. RTP 높아 장기 플레이 시 유리.
- 디지털 매력: 모바일에서 "터치 스핀"으로 쉽고, 보너스 이벤트(황금 코인 모으기)로 소셜 재미 UP.
- 손오공 릴게임의 매력:
- 액션 모험 테마의 스릴: 서유기 스토리로 "요괴와 싸우는" 미니게임이 포함 – 단순 릴이 아닌 "스토리텔링" 느낌. 사운드(전투 효과음)가 몰입감 높임.
- 큰 승리의 쾌감: 고변동성으로 잭팟(상금 1,000배+) 가능 – "한 방"을 노리는 유저에게 딱. 배틀 보너스 라운드가 긴장감 폭발.
- 인터랙티브 요소: 선택형 보너스(요괴 선택 시 상금 결정)로 "전략적 재미". 서유기 팬에게 감성적 매력.
- 디지털 매력: VR 지원 버전(일부 사이트)으로 "메타버스 모험" 체험. 커뮤니티 이벤트(랭킹 대회)로 경쟁 재미.
전체 매력 요약: 골드몽은 "캐주얼하고 안정적" 매력으로 일상 휴식에, 손오공은 "액션과 도전" 매력으로 스릴 추구에 적합. 릴게임사이트에서 둘 다 플레이 가능해 "취향 믹스"도 OK! 디지털 유행처럼 그래픽/기능이 진화하며 더 매력적이에요.
골드몽릴게임의 매력
- 고급스러운 테마와 디자인
- 골드몽릴게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 요소가 특징입니다. 황금색과 보석으로 꾸며진 슬롯 그래픽은 사용자가 리얼 카지노에 있는 듯한 기분을 만들며, 시각적인 만족감을 제공합니다.
- 보너스 및 스페셜 기능
- 다양한 보너스 게임과 특별 기능이 포함되어 있어 게임의 재미를 더합니다. 예를 들어, 와일드 심볼이 등장하면 큰 승리로 이어질 수 있으며, 무료 스핀 기능은 추가적인 승리 기회를 제공합니다.
- 높은 배당률
- 골드몽릴게임은 다른 슬롯 게임에 비해 배당률이 높은 편이어서,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게임에 대한 몰입도를 높입니다.
손오공릴게임의 매력
- 독특한 스토리와 테마
- 손오공릴게임은 중국의 고대 소설 '서유기'에서 영감을 받은 테마로, 손오공, 저팔계, 삼장법사 등의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이러한 테마는 게임 스토리를 흥미롭게 만들어 주며, 사용자들이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합니다.
- 다채로운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 손오공릴게임은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 있는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제공하여 사용자들에게 마치 만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즐거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는 사용자들이 게임을 오래 즐길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 다양한 퀘스트와 미션
- 스토리 기반의 퀘스트와 미션을 진행하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됩니다. 사용자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미션을 해결하고 추가적인 보너스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두 릴 게임의 공통점과 차이점
- 공통점
- 게임의 기본 메커니즘: 두 게임 모두 릴 슬롯 방식으로 동작하며, 심볼을 맞추어 라인을 완성하면 이기는 구조입니다.
- 다양한 보너스 배팅 옵션: 보너스 라운드와 다양한 배팅 옵션을 통해 게임 플레이의 깊이를 추가합니다.
- 접근성과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해, 새로운 사용자도 게임에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차이점
- 테마와 스토리: 골드몽이 고급스럽고 화려한 테마에 집중하는 반면, 손오공은 서유기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테마를 특징으로 합니다.
- 그래픽 스타일: 손오공릴게임은 애니메이션과 만화 같은 스타일의 그래픽을 제공하는 반면, 골드몽릴게임은 더 리얼하고 전통적인 슬롯 기계 스타일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릴 게임사이트에서의 경험
- 안전성과 공정성
- 두 게임 모두 신뢰할 수 있는 릴 게임사이트에서 제공되며, 사용자의 정보와 자금이 안전하게 보호됩니다. 공정한 게임 운영을 보장하기 위한 난수 생성기를 사용합니다.
