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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권 자민당이 공명당과 연립 여당을 꾸린 지 26년 만에 ‘결별 통보’를 받으면서 차기 정부 구성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등 정치권에 격랑이 일고 있다. 지난 70년간 사실상 자민당 독주 체제를 일컫는 ‘1955년 체제’를 흔드는 정계 개편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2일 “자민당과 공명당 양당의 26년에 걸친 연립 역사에 종지부가 찍히게 됐다”며 “자민당으로서는 공명당과 연립여당이라는 ‘안전장치’가 사라진 대가는 크며, (여당이면서도) ‘결정 못 하는 정치’에서 돌파구를 찾을 책임은 전세대출이자 제1당인 자민당에 있다”고 지적했다. 최대 영향력을 가진 신문사인 요미우리가 현 상황을 ‘충격’이라고 표현할 만큼 연립 여당의 와해는 일본 정치권에 후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앞서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는 지난 10일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와 영수회담에서 연립정권 이탈을 최종 통보했다. 거대 다수당에 기대 20년 넘게 ‘또 하 온가족통신비 나의 여당’ 구실을 했던 공명당이 안정적 지위를 포기하고 돌연 결별 선언한 핵심 이유는 자민당의 개혁 의지를 더는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이토 대표는 사흘 전 다카이치 총재 취임 뒤 첫 만남에서 태평양 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과거사 인식 문제, 지나친 배외주의, 자민당 파벌 비자금 개혁을 위한 기업·단체 정 국민은행 서민대출 치자금 규제 등 세 가지를 요구했다. 이어 10일 두번째 만남에서 다카이치 총재가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않자 작심을 하고 “(자민당의) 개혁이 실현 불가능하다면, 도저히 (국회 총리 지명 선거 투표용지에) ‘다카이치 사나에’라고 쓸 수 없다”며 “자-공 연립을 백지화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공명당은 자민당이 지난 4일 다카이치 총재를 일수구합니다 당선시키면서 개혁 의지가 개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해 사이토 대표에 협상 전권을 주고 결단을 내리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다카이치 총재는 협상 과정에서 정치자금 규제 강화 등 문제에 대해 “‘담당이 아니어서 잘 모른다’며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요미우리신문은 보도했다. 대신 그는 즉시 결단을 요구하는 공명당에 “내가 (여기서 곧바로) 결정하고 돌 산와머니 대출 아가면 독재다”라고 호소를 해봤지만, 공명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명당은 지난 2023년 자민당에서 불거진 파벌 의원 비자금 사건에 ‘연립여당’이라는 이유로 유탄을 맞아 최근 중·참의원 선거에서 대거 의석을 잃고 자민당의 정치 개혁 태도를 주시하고 있었다. 다카이치 총재는 별도 기자회견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었고 당에 보고하겠다고 제안했는데 그 자리에서 찬반을 밝히도록 요구받았다”며 “공명당은 ‘구체적 답변이 아니'라며 일방적으로 연립 탈퇴 통보를 받았다”고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신문은 “공명당이 기업·단체 정치자금 모금을 자민당 본부와 47개 도도부현(광역지방자치단체) 조직에 한정하는 안의 수용을 요구했다”며 “하지만 자민당 쪽은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이 대표인 정당 지부 등의 돈줄이 막혀 활동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며 난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풀이했다.
자·공 연립은 지난 1999년 10월 오부치 게이조 정부 때 처음 꾸려졌다. 자민당으로선 참의원에서 소수여당인 문제를 해결하고, 공명당은 자신들의 뿌리인 창가학회가 ‘정교일치’라는 비판과 함께 당 관련 주요 인사들이 국회에 증인으로 소환되는 수모를 벗어나려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이후에도 2004년 자위대 이라크 파병이나, 2014년 집단적 자위권 행사, 소비세 10% 인상 문제 등에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짓밟혀도 따라가는 나막신(에 묻은) 눈”이라고 비아냥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양당 고위 인사들 간의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긴 세월을 연립정당으로 함께 해왔지만, 다카이치 총재 체제 출범 일주일여 만에 여-야로 등을 들리고 됐다. 거대 정당과 ‘한지붕 두가족’ 생활을 하면서 누적된 불만이 별다른 신뢰관계가 없는 다카이치 총재 체제에 들어 폭발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사이토 대표는 ‘연립 분리’ 발표 뒤 기자들에게 “우리는 작은 존재라 의견을 내기 어려웠다. 참아온 부분도 많다”는 토로하기도 했다. 게다가 다카이치 총재는 취임 뒤 당 부총재 인선에서 10년 넘게 공명당과 연결고리 구실을 했던 스가 요시히데 당 전 총리를 밀어내고 자신의 선거를 도왔던 전 총리를 그 자리에 임명했다.
일본 언론들은 향후 정국 방향에 대해 “매우 복잡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자민당 총재 당선자=차기 일본 총리'가 공식처럼 여겨져 오던 일본 정치권에는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가장 현실성 있는 건 여전히 제1당인 자민당이 연립 없이 다카이치 새 정부를 꾸리는 것이다. 일본에선 중의원이 해산되거나, 집권당 총재가 공석이 됐을 때 국회에서 총리 지명선거를 통해 새 총리를 선출한다. 중·참의원 모두 총리 지명선거를 치르지만, 양원의 결과가 다를 때 우선권을 갖는 중의원 투표에서 사실상 결과가 정해진다. 현재 중의원 전체 465석(과반 233석) 가운데 여당인 자민당이 196석,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148석, 일본유신회 35석, 국민민주당 27석, 공명당 24석 등을 갖고 있다. 나머지는 레이와신센구미(9석), 일본공산당(8석), 참정당(3석) 등 소수당들 몫이다. 야당이 뜻을 모아 특정 후보에 표를 몰아주면 정권 교체가 가능하지만, 30석 안팎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민주당, 일본유신회 등이 제각각 행보를 보이고 있어 자민당이 어부지리식 총리를 다시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자민당이 또 다른 연정파트너로 일본유신회나 국민민주당과 협상할 수 있지만 현재로썬 호응하는 상대가 없다.
현실성이 전혀 없어 보이던 ‘정권 교체 시나리오’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애초 입헌민주당은 정권 교체를 ‘제 1 목표’로 잡고, 국민민주당에 연합 여부를 타진했지만 다마키 유이치로 당 대표가 ‘정치적 노선 차이’를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공명당이 연립여당에서 이탈하면서 자민당의 196표를 넘어설 다른 가능성이 생겼다. 일본 정치권에선 공명당 사이토 대표를 총리 후보로 세우고, 입헌민주당과 일본유신회 등이 결합하면 총리 지명선거에서 10표 차 이상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정당 간 성향을 봤을 때 여전히 가능성이 낮지만, 실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일본공산당 등 자민당과 색깔이 다른 소수 여당표도 20여표 가까이 된다.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취임뿐 아니라 자민당도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한달 넘게 여당 총재와 일본 총리가 분리된 이례적 상태가 지속하면서 정치적 불안에 대한 비판이 자민당에 집중되고 있다. 국회 과반 확보가 가능한 연립여당을 다시 꾸리기 위해 일본유신회와 접촉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외교 쪽에서 이달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과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당내에선 현재 상황이 지속할 경우, 차기 선거에서 다시 참패를 우려해 일찌감치 ‘다카이치 끌어내리기’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공명당은 이번 연립 탈퇴 공식화 이후 차기 선거에서 다른 야당과 선거 연대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