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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reelnara.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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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아홉! 열! 하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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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세며 가슴을 압박하는 내 손끝으로 뼈와 살이 함께 울리는 듯한 격렬한 충격이 전해진다. 고산의 공기 속에서, 차가워지는 선배의 몸에 억지로 생명을 릴게임온라인 불어넣으려는 필사적인 시도는 내가 오르려 했던 산의 험난함보다 더 감당하기 어렵다. 이 거대한 슬픔은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셰르파가 현지에 헬기 구조를 여러 번 요청했으나 당장 올 수는 없다고 한다. 셰르파에게 휴대폰을 받아 다급히 한국에도 전화해 보지만 신호는 가는데 응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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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다블람 베이스 캠프의 전경.
아마다블람을 마음에 심어준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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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체보다는 아마다블람 가는 게 더 좋을 거야, 너는 등반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 제안은 나를 더 깊고 높은 산의 세계로 이끄는 초대장이었다. 그렇게 아마다블람을 알게 되었고, 일사천리로 지난해 10월 원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원정팀은 박 선배와 나, 여성 팀원 한 분까지 포함해 셋으로 꾸려졌다.
우리는 체계적인 훈련을 할 여유가 없었다. 7,000달러가 훌쩍 넘는 원정 비용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내게는 거대한 벽이었기 때문이다. 한여름 무더운 폭염 속에서도 하루 두 라운드씩 뛰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캐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 7시가 훌쩍 넘었고 녹초가 되었지만 주저앉아 쉴 수 없었다.
두 명의 선배와 두 명의 셰르파, 그리고 나.
집 근처를 무작정 뛰거나, 헬스장에서 20분간 인터벌로 운동기구 '천국의 계단'을 밟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끔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동네 산을 뛰어오르기도 했다. 또래 여성들이 휴양지를 꿈꿀 때 나는 히말라야를 꿈꾸며 뙤약볕 아래에서 시간을 돈으로 바꿨다.
아마다블람 등반을 결정한 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산을 마주했다. 하지만 영상 속의 산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그 자태에 등반이 시작되기 전부터 압도당하고 말았다. 날카로운 바위 능선과 수직의 아이스월, 정상 아래 위태롭게 매달린 거대한 세락(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빙벽능선이자 눈처마)의 모습은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이 압도적인 산을 내가 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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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에 치른 메라피크(6,476m) 등반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를 남겼다. 메라피크에서 마주쳤던 박태준님이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몸을 회복하며 카트만두에서 박 선배와 김 선배가 올 날을 기다렸다. 6일 후 드디어 등반팀이 꾸려졌다. 선배들의 위로는 확실히 약이 되었다. 만난 기쁨도 잠시 우리는 다음날 루클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5인승 프로펠러기가 짧은 활주로에 비명을 지르며 내려앉을 때, 진짜 나의 원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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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1(5,800m)의 밤, 머리 위로 은하수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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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곧 저곳에 있겠구나.'
하늘로 뻗은 등반 루트. 캠프1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아마다블람 등반 경로는 크게 BC, 캠프1, 캠프2, 비상용인 캠프3을 거쳐 정상으로 이어진다. 첫 일정은 고소 적응을 위해 캠프1까지 올라가 하룻밤을 자고 내려오는 것이다. 캠프1에서 사용할 장비와 짐을 직접 가지고 올라야 하는 상황, 이미 메라피크에서 짐을 온전히 짊어지고 올랐던 경험이 있는 나는 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60대 중반인 두 선배가 마음 쓰였다. 조심스럽게 고소 포터를 고용하는 게 어떻겠냐고 여쭈었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두 분은 직접 짐을 메고 오르겠다고 결정했다. BC에서 캠프1까지 왕복 6km. 고산의 공기 속에서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이미 고소에 어느 정도 적응해 있던 나는 무난하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지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두 분은 눈에 띄게 힘겨워했다. 사투 끝에 캠프1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캠프2까지 등반 훈련을 하고 내려가도 좋았겠지만, 포터를 쓰지 않아 캠프1의 장비를 다 가지고 갈 수 없었던 우리는 필요한 것이 부족해 다시 BC로 하산해야 했다.
