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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해야 가증스러운 최소한의 방주가 차려 보이는지.[슬기로운 미술여행 - 49] 코펜하겐 글립토테크
마침내 덴마크까지 왔습니다. 여름의 코펜하겐은 정말 지상천국처럼 보였습니다. 거장들의 랜드마크가 가득한 도시는 건축 실험실 같았고, 운하변은 수영을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코펜하겐을 꼭 가보라”는 말을 런던에서 정말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미술관이 이 도시에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스위스와 나란히 유럽 최고의 물가를 자랑하는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72시간 기준 155달러(23만원)인 ‘코펜하겐 카드’가 필수입니다. 25개의 뮤지엄을 무료입장할 수 있는 이 카드를 사면 본전을 뽑기 위해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더욱 열심히 달리게 됩니다. 덕분에 발이 땀이 날 정도로 돌아다니며 만난 10개의 덴마크의 미술관을 차례로 소개해보겠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글립토테크 미술관. ©김슬기
릴게임바다신2 칼스버그 맥주가 남긴 위대한 유산
가 보인다. ©김슬기"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27/mk/20251227142106413ochn.png" data-org-wid 바다이야기오리지널 th="700" dmcf-mid="fvbMQylwyj"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7/mk/20251227142106413ochn.pn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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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 꾸며진 겨울 정원. 카이 닐슨의 대리석 조각 <물의 어머니>가 보인다. ©김슬기
덴마크에는 국민 맥주가 있습니다. 갑자기 웬 맥주 타령이냐고요? 칼스버그 맥주 덕분에 탄생한 미술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역에서 가까이 위치한 도심 릴게임몰 중앙의 글립토테크(Ny Carlsberg Glyptotek) 미술관은 19세기 이름난 예술 후원자였던 칼 야콥센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칼스버그 양조장 창립자였던 칼 야콥센은 맥주를 팔아 축적한 재산으로 일군 미술품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1888년 글립토테크의 건설을 시작했죠. 열정적인 컬렉터였던 칼 야콥센은 3차원 예술이 인류의 근본적 조건에 가장 가깝다고 믿었습니다. 조각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한 이유였죠. 그는 파리에서 열리는 연례 전시회에서 그들의 작품을 직접 보며 동시대 프랑스 예술가들에게 존경심을 품게 됩니다.
로마 석관, 사막 도시 팔미라의 초상 흉상, 프랑스 조각상, 폼페이에서 발견된 로마 청동 조각상 복제품 등을 모으며 그의 컬렉션은 빠르게 확장됐고, 1887년부터 수집속도는 더 가속화됩니다. 그때 독일 고고학자 볼프강 헬비히를 알게 되었고, 이후 25년간 로마 고대 유물 수집에 자신의 대리인으로 참여하게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파리 살롱에서 작품을 계속 구매했고, 일부 프랑스 예술가들에게도 직접 작품을 의뢰했죠.
건축가 빌헬름 달러룹의 설계로 미술관은 1897년에 개관했습니다. 미술관의 상징이 된 겨울 정원은 1906년에 박물관 내부에 추가되었는데요. 미술관에 자연광을 비추는 이 공간을 코펜하겐 시민들은 특별히 사랑합니다.
야자수와 카이 닐슨의 조각 <물의 어머니>가 있는 겨울 정원이 장식하는 미술관의 입구는 창립자가 “평범한 박물관이 아니라 코펜하겐 사람들을 위한 오아시스”로 만들기 위한 고안으로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이라는 단어 대신 그리스어 glyptos(조각 또는 조각)에서 유래한 ‘Glyptotek’이라 불렀습니다. theke는 무언가를 수집하거나 전시하는 장소를 뜻합니다.
야콥슨은 “겨울에는 녹지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야자수를 보면 조각상들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겨울 정원을 내려다보는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먹는 호사는 놓치면 안됩니다. 여름에만 개방되는 글립토테크의 옥상 테라스도 도심의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야콥센은 1914년 타계하기 1년전 에드바르드 에릭센의 유명한 조각상 <인어공주>를 제작해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설립자의 마지막 유산인 셈입니다.
현재 글립토테크는 고대 유물과 19세기 덴마크 및 프랑스 조각 및 회화 등 1만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요. 컬렉션이 늘어나면서 증축이 필요했습니다. 덕분에 이 미술관에는 3명의 건축가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지게 됐습니다.
