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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1월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사당(캐피털 힐)에서 베네수엘라 상황에 대해 상원의원들에게 보고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
"대통령님, 이 작전은 단 몇 시간 안에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법 집행자'로 남게 될 것입니다."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국 언론들은 마코 루비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떤 논리로 베네수엘라 작전을 설득했는지를 설명하며, 이런 가상의 대화를 설정했다.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지난 3일, 백경게임랜드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을 불과 몇 시간 만에 체포하는 작전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순간, 루비오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법 집행'으로 포장된 정권 교체
릴게임모바일
강력한 반공산주의자이자 '남미의 지배자'로 떠오른 루비오는, 트럼프 대통령의 '귀(Ear)'를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임지는 밴스 부통령 등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 내 고립주의 파벌이 해외 개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동안, 루비오는 마두로 축출을 '정권 교체 신천지릴게임 전쟁'이 아닌 '법 집행 조치'로 프레이밍함으로써 대통령의 판단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루비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현대판 먼로주의'를 가장 앞장서 실현하는 인물로 꼽힌다.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루비오를 대동해 기자회견에 나서며 공개적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과의 소통, 릴게임방법 미국 의회와의 교섭 역시 루비오가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루비오는 지난해 2월 국무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이례적으로 남미를 첫 해외 순방지로 선택했다. 미 국무장관이 통상 유럽이나 아시아의 동맹국을 첫 방문지로 택해온 관례와는 다른 행보였다.
당시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국무장관으로서 첫 해 오징어릴게임 외 순방지가 남반구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히스패닉계 국무장관인 루비오 개인의 관심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 정책의 상당 부분을 자국 인근 지역, 즉 서반구에 집중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반영한 선택이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2025년 12월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연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AFP연합
쿠바 혁명의 기억, 가족의 서사
루비오가 남미 독재 국가들에 뿌리 깊은 불신을 갖게 된 배경은 그의 출신과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우리 부모는 1956년 쿠바에서 미국으로 왔어요. 카스트로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가 집권하는 걸 지켜봤죠. 혁명이 낙원을 가져올 거라고 했지만, 폭정만 남긴 나라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 들으며 자랐습니다."
루비오의 자서전 '미국의 아들(An American Son)'은 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미 국무부 홈페이지에 실린 공식 소개에 따르면, 루비오가 공직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공산주의가 조국을 파괴하는 모습을 직접 겪은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971년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루비오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사회주의를 피해 자유를 찾아온 수백만 사람들의 이야기"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전전했다. 어린 시절 라스베이거스에 살던 시절, 아버지는 사막의 호텔에서 바텐더로 일했다. 어머니는 병원 청소부로 생계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어머니는 울다 잠들곤 했어요. 살아 계신지조차 걱정해야 했죠."
루비오의 아버지는 그가 10대가 되던 무렵, 종교의 힘으로 알코올 중독을 끊었다. 이 경험은 루비오에게 미국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나라라는 인식을 남겼다.
엘리트 코스가 아닌, 지역 정치의 출발
루비오는 두 차례 커뮤니티 칼리지를 거쳐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를 취득했다. 이후 마이애미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해 지역 기반의 법률가로 활동했다.
"시의회에 출마한 이유는 부모님 같은 사람들, 열심히 일하는 이민자들이 관료주의와 큰 정부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루비오는 워싱턴을 꿈꾸며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출발점은 마이애미의 골목과 시의회였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학창 시절은 오히려 루비오 정치의 정체성이 됐다.
주변부에서 성장한 경험, 쿠바계 이민자 사회의 정치적 기억,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실무적 욕구, 그리고 법보다 정치를 통해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이 그를 정치로 이끌었다.
특히 마이애미에서의 성장은 그의 정치적 신념과 기반을 형성했다. 마이애미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강경한 반(反)쿠바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의 다수 남미 이민자들은 망명과 투옥을 경험한 1·2세대들로, 남미 독재 정권에 극도로 적대적이다.