내려온 뒤 두 분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고소 증세 때문인지 자꾸만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낮잠을 자면 더 힘들어지니, 저녁에 일찍 주무시라"고 신신당부 드렸다. 그 후 두 분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김 선배는 잠을 쫓으려는 듯 마치 동네 마실 나온 사람처럼 계속 밖을 걸어 다니며 몸을 움직이셨다. 반면 박 선배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가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초췌한 얼굴로 나타났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지만 선배들의 상태는 썩 나아지지 않았다. 고산의 공기는 두 분의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듯했다. 반면 나에게는 BC의 시간이 지독하게 느리고 심심했다. 견디다 못해 근처 다른 팀 텐트로 마실 나갔다. 그곳에서 뜻밖의 광경을 마주했다. 누군가 챙겨온 배드민턴 라켓이 보였다. 호기심에 라켓을 휘두르며 한판 놀이에 동참했다. 하지만 역시 해발 4,600m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불과 15분 정도 셔틀콕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캠프2로 가는 길의 병목 구간.
"아, 역시 무리는 금물이야."
웃음 섞인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결국 포기 선언을 하곤 커피 잔을 쥐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할 게 너무 없어 지루하기까지 한 이 평화로운 BC의 시간이, 사실은 거대한 산이 우리에게 허락한 폭풍 전야의 마지막 휴식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날씨 예보에 따라 정상 공격이 당겨졌다. 캠프1 가는 길, 김 선배는 컨디션이 나아졌지만 박 선배는 여전히 고전 중이다. 셰르파들이 만류했지만 박 선배는 멀쩡하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메고 한마디 던졌다.
"선배님, 건강히 돌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오늘 밤에도 못 주무시면 내일은 포기하세요."
선배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다음날 아침, 누구보다 일찍 준비를 마치고 등로 초입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에 대한 선배의 집념은 고소 증세마저 압도하고 있었다.
캠프1부터 난생처음 신어보는 삼중화를 신었다. 생각보다 걸을 만했다. 자신감을 얻으며 30분 정도 지났을까. 앞서가던 박 선배 바로 뒤를 따르던 김 선배의 다급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선배님! 자일 변경하세요! 로프 바꾸셔야 해요!""
고정 로프를 갈아 끼워야 하는 지점이었지만, 박 선배는 외침을 듣지 못한 듯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셰르파가 즉시 선배를 붙잡아 바닥에 눕혔다. 박 선배는 아무런 저항도, 움직임도 없었다. 방금까지 우리 눈앞에서 거친 숨을 내뱉으며 한 걸음씩 내딛던 박 선배는, 찰나의 순간 미동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일까?' 머릿속이 하얘졌다.
롱라인Long-line 구조. 구조대원이 헬기의 긴 로프에 몸을 맡기고 날아온다.
"이미 죽었습니다. 그만 하세요"
우리는 번갈아 가며 CPR을 멈추지 않았다. 희박한 공기 속에서 온 힘을 쏟아 붓는 우리의 사투를 지켜보던 한 외국인 등반가가 다가왔다. 자신을 의사라고 밝힌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절망을 건넸다.
"이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
그의 선고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을 후벼 팠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몸과 마음의 기운은 급격히 빠져나갔다. 우리는 캠프1으로 돌아갔고, 호출한 헬기는 3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싸늘해진 박 선배는 줄에 매달린 채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셰르파들은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면 안 된다"며 "등반을 포기해야 한다"고 우리를 설득했다. 결국 우리는 제대로 등반을 시도해 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고 후, 카트만두로 올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하산을 결정했다. 하지만 하늘은 나의 슬픔을 도와주지 않았다. 루클라의 지독한 안개 속에 갇혀 4일 동안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우리의 침통함처럼 하늘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카트만두로 가지 못해 유족들과는 전화 통화로만 안타까움을 전해야 했다. 우리는 사고 후 일주일이 되어서야 카트만두에 도착했으나, 선배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한국으로 떠난 뒤였다.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다는 부채감은 나를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다.