여름에만 개방되는 옥상 테라스. ©Ny Carlsberg Glyptotek
1906년 하크 캄프만이 이끈 확장 공사로 공간을 넓혔고, 헨닝 라르센 빌딩은 1996년에 글립토텍의 현대 회화 컬렉션을 위해 층축이 이뤄졌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모더니즘 건축의 전형처럼 보이는 이 신관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로는 고대 이집트 건축을 연상시키는데요. 이 경사로에는 특별한 작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일계 덴마크 조각가 크리스티안 레메르츠(Christian Lemmerz)의 조각 <죽음의 형상(Todesfigur)>(2012)이 고전 조각 컬렉션과 현대 미술 전시장을 나누는 분기점에 나홀로 서 있죠. 경사로의 카라라 대리석과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헨닝 라르센이 건축을 마친 뒤 기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두 명의 인간 형상이 거대한 천(드레이퍼리)에 의해 완전히 덮여 한 몸처럼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는 죽음이 지닌 ‘신비로움’과 ‘침묵’을 시각화한 것이죠. 순백의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했지만 죽음과 부패를 주제로 삼아 미와 소멸의 조각을 완성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텅 빈 껍데기처럼 보여 마치 ‘미술관의 유령’ 같은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실내 장식이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정평난 이 곳의 또 하나의 특징은 모든 방이 달리 칠해진 ‘색’입니다. 건축 이력을 전시해 놓은 꼭대기층의 방에는 각각의 전시실에 칠해진 색을 모두 펜톤 컬러로 설명해 놓기도 했습니다. 겨울 정원에서 2층의 전시장을 바라보면 다채로운 전시실의 색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디자인 강국다운 미술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hristian Lemmerz [Todesfigur], 2012 ©김슬기
덴마크 황금시대를 증언하는 왕실 사냥꾼 부인의 초상
안토니오 카노바의 [파리스 흉상]과 엘리자베스 예리하우-바우만의 회화 [어머니 덴마크] ©Ny Carlsberg Glyptotek
글립토테크는 화려한 건축물을 가득 채운 조각과 실내의 겨울 정원에 비하면 회화 컬렉션이 그리 화려하진 않은 미술관입니다. 근대 미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달러룹 빌딩입니다. 1층에는 글립토테크의 덴마크 컬렉션에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예술이 선별되어 전시되어 있죠.
여기에는 엘리자베스 예리하우 바우만, 옌스 율, 크리스토퍼 빌헬름 에커스베르크, 크리스텐 쾨브케, 요한 토마스 룬드바이, 마르티누스 뢰르비에, 페더 세베린 크뢰이어, 아스트리드 노악, 안네 마리 칼-닐센, 빌헬름 하메스회이, 에드바르드 바이가 포함됩니다. 덴마크 국민 화가들의 따뜻하고 정밀한 풍경화와 초상화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안토니오 카노바의 <파리스 흉상>과 엘리자베스 예리하우-바우만(Elisabeth Jerichau-Baumann)의 회화 <어머니 덴마크(Mother Denmark)>의 조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1851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덴마크를 의인화한 여성상으로 유명합니다. 스칸디나비아 전통 의상을 입은 금발의 여성이 고대 검을 들고 보리밭을 가로지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죠. 덴마크의 국가적 정체성과 낭만주의 시대의 이상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엘리자베트 예리하우-바우만 [Mistress of the King’s Hunt], 1879 ©Ny Carlsberg Glyptotek
최근 새롭게 이 미술관에 합류한 ‘신상’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예리하우 바우만(1819-1881)이 그린 이 초상화는 그의 딸 소피 다그마르 엘리자베스(1859-1944)를 묘사하고 있죠. 왕실의 사냥꾼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남편과 결혼한 어린 신부는 섬에 여름 별장을 짓고 이국적인 동물들을 방사하며 여름마다 파티와 사냥을 즐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폴란드 출신의 엘리자베스 예리하우 바우만은 그 시대에도 독특한 인물이었습니다. 국제적 취향을 지니고, 여행을 많이 했으며, 여성 권리의 옹호자였죠. 그는 예술가, 왕족, 정치인 등 다수의 초상화를 그리며 당대 덴마크 역사의 기록자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신상으로 살로몬 루벤 엔리케스의 <거울 앞에 서 있는 피렌체인>(1841)도 있습니다. 덴마크 황금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1820년대 이전에는 왕립미술 아카데미에서 남성 모델만이 누드 포즈를 취할 수 있었죠. 시대의 변화로 여성 누드 모델이 허용되면서 그림 속 플로렌스는 당시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글립토테크가 처음 소장한 살로몬 루벤 엔리케스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덴마크 미술관에서 소외되어 있던 작가는 이곳에 입성하면서 재평가될 기회를 얻게 된 겁니다.
