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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119sh.info
[한현숙 기자]
[가을 답사 1편 : 대구 군위에는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가 있다]
답사 이튿날인 지난 9일, 깔끔한 조식을 먹고 구미 도리사에 도착하니 오전 9시였다. 처음 본 도리사의 모습은 단풍을 한아름 안고 있었다. 절 마당 가는 곳곳마다 붉은 나뭇잎 위에 푸른 하늘이 담겨 눈이 부셨다. 단풍 따라 마음이 붉어진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가을을 만끽했다.
도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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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 도리사의 단풍, 가는 곳곳마다 단풍에 취해 환호성을 질렀다.
ⓒ 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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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가는 길도 단풍으로 가득해 눈이 호사를 누렸는데, 다녀오는 길에 또 다른 붉은 것에 시선이 닿았다. 나물을 씻거나 조리할 때 쓰는 큰 플라스틱 원형 바구니인데, 중간에 해진 부분을 다른 플라스틱으로 덧대어 꼼꼼하게 짜깁기 한 것이다. 스치듯 지나친 바구니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무엇이든 쉽게 버리고 쉽게 구하는 세상, 흥청망청거리지는 않았으나 절약이 미덕인 옛 시절을 잠시라도 잊은 것을 상기시키려는 듯 바구니가 찰나의 깨우침을 주었다. 물자의 소중함이 인간을 지키고, 지구를 보호하는 첫걸음임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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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도리사에서 깨우친 것들, 배우고 익히고 생각한다.
ⓒ 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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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도리사 경내를 걷다 보니 절로 깨달음을 주는 문구가 곳곳에 있었다. 특별하게 새로운 문장이 아닌데도 나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는 문장의 힘을 경험했다.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말며 자유로워질 것을, 하루하루의 삶을 소중히 감사하게 여길 것을 도리사의 불심이, 풀꽃 민들레가 가르치고 있었다. 요즘 나에게 꼭 필요한 부처님 말씀이었다.
도리사(桃李寺)는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알리기 위해 지은 신라 최초의 절이다. 수행처를 찾던 중 겨울인데도 복숭아와 오얏꽃(자두나무꽃)이 활짝 핀 이곳을 좋은 터라 여겨 절을 짓고 복숭아(桃)와 오얏(李)을 따와 도리사라 이름 지었다고.
4세기경 신라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토속신앙이 강한 나라여서 불교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아도화상은 법당을 지을 수 없어 모례라는 인물의 집에 머물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고 어려운 이를 도우며 불교의 포교에 힘써 얻은 성과라 한다. 그러다 신라의 공주가 병이 들었는데, 어떤 약도, 무속도 소용이 없다가 아도화상이 건넨 향낭으로 공주의 병을 고칠 수 있게 되자 이 기적으로 신라 왕과 백성이 불교를 믿기 시작했다고.
단풍으로 가득한 계단을 오르니 단풍 빛깔의 설선당이 보이는데 각종 법회와 신행 활동이 이루어지는 강당으로 사용하는 건물이란다. 설선당의 벽면과 기둥이 마치 노랑, 빨강 단풍잎 같아 주위 나무와 어우러져 한 무더기 꽃 단풍 같았다.
사실 이때 길을 잃었다. 너무 단풍에 취해 사진 찍기 바빴을까? 화엄석탑 쪽에 있었던 답사 일행을 찾지 못해 수분 간 헤매다 본 것은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얼굴무늬 수막새였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된 둥근 형태의 와당을 의미하는데 도리사 범종각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설선당을 뒤로 여러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건축물, 적멸보궁이 나온다. 내부에 들어가니 부처님 대신에 그 너머 유리창을 통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사리탑이 보인다. 이 사리는 1977년 극락전 뒤편에 있는 석옹탑에서 금동육각사리함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빛이 영롱하고 찬란한 타원형 모양으로 모든 중생에게 불심을 타오르게 하는 성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태조선원은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다. 내부에 1931년에 조성된 석가모니불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훌륭하신 분들이 이곳에서 스님에게 글을 배웠는데, 야은 길재 선생과 성철 스님이 정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정면에 걸린 '태조선원' 편액은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인 오세창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 도리사 태조선원, 스님들이 정진하는 곳이다.
ⓒ 한현숙
석종형 부도의 모습을 한 극락전 앞 세존사리탑을 보았다. 석적사 터에 있던 옛 탑에서 발견된 사리와 금함을 도리사에 사리탑을 조성하여 모신 것이라 한다. 1977년 도굴로 인해 흩어져 있던 사리탑을 법성, 상륜스님의 원력으로 복원하던 중 부도 밑에서 금동육각사리함이 발견되었고, 그때 발견된 사리가 아까 언급한 적멸보궁 세존사리탑에 봉안된 것이다.