거울 속에는 검게 그을린 낯선 얼굴의 내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 한구석이 미칠 듯이 억울하고 답답했다. 내 체력이 모자라 포기한 것이 아니었기에 울분이 더 컸다. 그러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자꾸 머릿속에 계산기가 돌아갔다. 7,000달러라는 거금의 원정비, 피땀 어린 돈과 간절했던 준비가 이렇게 허망하게 날아가는 것 같아 눈물이 날 만큼 아까웠다. 원망은 죽음보다 끈질겼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선배가 원망스러웠다. 왜 나를 이 고통의 한복판에 홀로 남겨두고 먼저 떠나버린 것인지, 죽음 앞에 돈을 아까워하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지만, 그 비릿한 감정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신들의 정원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쿰부히말라야의 풍경.
이번 네팔에 있었던 기간, 히말라야의 차가운 품속에서 두 분이 더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한 달 사이 일어난 두 분의 사고 앞에 나는 무너졌지만, 그분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히말라야 능선 위에서 다시금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비록 몸은 떠났으나 그들이 산에 남긴 뜨거운 열정만큼은 결코 잊지 않고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 내려올 것이라 믿는다.
연초부터 흘린 땀방울도, 원정비에 매달린 지독한 현실도, 차가운 선배의 가슴을 압박하던 그 처절한 순간도 모두 아마다블람이 내게 준 진짜 정상이었다. 정상을 밟아야만 등반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내가 온 힘을 다해 도달하고 버텨낸 그 지점이 바로 나만의 정상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비극과 원망, 그리고 생존자의 부끄러운 고백까지 모두 배낭에 담아 산을 내려온다. 산은 내게 비릿한 슬픔만을 남기지 않았다. 후에 나를 걱정해 주고 다방면으로 응원해 준 사람들, 그 따뜻한 마음들을 얻었기에 나의 원정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오를 수 있는 곳이 정상임을 알았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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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다블람 등반 경로는 크게 BC, 캠프1, 캠프2, 비상용인 캠프3을 거쳐 정상으로 이어진다. 첫 일정은 고소 적응을 위해 캠프1까지 올라가 하룻밤을 자고 내려오는 것이다. 캠프1에서 사용할 장비와 짐을 직접 가지고 올라야 하는 상황, 이미 메라피크에서 짐을 온전히 짊어지고 올랐던 경험이 있는 나는 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60대 중반인 두 선배가 마음 쓰였다. 조심스럽게 고소 포터를 고용하는 게 어떻겠냐고 여쭈었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두 분은 직접 짐을 메고 오르겠다고 결정했다. BC에서 캠프1까지 왕복 6km. 고산의 공기 속에서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이미 고소에 어느 정도 적응해 있던 나는 무난하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지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두 분은 눈에 띄게 힘겨워했다. 사투 끝에 캠프1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캠프2까지 등반 훈련을 하고 내려가도 좋았겠지만, 포터를 쓰지 않아 캠프1의 장비를 다 가지고 갈 수 없었던 우리는 필요한 것이 부족해 다시 BC로 하산해야 했다.
내려온 뒤 두 분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고소 증세 때문인지 자꾸만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낮잠을 자면 더 힘들어지니, 저녁에 일찍 주무시라"고 신신당부 드렸다. 그 후 두 분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김 선배는 잠을 쫓으려는 듯 마치 동네 마실 나온 사람처럼 계속 밖을 걸어 다니며 몸을 움직이셨다. 반면 박 선배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가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초췌한 얼굴로 나타났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지만 선배들의 상태는 썩 나아지지 않았다. 고산의 공기는 두 분의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듯했다. 반면 나에게는 BC의 시간이 지독하게 느리고 심심했다. 견디다 못해 근처 다른 팀 텐트로 마실 나갔다. 그곳에서 뜻밖의 광경을 마주했다. 누군가 챙겨온 배드민턴 라켓이 보였다. 호기심에 라켓을 휘두르며 한판 놀이에 동참했다. 하지만 역시 해발 4,600m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불과 15분 정도 셔틀콕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캠프2로 가는 길의 병목 구간.