살로몬 루벤 엔리케스 [거울 앞에 서 있는 피렌체인], 1841 ©Ny Carlsberg Glyptotek
덴마크의 사위 폴 고갱의 기쁨과 슬픔
폴 고갱 컬렉션의 방 ©김슬기
글립토테크는 1800년부터 1950년까지의 프랑스 인상주의 미술의 존재감도 돋보입니다. 덴마크의 여러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신기했던 점은 프랑스 미술을 향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딜가나 미술관에는 어김없이 꽤 체계적인 프랑스 근대 미술 컬렉션이 소장되어 있더군요.
폴 세잔, 에드가 드가,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베르트 모리조 등 당대 거장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예술가가 있습니다. 덴마크의 ‘사위’ 폴 고갱입니다.글립토테크는 고갱의 초기작부터 타히티 시절의 걸작까지 58점의 회화와 조각을 소장하고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고갱은 파리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잘나가던 시절, 덴마크 출신의 메테 소피 가드를 만나 1873년 결혼했습니다. 슬하에 5명의 자녀를 둔 고갱 부부는 1882년 프랑스 주식 시장 붕괴로 고갱이 실직하고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자, 1884년 처가가 있는 코펜하겐으로 온 가족이 이주하게 됩니다.
고갱에게 덴마크 시절은 인생의 가장 큰 암흑기이자, 역설적으로 그를 전업 화가의 길로 내몬 결정적인 시기가 됩니다. 고갱은 코펜하겐에서 방수 천 판매원으로 일했지만, 덴마크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덴마크인들이 프랑스 제품을 선호하지 않아 실적은 참담했습니다. 게다가 덴마크의 우울하고 추운 겨울 날씨와 보수적인 분위기, 그리고 처가의 냉대를 견디지 못했죠. 당시 그는 “가장 끔찍한 식인종도 덴마크 집주인보다는 낫다”라고 말할 정도로 덴마크 생활을 혐오했습니다.
폴 고갱 [코펜하겐의 눈], 1884 ©Ny Carlsberg Glyptotek
이 시기 그는 덴마크의 겨울 풍경을 담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코펜하겐의 눈>은 그가 이 도시에 도착해 맞은 첫 겨울에 그린 풍경화였죠. 콩베지 105번지에 있는 가족의 1층 아파트에서 본 가족의 안뜰 정원 전경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덴마크에서의 시간은 그가 다양한 주제를 탐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북구에서 화가로서도 인정받지 못했죠. 결국 1885년, 그는 가족을 덴마크에 남겨둔 채 홀로 파리로 돌아갔고, 이후 다시는 가족과 함께 살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갱이 그토록 싫어했던 덴마크는 현재 세계에서 고갱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나라 중 하나가 됩니다. 고갱이 떠난 후, 아내 메테가 남편이 보낸 그림들을 덴마크 컬렉터들에게 적극적으로 판매하면서 이 나라가 고갱 미술의 성지가 된 것입니다.
고갱이 타히티에서 그린 여인들은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그가 서구 문명에서 벗어나 찾고자 했던 ‘원시의 순수함’과 그 뒤에 숨겨진 ‘슬픈 현실’을 반영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의 무표정하고 권태로운 표정은 고갱이 기대했던 지상 낙원이 이미 사라졌음을 암시하고 있죠.
특히 <꽃을 든 타히티 여인>(1891)은 고갱이 타히티에 도착해서 그린 최초의 주요 초상화 중 하나입니다. 여인이 왼쪽 귀에 꽃을 꽂는 것은 “새로운 연인을 찾고 있다”는 타히티의 관습을 나타냅니다. 고갱은 이 그림을 완성한 후 프랑스로 보냈고, 이후 덴마크의 수집가가 구매하여 덴마크가 고갱 컬렉션의 중심지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고갱의 전시실 옆에는 나란히 일본-사모아 현대미술가 기하라 유키(1975년생)의 비디오 작품 이 상영되고 있더군요. 신선한 콜라보레이션이었습니다.