- 보상 프로그램과 프로모션
- 여러 릴 게임사이트에서는 새로운 사용자와 기존 사용자들을 위한 다양한 보상 프로그램과 프로모션을 제공합니다. 이는 게임 참여를 유도하고 사용자 만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 사용자 피드백과 지속적 개선
- 사용자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여 게임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새로운 기능과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여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결론적으로, 골드몽릴게임과 손오공릴게임은 각기 다른 매력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화려한 그래픽과 보너스 기능이 넘치는 골드몽, 서유기의 스토리와 캐릭터로 몰입감을 주는 손오공 모두 사용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릴 게임사이트에서 이러한 게임을 경험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오락 방식으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재미와 활력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기자 admin@slotnara.info
서학당
조선시대 교육제도는 관학과 사학으로 나뉜다. 관학은 최고 학부인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 한성부의 사부학당四部學堂이고, 사학은 서당과 서원이다. 중등교육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향교가 제주에 생긴 것은 오리지널바다이야기 1392년(태조 원년)으로 유사 이래 최초의 관립 교육기관이다. 종6품 교수와 종9품 훈도를 두어 유생들을 가르치고, 장의 2명, 유사 4명을 두어 운영했다. 정의향교는 1416년(태종 16년), 대정향교는 1420년(세종 2년)에 세워졌다. 『세종실록』, 세종2년 11월 15일 기사에 따르면, 대정, 정의 향교에 생도가 각각 50여 명이었다고 하니 제주향 릴게임신천지 교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상당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임진왜란 등 병란과 서원의 발흥으로 향교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제주의 경우 귤림서원, 삼천서당 등이 생겨났으며, 1831년(순조31년)에는 이예연李禮延(1767~1843년) 제주목사가 세화에 좌학당, 명월에 우학당, 오등梧登(죽성)에 남학당을 세웠고, 1833년(순조33년)에 한응호韓應浩 제 사이다쿨접속방법 주목사가 상가리에 서학당을 설치했다. 상가리 주민회관 옆에 줄줄이 서 있는 비석들을 보니 사장師長, 즉 훈장의 이름이 많이 새겨져 있다. 서학당은 1894년 갑오경장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사라졌지만 상가리의 서당은 1962년까지 남아 있었다. 여러 사장들 가운데 소암松岩 강흥문姜興文, 송헌松軒 김규석金珪錫 등의 한시집이 남아 있다.
릴게임바다이야기 그렇다면 상가리에 서학당이 들어선 것은 어떤 연유일까? 상가리 출신인 변경준邊景俊(호는 사걸士傑)의 영향력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집성촌集姓村
집성촌은 말 그대로 같은 성씨의 씨족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이주가 불편할뿐더러 쉽지 않았던 옛날에는 한 마을에서 집안 식구들이 함께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특히 17세기 사이다쿨접속방법 후반에는 전국에 걸쳐 거의 모든 마을이 집성촌이라 할 정도로 많아졌다. 예전에는 남자가 처가에 들어가 사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다양한 성씨의 사위가 유입되면서 새로운 성씨가 집성촌에 생기기도 했다. 집성촌에 여러 성씨가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선의의 경쟁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교육면에서 그러하다. 지금도 제주 마을에 가면 고시합격, 박사, 공무원 등등 가문의 영예를 빛낸 이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또한 집성촌의 특색이 아닌가싶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손들이 도회지로 나가고, 반대로 여러 성씨의 외지인이나 외국인까지 함께 살게 된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집성촌의 의미와 실제는 여전하다.
상가리는 제주 양씨가 처음 들어와 설촌한 이래로 진주 강씨, 밀양 박씨, 연안 현씨, 원주 변씨, 천안 전씨, 김해 김씨, 남평 문씨, 제주 고씨 등이 차례로 들어와 여러 성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본문에서는 그 가운데 서학당과 관련하여 변씨를 살펴보고자 한다.
원주原州 변씨邊氏
변씨는 조선 후기 무신인 변성보邊聖輔(1727~1798년)가 납읍에서 태어나 상가리로 이주하면서 원주 변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그는 부인 양씨와 사이에 아들 변경준을 두었다. 변경준은 1814년(순조14년)에 문과 급제한 후 승정원 주서注書로 임명되어 어전에서 임금의 말과 행동, 군신간의 대화나 국정 논의 과정을 매일 기록하는 직무를 맡았다. 쉽게 말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편집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뜻이다. 이후 정3품 당하관에 해당하는 통훈대부로 가자加資되었고, 퇴임 후 고향인 상가리로 돌아왔다. 한응호 제주목사가 서학당을 신우면新右面에 설치할 때 변경준이 거주하는 상가리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변경준이 서학당의 첫 번째 사장師長을 맡은 것을 보면 개연성이 충분하다.