이 지역에서 쿠바에 온건한 태도를 보이는 정치인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루비오의 강경 노선은 이념적 선택이자 정치적 생존 전략이었다.
미국이 마두로를 체포한 이후, 마이애미 출신 쿠바계 미국인 전 공화당 하원의원 카를로스 쿠르벨로는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마코 루비오가 국무장관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지난해 8월 2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리틀 하바나 지역에서 방문객들이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AFP연합
"쿠바를 방치한 결과가 베네수엘라다"
루비오는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민주적으로 선출됐지만 민주주의를 파괴한 인물"로 규정해 왔다.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사유재산 몰수, 언론 탄압, 식량·의약품 부족 사태는 그에게 쿠바 혁명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루비오는 반복해서 선거 자체가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마이애미 시의원에서 출발해 플로리다 주의원, 연방 상원의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 남미를 외교 문제가 아니라 '자유와 독재 사이의 도덕적 선택'으로 규정했다.
2024년 한국과 쿠바가 수교를 결정했을 때, 루비오는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한국이 북한의 공격을 오랫동안 도와온 쿠바의 범죄 정권과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그의 반(反)쿠바·반공산주의 신념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루비오의 남미 세계관은 세 문장으로 요약된다.
▲ "중국·러시아·이란은 이 반구에서 나가야 한다."
▲ "독재와 타협하는 것은 미국의 가치를 버리는 것이다."
▲ "남미의 안정은 미국의 국경 안보와 에너지 자립에 직결된다."
대권 가도의 시험대
미국 상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20일 취임 선서를 한 지 99시간 만에 루비오 인준안을 가결했다. 루비오는 첫날부터 통과된 유일한 장관 후보자였다.
당시 민주당은 루비오를 자격을 갖춘 외교 정책 전문가로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나토 동맹 강화 등 주요 글로벌 현안에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루비오는 트럼프와 보조를 맞추며 미국의 대외 원조 인프라를 뒤흔들고,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 강제 시도부터 그린란드 점령 구상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종종 불안정한 정책 우선순위를 지지하면서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통령을 꿈꾸는 루비오에게 베네수엘라의 대선 가도는 정치적 자산이 될 수도,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바이든·오바마 행정부에서 라틴아메리카 연구를 담당했던 전 관료 후안 곤잘레스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그가 이 일을 해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서도 "상황이 꼬일 경우 루비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읽기]는 뉴욕 현장에서 미국의 정치·경제·산업 변화를 구조적으로 해석하는 분석 코너입니다. 숫자와 발언 너머에 있는 미국의 선택과 방향을 짚어, 한국 독자가 이해해야 할 핵심만 전달합니다. [미국읽기]를 편하게 받아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대통령님, 이 작전은 단 몇 시간 안에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법 집행자'로 남게 될 것입니다."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국 언론들은 마코 루비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떤 논리로 베네수엘라 작전을 설득했는지를 설명하며, 이런 가상의 대화를 설정했다.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지난 3일, 백경게임랜드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을 불과 몇 시간 만에 체포하는 작전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순간, 루비오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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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반공산주의자이자 '남미의 지배자'로 떠오른 루비오는, 트럼프 대통령의 '귀(Ear)'를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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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현대판 먼로주의'를 가장 앞장서 실현하는 인물로 꼽힌다.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루비오를 대동해 기자회견에 나서며 공개적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과의 소통, 릴게임방법 미국 의회와의 교섭 역시 루비오가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루비오는 지난해 2월 국무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이례적으로 남미를 첫 해외 순방지로 선택했다. 미 국무장관이 통상 유럽이나 아시아의 동맹국을 첫 방문지로 택해온 관례와는 다른 행보였다.