폴 고갱 [꽃을 든 타히티 여인], 1891 ©Ny Carlsberg Glyptotek
드가가 30년을 매달린 발레리나의 초상
드가의 [14세 무용수]와 나란히 전시 중인 [로비에서 연습하는 무용수들] ©Ny Carlsberg Glyptotek
글립토테크에서 만날 마지막 예술가는 에드가 드가입니다. 드가가 사망한 후, 그의 작업실에서 150점이 넘는 밀랍인형이 발견되었습니다. 유명한 조각품인 <14세 무용수>를 제외하면, 그는 밀랍 인형을 단지 작품을 위한 연습 작업으로 여겼습니다. 이중에서 72점은 작가의 후손들이 청동으로 주조했는데, 글립토테크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완전한 컬렉션을 보유한 박물관 중 하나입니다.
논란의 조각상 <14살 무용수>는 1949년 글립토테크의 프랑스 컬렉션에 합류했습니다. 당대에는 너무 어린 모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끔찍하다”는 비난과 “혁대적 시도”라는 평가를 모두 받았던 작품이었죠. 이 조각상은 원래 밀랍으로 만들어져, 허리에 튤 스커트, 진짜 인간 머리카락, 실크 리본, 리넨 구두, 면 상의를 입고 전시되었는데요. 드가의 사후에 원본 밀랍 조각은 청동으로 주조됩니다.
때마침 지난 여름에는 <드가의 집착(Degas‘ Obsession)>이란 특별전도 열리고 있었습니다. 드가의 수수께끼 같은 그림 <로비에서 연습하는 무용수들>을 파고들어 미완성처럼 보이는 이 작품의 비밀을 해독해냅니다. 불균일하게 칠해진 물감, 극단적으로 다른 톤, 그리고 부분적으로 덧칠된 인물의 그림자 등이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미술사학자 라인 클라우젠 페더슨 박사가 이끄는 광범위한 연구 프로젝트는 드가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일찍 이 그림을 시작했으며, 거의 30년에 걸쳐 작업했음을 밝혀냈죠. 그리고 덧칠된 그림 속에 숨은 무용수도 발견해냈습니다. 물감층의 단면을 보면 작품이 최대 14겹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죠. 드가는 반복적으로 재작업하고, 표면을 긁어내고, 인물 위에 덧칠하고, 새로운 인물을 덧붙였던 거죠. 따라서 <로비에서 연습하는 무용수들>은 그의 발레 작품 중 가장 초기작이자 동시에 마지막 작품으로 남을 수 있게 됐습니다.
런던에서 1년간 만나고 온 ‘유럽 미술관 도장 깨기’를 서울에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김슬기 기자가 유럽의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비엔날레 이야기를 매주 배달합니다. 뉴스레터 [슬기로운 미술여행]의 지난 이야기는 다음 주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museumexpress.stibee.com
마침내 덴마크까지 왔습니다. 여름의 코펜하겐은 정말 지상천국처럼 보였습니다. 거장들의 랜드마크가 가득한 도시는 건축 실험실 같았고, 운하변은 수영을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코펜하겐을 꼭 가보라”는 말을 런던에서 정말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미술관이 이 도시에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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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 꾸며진 겨울 정원. 카이 닐슨의 대리석 조각 <물의 어머니>가 보인다. ©김슬기
덴마크에는 국민 맥주가 있습니다. 갑자기 웬 맥주 타령이냐고요? 칼스버그 맥주 덕분에 탄생한 미술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역에서 가까이 위치한 도심 릴게임몰 중앙의 글립토테크(Ny Carlsberg Glyptotek) 미술관은 19세기 이름난 예술 후원자였던 칼 야콥센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칼스버그 양조장 창립자였던 칼 야콥센은 맥주를 팔아 축적한 재산으로 일군 미술품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1888년 글립토테크의 건설을 시작했죠. 열정적인 컬렉터였던 칼 야콥센은 3차원 예술이 인류의 근본적 조건에 가장 가깝다고 믿었습니다. 조각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한 이유였죠. 그는 파리에서 열리는 연례 전시회에서 그들의 작품을 직접 보며 동시대 프랑스 예술가들에게 존경심을 품게 됩니다.