원주 변씨는 고려시대인 1334년(충숙왕 3년) 심양에서 태어나 원나라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형부상서로서 공민왕의 왕비 노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들어온 변안렬邊安烈을 시조로 삼는다. 홍건적을 무찌르고, 최영 장군을 따라 제주 목호의 난도 평정했다. 또한 전라도에 왜구의 침탈이 극심해지자 양광전라경상삼도순찰사楊廣全羅慶尙三道巡察使로 임명된 이성계의 부장이자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참전하여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 이를 황산대첩荒山大捷(지금의 남원시 인근)이라 부른다. 『고려사』 「변안렬전邊安烈傳」에 따르면, "적군이 아군보다 10배나 많았으며, 겨우 70여 명이 살아 도망쳤다.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7일간이나 물을 먹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그는 삼사三司(고려말 전곡錢穀의 출납과 화계를 맡아보는 기관)의 최고 관직인 영삼사사領三司事에 오르고 원주부원군에 봉해졌다. 변안렬의 후손들의 본관이 원주 변씨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변안렬은 영삼사사가 된 그 이듬해인 1390년(공양왕 2년)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했다. 가산은 몰수되고 가족들까지 처벌을 면할 수 없었다. 이성계의 회군과 왕위 찬탈 음모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대 인물로 함께 고려를 위해 애썼던 포은圃隱 정몽주에게 「단심가」가 있다면, 대은大隱 변안렬에겐 「불굴가」(『청구영언』)가 남아 있다.
내 가슴에 큰 구멍 뚫어 새끼줄로 길게 꿰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당겨 찢겨지더라도 너희들이 하고자 하면 나도 사양하지 않겠다만내 임금 빼앗기는 일이면 나는 굽힐 수 없도다.
원주 변씨 입도조 변세청邊世淸은 변안렬의 셋째 아들인 변예邊預의 둘째 아들로 고려시대 정5품의 무관벼슬인 중랑장中郎將(각 영領에 두 명씩 두었다)을 지냈기 때문에 그 후손들을 중량장공파라고 부른다.
원주 변씨는 납읍 출신 변시중邊是重(1727년 문과 급제)이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 예조좌랑 등을 역임한 이래로 변성운邊聖運(1765년 식년시 급제), 변성우邊聖遇(1765년 문과 급제), 변성보邊聖輔(1765년 무과 급제), 변경우邊景祐(1783년 증광시 문과 급제), 변경붕邊景鵬(1795년 식년시 문과 급제) 등 변경준까지 합쳐 전체 7명이 18세기에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 관직을 얻었다. 한영우 교수의 책 『과거, 출세의 사다리』(지식산업사, 2014년)의 통계에 따르면, 조선조에 제주에서 배출한 과거 급제자가 38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7명이 한 세기에 한 가문에서 나온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 가운데 여러 명이 상가리와 납읍리 출신이니 두 곳 모두 문촌文村이라 칭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싶다.
중산간 마을의 생업
상가리는 한라산 쪽으로 노로오름, 그 아래로 안천이오름, 족은바리메를 거쳐 길게 이어져 있는데, 산쪽으로 공동목장을 지닌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그 안에 자연 마을인 동동과 서동, 그리고 원동이 자리 잡고 있다. 하가리는 큰길 건너 바다 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으나 바다와 접하고 있지는 않다. 중산간 마을은 대부분 농촌이다. 농사가 생업이니 쇠 키우기는 기본이었다. 상가리나 하가리 모두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하가리에 귀릿장이란 오일장이 열렸는데, 당시 제주에서 유일한 가축시장이었다고 한다.(『기억으로 보는 제주도생활문화2』, 「1960년대 애월읍 상가리 큰 애기 보리검질 매기」, 244쪽)
하가리 연자방아.
소나 말은 주로 공동목장에서 키우기 마련이나 집마다 한두 마리씩 직접 키웠던 것은 밭을 갈거나 수레를 끌고 연자방아를 돌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가축이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는 보통 소나 말에게 먹이는 풀을 '꼴'이라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ᄎᆞᆯ(촐, 청촐)이라고 한다. 가시왓에 덮혀 있는 칡과 같은 덩굴 종류가 많았고, ᄎᆞᆯ밭을 따로 두기도 했다. 촐을 베러가는 임무는 육지나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맡았다. 농사는 손길이 많이 가기 때문에 어른들 외에 아이들의 손을 빌려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마다 '보리방학'이 있었던 것을 보면 한창 바쁜 보리 추수철이나 검질 매러 갈 때면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을 터이다.