신라불교 역사문화 체험 숲길을 따라 서대로 향했다. 가는 길 오른쪽 숲 속에 벌집 같은 조형물이 꽤 많이 보여 궁금했는데, 불교 행사 시 관람객이 앉을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도리사에서 펼쳐지는 의미 있는 행사를 숲 속에 앉아 함께할 수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불심이 차올랐다.
▲ 아도화상이 바로 가리킨 저 먼 곳이 직지사 터가 되었다. 날이 흐리고 구름이 끼어 직지사로 향하는 곳이 신비스럽게 보인다.
ⓒ 한현숙
서대에 도착해 직지사의 유래를 확인했다. 날이 흐리고 구름이 끼어서 직지사 방향만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었지만, 아도화상이 이곳 서대에 올라 서쪽의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곳에 훌륭한 터가 있는데 그곳에 절을 지으면 불교가 흥할 것이다'라며 바로(直) 가리킨(指) 곳이 직지사(直指寺)가 되었다 하니 그 유래가 참 신비로웠다.
금오서원
1시간 넘게 도리사에 머물며 단풍에 취하고, 불경에 깨달음을 얻고, 문화재의 유래에 감명을 받고 금오서원(金烏書院)으로 향하는 발길은 가벼웠다. 금오서원의 문루인 읍청루가 먼저 보였다. 우뚝 선 읍청루를 끼고돌아 들어가니 강당인 정학당이 보인다. 우리는 정학당을 중심으로 동재, 서재 양편에 앉아 퇴우헌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여말삼은(麗末三隱) 중 한 분인 야은 길재의 회고가에 고려에 대한 충성과 망국의 한이 서려있다. 금오서원은 길재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살아남은 곳이다.
▲ 야은 길재의 위패를 모신 금오서원, 정학당에 계율7가지가 걸려있다. 동재에 앉아 퇴우헌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다.
ⓒ 한현숙
정학당 강당에 걸린 편액에 쓰인 내용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정갈하고 엄중한 금오서원의 일곱 가지 계율, 지금 우리 학교에 걸어도 손색없이 잘 어울릴 내용으로 '이 칠금을 범한 자 이미 왔으면 되돌아가고 아직 오지 않았으면 아예 오지 말라'는 경고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말한 것처럼 고려 충신인 길재의 후학들이 훗날 조선 사대부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는데, 그들을 키운 학문의 보고, 인재 양성의 중심지를 돌아본 것이다.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돌을 가공해 벽돌처럼 흉내 내어 지은 석탑을 모전석탑이라 부르는데,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은 국보 130호로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은 천년의 역사를 지닌 모전석탑이다.
통일신라 시대 후기 혹은 남북국 시대로 추정이 되는 석탑으로 높이가 약 10미터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라고 한다.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 그리고 각 지붕돌은 계단식 층단 구조로 되어 있으며 1층엔 불상을 모셨던 감실이 남아 있다. 웅장하면서 단정한 세련된 조형미가 일품이라고 추앙받는 석탑이다.
퇴우헌 선생님의 극찬, 천년을 이어온 석조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탑을 돌며 여유롭게 감상했다. 기술적, 예술적, 종교적 가치를 두루 갖춘 귀중한 유산을 눈앞에서 보다니 감개가 새로웠다. 섬세한 조각과 층단의 균형감이 느껴지며 묵직하게 서있는 탑에게서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오층석탑, 높이가 10M인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높은 신라시대 모전석탑이다.
ⓒ 한현숙
마지막 답사지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를 찾았다. 금오서원에 위패를 모신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의 절개와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정면에 중국의 양청천이 쓴 글씨임을 알려주는 이름이, 뒷면에는 서애 유성룡이 쓴 지주중류의 뜻과 후학에게 전해주고픈 교훈이 새겨져 있다.
지주중류석은 중국 허난 성 성주에서 동쪽으로 40리 떨어진 황하의 중류에 있는 기둥 모양의 돌을 말하는데, 지주중류란 혼탁한 물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우뚝 서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려말 절의를 지킨 길재를 은유적으로 추앙한 것이다.
▲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지주중류비, 길재의 충절과 의리를 찬양한 비석이다.
ⓒ 한현숙
이 비석에는 갓이 없는데 천연의 바위인 지주를 뜻한다고 한다. 비석 하단부에는 '백세청풍(百世凊風)'이 있다는데, 현장에서는 찾아보지 못해 아쉬웠다. 백세청풍은 선비들이 선호하는 글귀로 백세토록 길이 전할 맑은 기풍을 뜻하며 선비가 지녀야 할 고고한 절개를 드러내는 말이다.
돈과 이익에 따라 수시로 움직이는 요즘 세태에 지조와 절개, 의리는 무엇으로 다가올까? 옳은 것을 따라 신념을 지키며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시련을 감수하며 노력하는 이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오늘 하루를 무엇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가? 많은 생각이 교차되었다.