로마 석관, 사막 도시 팔미라의 초상 흉상, 프랑스 조각상, 폼페이에서 발견된 로마 청동 조각상 복제품 등을 모으며 그의 컬렉션은 빠르게 확장됐고, 1887년부터 수집속도는 더 가속화됩니다. 그때 독일 고고학자 볼프강 헬비히를 알게 되었고, 이후 25년간 로마 고대 유물 수집에 자신의 대리인으로 참여하게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파리 살롱에서 작품을 계속 구매했고, 일부 프랑스 예술가들에게도 직접 작품을 의뢰했죠.
건축가 빌헬름 달러룹의 설계로 미술관은 1897년에 개관했습니다. 미술관의 상징이 된 겨울 정원은 1906년에 박물관 내부에 추가되었는데요. 미술관에 자연광을 비추는 이 공간을 코펜하겐 시민들은 특별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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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슨은 “겨울에는 녹지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야자수를 보면 조각상들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겨울 정원을 내려다보는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먹는 호사는 놓치면 안됩니다. 여름에만 개방되는 글립토테크의 옥상 테라스도 도심의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야콥센은 1914년 타계하기 1년전 에드바르드 에릭센의 유명한 조각상 <인어공주>를 제작해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설립자의 마지막 유산인 셈입니다.
현재 글립토테크는 고대 유물과 19세기 덴마크 및 프랑스 조각 및 회화 등 1만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요. 컬렉션이 늘어나면서 증축이 필요했습니다. 덕분에 이 미술관에는 3명의 건축가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지게 됐습니다.
여름에만 개방되는 옥상 테라스. ©Ny Carlsberg Glyptotek
1906년 하크 캄프만이 이끈 확장 공사로 공간을 넓혔고, 헨닝 라르센 빌딩은 1996년에 글립토텍의 현대 회화 컬렉션을 위해 층축이 이뤄졌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모더니즘 건축의 전형처럼 보이는 이 신관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로는 고대 이집트 건축을 연상시키는데요. 이 경사로에는 특별한 작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일계 덴마크 조각가 크리스티안 레메르츠(Christian Lemmerz)의 조각 <죽음의 형상(Todesfigur)>(2012)이 고전 조각 컬렉션과 현대 미술 전시장을 나누는 분기점에 나홀로 서 있죠. 경사로의 카라라 대리석과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헨닝 라르센이 건축을 마친 뒤 기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두 명의 인간 형상이 거대한 천(드레이퍼리)에 의해 완전히 덮여 한 몸처럼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는 죽음이 지닌 ‘신비로움’과 ‘침묵’을 시각화한 것이죠. 순백의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했지만 죽음과 부패를 주제로 삼아 미와 소멸의 조각을 완성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텅 빈 껍데기처럼 보여 마치 ‘미술관의 유령’ 같은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실내 장식이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정평난 이 곳의 또 하나의 특징은 모든 방이 달리 칠해진 ‘색’입니다. 건축 이력을 전시해 놓은 꼭대기층의 방에는 각각의 전시실에 칠해진 색을 모두 펜톤 컬러로 설명해 놓기도 했습니다. 겨울 정원에서 2층의 전시장을 바라보면 다채로운 전시실의 색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디자인 강국다운 미술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hristian Lemmerz [Todesfigur], 2012 ©김슬기
덴마크 황금시대를 증언하는 왕실 사냥꾼 부인의 초상
안토니오 카노바의 [파리스 흉상]과 엘리자베스 예리하우-바우만의 회화 [어머니 덴마크] ©Ny Carlsberg Glyptotek
글립토테크는 화려한 건축물을 가득 채운 조각과 실내의 겨울 정원에 비하면 회화 컬렉션이 그리 화려하진 않은 미술관입니다. 근대 미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달러룹 빌딩입니다. 1층에는 글립토테크의 덴마크 컬렉션에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예술이 선별되어 전시되어 있죠.