보리검질 초불(초벌), 두불, 세불 매면 대략 3월말이나 4월초이고, 보리가 익어갈 때쯤이면 대우리(보리밭 피)를 솎아주고, 5월이 되면 보리를 벨 때인지라 새벽에 일어나 밭에 나간다. 보리를 베다가 운 좋게 꿩알을 주울 때도 있지만 ᄀᆞ시락(까끄레기)이 몸에 들어가 따가울 때가 더 많았다. 추수가 끝나면 멕탁이(탈곡기)에 타는 것도 구경하고, 보리밭 그루터기에 불을 놓아 고고리(보리 이삭)을 구어 먹기도 했다. 마침내 햇보리가 나오면 보리밥에 나물된장국, 비듬나물 무침에 자리젓, 멜젓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흑보리가루로 떡을 만들고, 쉰 보리밥으로 쉰다리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 중에서 제일 맛난 것은 역시 보리를 볶아 방에공장(방앗간)으로 가지고 가서 소금과 당원이나 사카린을 넣어 가루로 만들어 먹는 개역(미숫가루)이다. "개역가루에 ᄀᆞ끼어서(사래가 들려서) 캑캑거리면서도 물 없이 잘들 먹던" 바로 그 개역 말이다.(『기억으로 보는 제주도 생활문화4』, 「1960~1970년대 애월리 밭농사」 246~252쪽)
이렇듯 옛날 아이들은 일하느라 바빴는데, 지금 아이들은 학교 끝나기 무섭게 학원가기 바쁘다.
전통 초가
제주의 초가는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첫째, 바람의 영향으로 지붕의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다. 굴뚝이 있으나
둘째, 집까지 들어가는 작은 길 올레가 있으며, 대문은 별도로 두지 않고 정낭을 두어 주인의 출타 여부 등을 알려주었다. 도둑이 없으니 가능한 장치다.
셋째, 이엉을 얹는 재료가 볏짚이 아니라 새(띠풀)이다. 보통 2년에 한번 지붕을 새로 이었는데, 이를 위해 새왓을 별도로 가꾸기도 했다.
넷째, 정지(부엌)에는 당연히 불을 때는 아궁이와 부뚜막이 있기 마련인데, 제주에는 온돌과 무관하게 음식만 할 수 있는 아궁이가 있다. 난방 연료는 주로 보리를 타작하고 남은 고스락이나 소와 말의 배설물 말린 것을 썼다.
다섯째, 문 옆에 허벅을 두는 곳이 있어 언제든지 물을 길어와 쓸 수 있으며, 빗물을 모아두는 촘항(집수 항아리)을 활용하기도 했다.
여섯째, 집의 형태는 안채인 안거리와 바깥채인 밖거리가 기본이다. 물론 그보다 작은 집도 있고, 큰 집도 있다. 예를 들어 큰 집은 모로앉은 세거리 집, 이보다 더 큰 네거리 집이 있다. 네거리 집은 안거리와 밖거리 외에 양쪽 모서리에 모커리(곁채)와 헛간이 있는 가장 큰 집으로 주로 종가집이나 토호의 주택이다. 종가집의 경우 한 쪽에 사당을 두기도 했다.
제주 돗통시 옛 사진.
일곱째, 보통 뒷간은 집안 외진 곳에 있기 마련이다. 제주도 그러하다. 다만 뒷간 옆에 돼지가 사는 돗통(돼지우리)이 붙어 있어 뒷간에 수시로 들락날락할 수 있다. 이를 통시라고 한다. 어딘가에 보니 통시를 음역하여 통서統西라고 썼던데, 한어 발음은 맞지만 뜻과 무관하다. 차라리 통서通栖가 어떨까? 돼지가 머물며 두루 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통시는 돼지우리가 옆에 있어 음식 찌꺼기나 사람의 배설물이 돼지의 먹이가 되거나 돗거름으로 변화하는 자연 순환의 공간이다.
제주 전통 가옥하면 제일 먼저 성읍 민속마을이나 표선 민속촌이 떠오를 터인데, 하가리에도 문귀인 가옥, 변효정 가옥, 문시행 가옥 등 전통 초가 세 채가 남아 있다. 문시행 가옥 인근에 ᄆᆞᆯ방아가 전시된 초막이 있어 가보았다. 연자방아로 잣동네 삼거리에 있다고 해서 '잣동리 말방아'라고 부른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가리 문귀인 가옥.
남은 이야기
하가리에는 전통 초가와 연자방아, 그리고 구불구불 옛 돌담길이 잘 살아있고, 상가리지에 보면, 213쪽부터 226쪽까지 농업 용구에 대한 설명이 사진과 곁들여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다. 지금도 상가리나 하가리 사람들은 감귤을 비롯해 여러 작물을 경작하고 있다. 이른바 복합농업이다. 그렇다면 마을에 잔존하는 옛 농기구나 농사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해보면 어떨까? 마침 상가리에 문화공간 가락이 있으니 그곳을 활용하면 어떨까? 물론 필자의 생각일 뿐이나 박물관을 제외하고 제주의 농기구나 농사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이 남쪽에 천년 마을 서홍동이 있다면, 북쪽에 천년 퐁낭 상가리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별꼴학교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