당시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국무장관으로서 첫 해 오징어릴게임 외 순방지가 남반구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히스패닉계 국무장관인 루비오 개인의 관심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 정책의 상당 부분을 자국 인근 지역, 즉 서반구에 집중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반영한 선택이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2025년 12월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연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AFP연합
쿠바 혁명의 기억, 가족의 서사
루비오가 남미 독재 국가들에 뿌리 깊은 불신을 갖게 된 배경은 그의 출신과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우리 부모는 1956년 쿠바에서 미국으로 왔어요. 카스트로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가 집권하는 걸 지켜봤죠. 혁명이 낙원을 가져올 거라고 했지만, 폭정만 남긴 나라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 들으며 자랐습니다."
루비오의 자서전 '미국의 아들(An American Son)'은 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미 국무부 홈페이지에 실린 공식 소개에 따르면, 루비오가 공직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공산주의가 조국을 파괴하는 모습을 직접 겪은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971년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루비오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사회주의를 피해 자유를 찾아온 수백만 사람들의 이야기"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전전했다. 어린 시절 라스베이거스에 살던 시절, 아버지는 사막의 호텔에서 바텐더로 일했다. 어머니는 병원 청소부로 생계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어머니는 울다 잠들곤 했어요. 살아 계신지조차 걱정해야 했죠."
루비오의 아버지는 그가 10대가 되던 무렵, 종교의 힘으로 알코올 중독을 끊었다. 이 경험은 루비오에게 미국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나라라는 인식을 남겼다.
엘리트 코스가 아닌, 지역 정치의 출발
루비오는 두 차례 커뮤니티 칼리지를 거쳐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를 취득했다. 이후 마이애미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해 지역 기반의 법률가로 활동했다.
"시의회에 출마한 이유는 부모님 같은 사람들, 열심히 일하는 이민자들이 관료주의와 큰 정부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루비오는 워싱턴을 꿈꾸며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출발점은 마이애미의 골목과 시의회였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학창 시절은 오히려 루비오 정치의 정체성이 됐다.
주변부에서 성장한 경험, 쿠바계 이민자 사회의 정치적 기억,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실무적 욕구, 그리고 법보다 정치를 통해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이 그를 정치로 이끌었다.
특히 마이애미에서의 성장은 그의 정치적 신념과 기반을 형성했다. 마이애미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강경한 반(反)쿠바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의 다수 남미 이민자들은 망명과 투옥을 경험한 1·2세대들로, 남미 독재 정권에 극도로 적대적이다.
이 지역에서 쿠바에 온건한 태도를 보이는 정치인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루비오의 강경 노선은 이념적 선택이자 정치적 생존 전략이었다.
미국이 마두로를 체포한 이후, 마이애미 출신 쿠바계 미국인 전 공화당 하원의원 카를로스 쿠르벨로는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마코 루비오가 국무장관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지난해 8월 2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리틀 하바나 지역에서 방문객들이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AFP연합
"쿠바를 방치한 결과가 베네수엘라다"
루비오는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민주적으로 선출됐지만 민주주의를 파괴한 인물"로 규정해 왔다.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사유재산 몰수, 언론 탄압, 식량·의약품 부족 사태는 그에게 쿠바 혁명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루비오는 반복해서 선거 자체가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마이애미 시의원에서 출발해 플로리다 주의원, 연방 상원의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 남미를 외교 문제가 아니라 '자유와 독재 사이의 도덕적 선택'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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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민주당은 루비오를 자격을 갖춘 외교 정책 전문가로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나토 동맹 강화 등 주요 글로벌 현안에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루비오는 트럼프와 보조를 맞추며 미국의 대외 원조 인프라를 뒤흔들고,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 강제 시도부터 그린란드 점령 구상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종종 불안정한 정책 우선순위를 지지하면서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통령을 꿈꾸는 루비오에게 베네수엘라의 대선 가도는 정치적 자산이 될 수도,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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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일을 해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서도 "상황이 꼬일 경우 루비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읽기]는 뉴욕 현장에서 미국의 정치·경제·산업 변화를 구조적으로 해석하는 분석 코너입니다. 숫자와 발언 너머에 있는 미국의 선택과 방향을 짚어, 한국 독자가 이해해야 할 핵심만 전달합니다. [미국읽기]를 편하게 받아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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