여기에는 엘리자베스 예리하우 바우만, 옌스 율, 크리스토퍼 빌헬름 에커스베르크, 크리스텐 쾨브케, 요한 토마스 룬드바이, 마르티누스 뢰르비에, 페더 세베린 크뢰이어, 아스트리드 노악, 안네 마리 칼-닐센, 빌헬름 하메스회이, 에드바르드 바이가 포함됩니다. 덴마크 국민 화가들의 따뜻하고 정밀한 풍경화와 초상화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안토니오 카노바의 <파리스 흉상>과 엘리자베스 예리하우-바우만(Elisabeth Jerichau-Baumann)의 회화 <어머니 덴마크(Mother Denmark)>의 조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1851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덴마크를 의인화한 여성상으로 유명합니다. 스칸디나비아 전통 의상을 입은 금발의 여성이 고대 검을 들고 보리밭을 가로지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죠. 덴마크의 국가적 정체성과 낭만주의 시대의 이상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엘리자베트 예리하우-바우만 [Mistress of the King’s Hunt], 1879 ©Ny Carlsberg Glyptotek
최근 새롭게 이 미술관에 합류한 ‘신상’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예리하우 바우만(1819-1881)이 그린 이 초상화는 그의 딸 소피 다그마르 엘리자베스(1859-1944)를 묘사하고 있죠. 왕실의 사냥꾼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남편과 결혼한 어린 신부는 섬에 여름 별장을 짓고 이국적인 동물들을 방사하며 여름마다 파티와 사냥을 즐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폴란드 출신의 엘리자베스 예리하우 바우만은 그 시대에도 독특한 인물이었습니다. 국제적 취향을 지니고, 여행을 많이 했으며, 여성 권리의 옹호자였죠. 그는 예술가, 왕족, 정치인 등 다수의 초상화를 그리며 당대 덴마크 역사의 기록자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신상으로 살로몬 루벤 엔리케스의 <거울 앞에 서 있는 피렌체인>(1841)도 있습니다. 덴마크 황금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1820년대 이전에는 왕립미술 아카데미에서 남성 모델만이 누드 포즈를 취할 수 있었죠. 시대의 변화로 여성 누드 모델이 허용되면서 그림 속 플로렌스는 당시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글립토테크가 처음 소장한 살로몬 루벤 엔리케스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덴마크 미술관에서 소외되어 있던 작가는 이곳에 입성하면서 재평가될 기회를 얻게 된 겁니다.
살로몬 루벤 엔리케스 [거울 앞에 서 있는 피렌체인], 1841 ©Ny Carlsberg Glyptotek
덴마크의 사위 폴 고갱의 기쁨과 슬픔
폴 고갱 컬렉션의 방 ©김슬기
글립토테크는 1800년부터 1950년까지의 프랑스 인상주의 미술의 존재감도 돋보입니다. 덴마크의 여러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신기했던 점은 프랑스 미술을 향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딜가나 미술관에는 어김없이 꽤 체계적인 프랑스 근대 미술 컬렉션이 소장되어 있더군요.
폴 세잔, 에드가 드가,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베르트 모리조 등 당대 거장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예술가가 있습니다. 덴마크의 ‘사위’ 폴 고갱입니다.글립토테크는 고갱의 초기작부터 타히티 시절의 걸작까지 58점의 회화와 조각을 소장하고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고갱은 파리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잘나가던 시절, 덴마크 출신의 메테 소피 가드를 만나 1873년 결혼했습니다. 슬하에 5명의 자녀를 둔 고갱 부부는 1882년 프랑스 주식 시장 붕괴로 고갱이 실직하고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자, 1884년 처가가 있는 코펜하겐으로 온 가족이 이주하게 됩니다.
고갱에게 덴마크 시절은 인생의 가장 큰 암흑기이자, 역설적으로 그를 전업 화가의 길로 내몬 결정적인 시기가 됩니다. 고갱은 코펜하겐에서 방수 천 판매원으로 일했지만, 덴마크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덴마크인들이 프랑스 제품을 선호하지 않아 실적은 참담했습니다. 게다가 덴마크의 우울하고 추운 겨울 날씨와 보수적인 분위기, 그리고 처가의 냉대를 견디지 못했죠. 당시 그는 “가장 끔찍한 식인종도 덴마크 집주인보다는 낫다”라고 말할 정도로 덴마크 생활을 혐오했습니다.
폴 고갱 [코펜하겐의 눈], 1884 ©Ny Carlsberg Glyptotek
이 시기 그는 덴마크의 겨울 풍경을 담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코펜하겐의 눈>은 그가 이 도시에 도착해 맞은 첫 겨울에 그린 풍경화였죠. 콩베지 105번지에 있는 가족의 1층 아파트에서 본 가족의 안뜰 정원 전경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덴마크에서의 시간은 그가 다양한 주제를 탐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북구에서 화가로서도 인정받지 못했죠. 결국 1885년, 그는 가족을 덴마크에 남겨둔 채 홀로 파리로 돌아갔고, 이후 다시는 가족과 함께 살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갱이 그토록 싫어했던 덴마크는 현재 세계에서 고갱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나라 중 하나가 됩니다. 고갱이 떠난 후, 아내 메테가 남편이 보낸 그림들을 덴마크 컬렉터들에게 적극적으로 판매하면서 이 나라가 고갱 미술의 성지가 된 것입니다.
