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건 ‘일무소유’ 앨범 표지. 유튜브 갈무리


고인이 된 마왕 신해철의 노래 ‘그대에게’는 우리 세대의 애창곡이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그 노래는, 1980년대 후반 대학 입시를 앞둔 우리가 허구한 날 불러제꼈다. 그리고 1990년대가 되어 들어간 대학에는 ‘난 알아요’와 ‘교실 이데아’로 일약 대중가요계에 혁명을 몰고 온 ‘서태지와 아이들’을 추종하는 후배들이 들어왔다. 아주 까마득한 시절의 추억이고 노래들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엠비시(MBC) 대학가요제’가 13년 만에 부활했고, 그 첫 무대에서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흘러 바다신2릴게임 나오는 것을 봤다. 감개가 무량했다. ‘그대에게’는 젊은 가수들과 어느새 청년으로 자라난 신해철의 아이들이 경쾌하고 발랄한 목소리로 열창했다. 대학생이 된 신해철의 딸은 아빠의 팬들을 향해 “이제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슬퍼졌다. 어느새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중년이 되었을 만큼 세월이 무상하게 흘러버렸 바다이야기게임장 기 때문이다.
한국에 신해철이 있다면 중국에는 최건이
중국 친구 제트(Z)는 요즘 자주 마음이 울컥해진다고 했다. 단체대화방에 잘 나타나지 않는 그가 최근 어쩐 일인지 자주 ‘출몰’하더니 뜬금없이 “사는 게 뭔지…”라며 신세 한탄을 하곤 한다. 우스갯소리를 하는 날도 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중산층 가정 파산 3종 세 바다이야기무료 트가 뭔지 알지? ①대출받아 집을 샀다. ②자녀가 국제학교에 다니거나 국외 유학 중이다. ③아내가 전업주부다. 여기 해당하는 사람 있냐? 난 벌써 두 개나 해당돼. 3종 세트에서 하나가 빠졌어도 파산 직전이라고. 하나 더 보태자면 집에 전업자녀(全职儿女·경기침체로 청년실업이 증가하자 구직난 등으로 부모와 같이 살며 청소 등 집안일을 대신하고 생활비를 타 쓰 우주전함야마토게임 는 청년들을 일컫는 신조어)도 있어.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거야?”
Z는 유학까지 보낸 외동아들이 자리를 못 잡은 채 이리저리 떠돌고 있고, 오랫동안 땀 흘려 키워오던 사업도 더는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부부 사이는 친구보다 못한 룸메이트 관계처럼 변질했고 각자의 방에서 서로 안부도 잘 묻지 않는다며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 바다이야기게임방법 다”고 우는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진짜로 우는지 아니면 웃기려 하는 건지 혼자 땅바닥에 쓰러져 엉엉 우는 대머리 중년 남자의 이모티콘을 투척했다.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서 그저 낄낄대는 이모티콘으로 답을 대신하는 친구들을 향해 Z는 송년회 노래방 모임을 제안했다. 젊은 시절 즐겨 부르던 추억의 노래로 “우리의 흘러간 황금시대를 추모하자”는 거창한 구실을 갖다 붙였다. 이제 다시는 그런 ‘황금시대’는 오지 않는다며. 말을 마친 그는 마이크를 잡고 춤추며 노래 부르는 대머리 중년 남자 이모티콘을 투척했다. Z의 애창곡은 최건(중국명 추이젠)의 ‘일무소유’(一无所有)다.
Z는 1989년 9월 대학 신입생이 되었다. 시험 운이 없어서 삼수한 끝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재수까지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삼수를 시작할 때는 “창장강에 풍덩 빠져 죽고 싶을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고 한다. 또 떨어지면 “죽으리라” 다짐하고 꾸역꾸역 삼수생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는 머리가 번쩍 열리는 듯한 경험을 했다. ‘일무소유’를 듣던 날이었다. 라디오에서 그 노래를 듣다가 Z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하마터면 방문을 열고 뛰쳐나갈 뻔했다. 그는 몇 달 뒤 무사히 대학에 합격했고, 덕분에 창장강에 뛰어들 일도 없었다. 대신 그는 최건이 어디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조건 “뛰쳐나갔다”. 최건의 노래는 Z뿐만 아니라 그 시절 수많은 중국 청춘의 가슴을 들끓게 하던 ‘한 세대의 목소리’였다.
그 시절 ‘일무소유’를 떠올리는 중년들