1박 2일의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육체적으로 매우 피곤했다. 꽉 막힌 일요일 고속도로를 보는 것만큼 내일의 출근과 쌓인 집안일이 답답하고 걱정되었다. 그러나 뭔지 모를 뿌듯함이 나를 감싸 위로하며 힘을 주었다. 뜻을 함께 하는 좋은 이들과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에서 한껏 인문학에 취해 호사를 누리고 얻은 기쁨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사람을 사랑하고 문화재를 소중히 바라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얻었다. 퇴우헌 답사 기행이 계속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가을 답사 1편 : 대구 군위에는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가 있다]
답사 이튿날인 지난 9일, 깔끔한 조식을 먹고 구미 도리사에 도착하니 오전 9시였다. 처음 본 도리사의 모습은 단풍을 한아름 안고 있었다. 절 마당 가는 곳곳마다 붉은 나뭇잎 위에 푸른 하늘이 담겨 눈이 부셨다. 단풍 따라 마음이 붉어진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가을을 만끽했다.
도리사
야마토게임장
▲ 구미 도리사의 단풍, 가는 곳곳마다 단풍에 취해 환호성을 질렀다.
ⓒ 한현숙
오션릴게임
해우소 가는 길도 단풍으로 가득해 눈이 호사를 누렸는데, 다녀오는 길에 또 다른 붉은 것에 시선이 닿았다. 나물을 씻거나 조리할 때 쓰는 큰 플라스틱 원형 바구니인데, 중간에 해진 부분을 다른 플라스틱으로 덧대어 꼼꼼하게 짜깁기 한 것이다. 스치듯 지나친 바구니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무엇이든 쉽게 버리고 쉽게 구하는 세상, 흥청망청거리지는 않았으나 절약이 미덕인 옛 시절을 잠시라도 잊은 것을 상기시키려는 듯 바구니가 찰나의 깨우침을 주었다. 물자의 소중함이 인간을 지키고, 지구를 보호하는 첫걸음임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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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도리사에서 깨우친 것들, 배우고 익히고 생각한다.
ⓒ 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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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도리사 경내를 걷다 보니 절로 깨달음을 주는 문구가 곳곳에 있었다. 특별하게 새로운 문장이 아닌데도 나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는 문장의 힘을 경험했다.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말며 자유로워질 것을, 하루하루의 삶을 소중히 감사하게 여길 것을 도리사의 불심이, 풀꽃 민들레가 가르치고 있었다. 요즘 나에게 꼭 필요한 부처님 말씀이었다.
도리사(桃李寺)는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알리기 위해 지은 신라 최초의 절이다. 수행처를 찾던 중 겨울인데도 복숭아와 오얏꽃(자두나무꽃)이 활짝 핀 이곳을 좋은 터라 여겨 절을 짓고 복숭아(桃)와 오얏(李)을 따와 도리사라 이름 지었다고.
4세기경 신라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토속신앙이 강한 나라여서 불교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아도화상은 법당을 지을 수 없어 모례라는 인물의 집에 머물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고 어려운 이를 도우며 불교의 포교에 힘써 얻은 성과라 한다. 그러다 신라의 공주가 병이 들었는데, 어떤 약도, 무속도 소용이 없다가 아도화상이 건넨 향낭으로 공주의 병을 고칠 수 있게 되자 이 기적으로 신라 왕과 백성이 불교를 믿기 시작했다고.
단풍으로 가득한 계단을 오르니 단풍 빛깔의 설선당이 보이는데 각종 법회와 신행 활동이 이루어지는 강당으로 사용하는 건물이란다. 설선당의 벽면과 기둥이 마치 노랑, 빨강 단풍잎 같아 주위 나무와 어우러져 한 무더기 꽃 단풍 같았다.
사실 이때 길을 잃었다. 너무 단풍에 취해 사진 찍기 바빴을까? 화엄석탑 쪽에 있었던 답사 일행을 찾지 못해 수분 간 헤매다 본 것은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얼굴무늬 수막새였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된 둥근 형태의 와당을 의미하는데 도리사 범종각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설선당을 뒤로 여러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건축물, 적멸보궁이 나온다. 내부에 들어가니 부처님 대신에 그 너머 유리창을 통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사리탑이 보인다. 이 사리는 1977년 극락전 뒤편에 있는 석옹탑에서 금동육각사리함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빛이 영롱하고 찬란한 타원형 모양으로 모든 중생에게 불심을 타오르게 하는 성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태조선원은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다. 내부에 1931년에 조성된 석가모니불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훌륭하신 분들이 이곳에서 스님에게 글을 배웠는데, 야은 길재 선생과 성철 스님이 정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정면에 걸린 '태조선원' 편액은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인 오세창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 도리사 태조선원, 스님들이 정진하는 곳이다.