고갱이 타히티에서 그린 여인들은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그가 서구 문명에서 벗어나 찾고자 했던 ‘원시의 순수함’과 그 뒤에 숨겨진 ‘슬픈 현실’을 반영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의 무표정하고 권태로운 표정은 고갱이 기대했던 지상 낙원이 이미 사라졌음을 암시하고 있죠.
특히 <꽃을 든 타히티 여인>(1891)은 고갱이 타히티에 도착해서 그린 최초의 주요 초상화 중 하나입니다. 여인이 왼쪽 귀에 꽃을 꽂는 것은 “새로운 연인을 찾고 있다”는 타히티의 관습을 나타냅니다. 고갱은 이 그림을 완성한 후 프랑스로 보냈고, 이후 덴마크의 수집가가 구매하여 덴마크가 고갱 컬렉션의 중심지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고갱의 전시실 옆에는 나란히 일본-사모아 현대미술가 기하라 유키(1975년생)의 비디오 작품 이 상영되고 있더군요. 신선한 콜라보레이션이었습니다.
폴 고갱 [꽃을 든 타히티 여인], 1891 ©Ny Carlsberg Glyptotek
드가가 30년을 매달린 발레리나의 초상
드가의 [14세 무용수]와 나란히 전시 중인 [로비에서 연습하는 무용수들] ©Ny Carlsberg Glyptotek
글립토테크에서 만날 마지막 예술가는 에드가 드가입니다. 드가가 사망한 후, 그의 작업실에서 150점이 넘는 밀랍인형이 발견되었습니다. 유명한 조각품인 <14세 무용수>를 제외하면, 그는 밀랍 인형을 단지 작품을 위한 연습 작업으로 여겼습니다. 이중에서 72점은 작가의 후손들이 청동으로 주조했는데, 글립토테크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완전한 컬렉션을 보유한 박물관 중 하나입니다.
논란의 조각상 <14살 무용수>는 1949년 글립토테크의 프랑스 컬렉션에 합류했습니다. 당대에는 너무 어린 모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끔찍하다”는 비난과 “혁대적 시도”라는 평가를 모두 받았던 작품이었죠. 이 조각상은 원래 밀랍으로 만들어져, 허리에 튤 스커트, 진짜 인간 머리카락, 실크 리본, 리넨 구두, 면 상의를 입고 전시되었는데요. 드가의 사후에 원본 밀랍 조각은 청동으로 주조됩니다.
때마침 지난 여름에는 <드가의 집착(Degas‘ Obsession)>이란 특별전도 열리고 있었습니다. 드가의 수수께끼 같은 그림 <로비에서 연습하는 무용수들>을 파고들어 미완성처럼 보이는 이 작품의 비밀을 해독해냅니다. 불균일하게 칠해진 물감, 극단적으로 다른 톤, 그리고 부분적으로 덧칠된 인물의 그림자 등이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미술사학자 라인 클라우젠 페더슨 박사가 이끄는 광범위한 연구 프로젝트는 드가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일찍 이 그림을 시작했으며, 거의 30년에 걸쳐 작업했음을 밝혀냈죠. 그리고 덧칠된 그림 속에 숨은 무용수도 발견해냈습니다. 물감층의 단면을 보면 작품이 최대 14겹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죠. 드가는 반복적으로 재작업하고, 표면을 긁어내고, 인물 위에 덧칠하고, 새로운 인물을 덧붙였던 거죠. 따라서 <로비에서 연습하는 무용수들>은 그의 발레 작품 중 가장 초기작이자 동시에 마지막 작품으로 남을 수 있게 됐습니다.
런던에서 1년간 만나고 온 ‘유럽 미술관 도장 깨기’를 서울에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김슬기 기자가 유럽의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비엔날레 이야기를 매주 배달합니다. 뉴스레터 [슬기로운 미술여행]의 지난 이야기는 다음 주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museumexpress.stib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