가수 최건(중국명 추이젠). 한겨레 자료


1986년 5월9일, 베이징 공인체육관에서 ‘국제 평화의 해’를 기념하는 ‘백 명 가수 연창’(百名歌星演唱) 공연이 열렸다. 최건은 이 공연에서 록음악 ‘일무소유’를 불렀다. 중국 대중문화 역사상 처음으로 록음악이 공연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물었지, 네가 언제 나와 함께 떠날지/ 하지만 너는 항상 나를 비웃었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나는 너에게 내 꿈을 주고 싶었어, 그리고 내 자유도/ 하지만 너는 항상 나를 비웃었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이 노래는 당시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모른 채 방황하던 수많은 청춘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중국 유명 서점 단샹쿵젠의 창립자이자 작가인 쉬즈위안은 ‘슬픈 젊은이들’(那些忧伤的年轻人)이라는 책에서 당시 청년들 사이의 최건 열풍을 이렇게 묘사했다. “1980년대를 지나온 한 중년 인사는 최건을 이렇게 회상했다. ‘거리를 걷다가 나는 갑자기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쓰러졌다.’ 한 세대 전체가 그렇게 최건의 음악에 맞아 쓰러졌다.” Z도 바로 그 최건의 음악에 ‘맞아 쓰러진’ 세대 중 한 명이다. 그는 최건의 노래를 들으며 이를 악물고 영원한 패배자로 전락할 것만 같던 삼수 인생을 무사히 마쳤다.
최건의 ‘일무소유’는 1989년 ‘6·4 천안문(톈안먼) 사태’ 당시 천안문 광장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합창한 노래이기도 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벌어지던 서울과 전국 각지의 시위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김민기의 노래 ‘아침이슬’과도 같았다. 최건의 노래는 1989년이라는 시대의 우울과 절망을 통과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 무수한 중국 청년에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고 위무해줬다.
Z는 최건의 노래를 들으며 청춘의 한 시절을 통과해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 이상이 흘러 50대 중반이 된 지금, 그는 다시 거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1989년 최건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우울하고 슬픈 젊은이’였던 그는 세월이 흘러 다시 ‘우울하고 슬픈 중년’으로 돌아왔다. 차이가 있다면, 더 이상 그 시절 ‘일무소유’처럼 자신을 위로해주는 노래가 없다는 것.
공무원에 올인하는 고학력 ‘전업자녀’
10월 초 우한에서 만난 엘(L)은 한국 아이돌 세븐틴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다. 콘서트를 보기 위해 몇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쉴 새 없이 해서 모든 경비를 마련해 한국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세븐틴의 노래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세븐틴이 어떤 아이돌인지 몰랐다.(팬들이여 제발 용서하시라!) 세븐틴뿐만 아니라 대학생 딸이 좋아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가 내 눈앞에서 걸어간다고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는 조용필과 김광석, 신해철 정도가 열광할 수 있는 아이돌이다.
L은 24살로, 2024년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 취업을 못했다. 지금은 우한의 한 프랜차이즈 밀크티 가게에서 반나절 알바를 하고 있다. 대학 전공은 문과에서 가장 ‘핫’하다는 경영회계학이다. L은 중국 길거리에서 아무 대학생이나 붙잡고 전공이 뭐냐고 물어보면 문과 계열 전공자 열 명 중 절반 이상은 아마 경제, 경영, 회계학일 것이라고 했다. 시장화 개혁이 가속화되던 1990년대 중반 이후, 너도나도 사업을 한다며 ‘돈벌이 바다’(下海)에 뛰어들던 시절,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중 십중팔구는 ‘라오반’(사장)일 것이라는 우스개와 비슷하다. L은 “그렇게 핫한 학과를 졸업해도 결과는 무직”이라며 자신은 집안 형편이 별로라 요즘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신종 직업인 ‘전업자녀’도 불가능하다는 농담을 한다.
L은 알바를 마치고 남는 시간은 공무원시험 공부를 한다. 이 상태로라면 정규직 취업은 영 가망이 없을 듯해 자신도 ‘오징어 게임’식 생존경기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동영상 플랫폼과 소셜미디어에서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농사도 짓기 싫고, 회사에도 다니기 싫다. 나는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밈이 크게 유행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중국의 경기침체가 회복되지 못하면서 어떤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공무원만큼 안정적인 직업이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슬픈 시대를 풍자하는 밈이다.
쉬즈위안은 ‘슬픈 젊은이들’에서 2000년 이후 세대를 “이상이 없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무게에 눌려 숨조차 쉴 수 없는 세대”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 중국 청년들의 상태를 일본 ‘헤이세이(1989~2019) 시대의 실패자’로 비유하기도 한다. 헤이세이 시대를 살아온 당시 일본 젊은이들이 버블(거품)경제 붕괴 이후 고용불안과 실업이 일상화되자 대규모 ‘프리터족’(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파트타임·임시직 등 비정규직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으로 전환했듯이 지금 중국 청년들도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사다리라고 여기며 주식과 코인에 ‘올인’하고 사기인 줄 알면서도 고액 알바를 위해 캄보디아 등으로 떠나는 한국의 ‘엔(N)포 세대’도 마찬가지다.
‘나 같은 사람’에게 위로받는 젊은이들



중국 가수 마오부이가 ‘나 같은 사람’을 부르는 모습. 유튜브 ZJSTV 음악 채널 갈무리


밀크티 가게에서 알바하며 공시족이 된 L은 ‘일무소유’를 애창하며 청년에서 중년이 된 Z의 자식 세대다. ‘현실의 무게에 눌려 숨조차 쉴 수 없는’ 그들은 이상을 상실하고 현실을 ‘견디는’ 노래를 한다. L은 중국 가수 마오부이의 ‘나 같은 사람’(像我这样的人)도 좋아한다고 했다. 마오부이는 2017년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해 이 노래로 우승했다. 그의 노래는 L과 같은 현재의 ‘슬픈 젊은이들’ 사이에 큰 사랑을 받았다.
“나처럼 뛰어난 사람/ 반짝이는 삶을 살아야 했는데/ 어째서 이십여 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사람 바닷속에서 떠내려가고 있지/… / 나처럼 막막한 사람/ 나처럼 찾아 헤매는 사람/ 나처럼 평범하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 / 나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날 아껴주는 사람이 있을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북경만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