ⓒ 한현숙
석종형 부도의 모습을 한 극락전 앞 세존사리탑을 보았다. 석적사 터에 있던 옛 탑에서 발견된 사리와 금함을 도리사에 사리탑을 조성하여 모신 것이라 한다. 1977년 도굴로 인해 흩어져 있던 사리탑을 법성, 상륜스님의 원력으로 복원하던 중 부도 밑에서 금동육각사리함이 발견되었고, 그때 발견된 사리가 아까 언급한 적멸보궁 세존사리탑에 봉안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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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현숙
서대에 도착해 직지사의 유래를 확인했다. 날이 흐리고 구름이 끼어서 직지사 방향만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었지만, 아도화상이 이곳 서대에 올라 서쪽의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곳에 훌륭한 터가 있는데 그곳에 절을 지으면 불교가 흥할 것이다'라며 바로(直) 가리킨(指) 곳이 직지사(直指寺)가 되었다 하니 그 유래가 참 신비로웠다.
금오서원
1시간 넘게 도리사에 머물며 단풍에 취하고, 불경에 깨달음을 얻고, 문화재의 유래에 감명을 받고 금오서원(金烏書院)으로 향하는 발길은 가벼웠다. 금오서원의 문루인 읍청루가 먼저 보였다. 우뚝 선 읍청루를 끼고돌아 들어가니 강당인 정학당이 보인다. 우리는 정학당을 중심으로 동재, 서재 양편에 앉아 퇴우헌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여말삼은(麗末三隱) 중 한 분인 야은 길재의 회고가에 고려에 대한 충성과 망국의 한이 서려있다. 금오서원은 길재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살아남은 곳이다.
▲ 야은 길재의 위패를 모신 금오서원, 정학당에 계율7가지가 걸려있다. 동재에 앉아 퇴우헌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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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당 강당에 걸린 편액에 쓰인 내용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정갈하고 엄중한 금오서원의 일곱 가지 계율, 지금 우리 학교에 걸어도 손색없이 잘 어울릴 내용으로 '이 칠금을 범한 자 이미 왔으면 되돌아가고 아직 오지 않았으면 아예 오지 말라'는 경고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말한 것처럼 고려 충신인 길재의 후학들이 훗날 조선 사대부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는데, 그들을 키운 학문의 보고, 인재 양성의 중심지를 돌아본 것이다.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돌을 가공해 벽돌처럼 흉내 내어 지은 석탑을 모전석탑이라 부르는데,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은 국보 130호로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은 천년의 역사를 지닌 모전석탑이다.
통일신라 시대 후기 혹은 남북국 시대로 추정이 되는 석탑으로 높이가 약 10미터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라고 한다.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 그리고 각 지붕돌은 계단식 층단 구조로 되어 있으며 1층엔 불상을 모셨던 감실이 남아 있다. 웅장하면서 단정한 세련된 조형미가 일품이라고 추앙받는 석탑이다.
퇴우헌 선생님의 극찬, 천년을 이어온 석조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탑을 돌며 여유롭게 감상했다. 기술적, 예술적, 종교적 가치를 두루 갖춘 귀중한 유산을 눈앞에서 보다니 감개가 새로웠다. 섬세한 조각과 층단의 균형감이 느껴지며 묵직하게 서있는 탑에게서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오층석탑, 높이가 10M인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높은 신라시대 모전석탑이다.
ⓒ 한현숙
마지막 답사지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를 찾았다. 금오서원에 위패를 모신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의 절개와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정면에 중국의 양청천이 쓴 글씨임을 알려주는 이름이, 뒷면에는 서애 유성룡이 쓴 지주중류의 뜻과 후학에게 전해주고픈 교훈이 새겨져 있다.
지주중류석은 중국 허난 성 성주에서 동쪽으로 40리 떨어진 황하의 중류에 있는 기둥 모양의 돌을 말하는데, 지주중류란 혼탁한 물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우뚝 서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려말 절의를 지킨 길재를 은유적으로 추앙한 것이다.
▲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지주중류비, 길재의 충절과 의리를 찬양한 비석이다.
ⓒ 한현숙
이 비석에는 갓이 없는데 천연의 바위인 지주를 뜻한다고 한다. 비석 하단부에는 '백세청풍(百世凊風)'이 있다는데, 현장에서는 찾아보지 못해 아쉬웠다. 백세청풍은 선비들이 선호하는 글귀로 백세토록 길이 전할 맑은 기풍을 뜻하며 선비가 지녀야 할 고고한 절개를 드러내는 말이다.
돈과 이익에 따라 수시로 움직이는 요즘 세태에 지조와 절개, 의리는 무엇으로 다가올까? 옳은 것을 따라 신념을 지키며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시련을 감수하며 노력하는 이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오늘 하루를 무엇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가? 많은 생각이 교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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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