"아, 역시 무리는 금물이야."
웃음 섞인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결국 포기 선언을 하곤 커피 잔을 쥐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할 게 너무 없어 지루하기까지 한 이 평화로운 BC의 시간이, 사실은 거대한 산이 우리에게 허락한 폭풍 전야의 마지막 휴식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날씨 예보에 따라 정상 공격이 당겨졌다. 캠프1 가는 길, 김 선배는 컨디션이 나아졌지만 박 선배는 여전히 고전 중이다. 셰르파들이 만류했지만 박 선배는 멀쩡하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메고 한마디 던졌다.
"선배님, 건강히 돌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오늘 밤에도 못 주무시면 내일은 포기하세요."
선배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다음날 아침, 누구보다 일찍 준비를 마치고 등로 초입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에 대한 선배의 집념은 고소 증세마저 압도하고 있었다.
캠프1부터 난생처음 신어보는 삼중화를 신었다. 생각보다 걸을 만했다. 자신감을 얻으며 30분 정도 지났을까. 앞서가던 박 선배 바로 뒤를 따르던 김 선배의 다급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선배님! 자일 변경하세요! 로프 바꾸셔야 해요!""
고정 로프를 갈아 끼워야 하는 지점이었지만, 박 선배는 외침을 듣지 못한 듯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셰르파가 즉시 선배를 붙잡아 바닥에 눕혔다. 박 선배는 아무런 저항도, 움직임도 없었다. 방금까지 우리 눈앞에서 거친 숨을 내뱉으며 한 걸음씩 내딛던 박 선배는, 찰나의 순간 미동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일까?' 머릿속이 하얘졌다.
롱라인Long-line 구조. 구조대원이 헬기의 긴 로프에 몸을 맡기고 날아온다.
"이미 죽었습니다. 그만 하세요"
우리는 번갈아 가며 CPR을 멈추지 않았다. 희박한 공기 속에서 온 힘을 쏟아 붓는 우리의 사투를 지켜보던 한 외국인 등반가가 다가왔다. 자신을 의사라고 밝힌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절망을 건넸다.
"이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
그의 선고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을 후벼 팠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몸과 마음의 기운은 급격히 빠져나갔다. 우리는 캠프1으로 돌아갔고, 호출한 헬기는 3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싸늘해진 박 선배는 줄에 매달린 채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셰르파들은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면 안 된다"며 "등반을 포기해야 한다"고 우리를 설득했다. 결국 우리는 제대로 등반을 시도해 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고 후, 카트만두로 올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하산을 결정했다. 하지만 하늘은 나의 슬픔을 도와주지 않았다. 루클라의 지독한 안개 속에 갇혀 4일 동안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우리의 침통함처럼 하늘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카트만두로 가지 못해 유족들과는 전화 통화로만 안타까움을 전해야 했다. 우리는 사고 후 일주일이 되어서야 카트만두에 도착했으나, 선배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한국으로 떠난 뒤였다.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다는 부채감은 나를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다.
거울 속에는 검게 그을린 낯선 얼굴의 내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 한구석이 미칠 듯이 억울하고 답답했다. 내 체력이 모자라 포기한 것이 아니었기에 울분이 더 컸다. 그러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자꾸 머릿속에 계산기가 돌아갔다. 7,000달러라는 거금의 원정비, 피땀 어린 돈과 간절했던 준비가 이렇게 허망하게 날아가는 것 같아 눈물이 날 만큼 아까웠다. 원망은 죽음보다 끈질겼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선배가 원망스러웠다. 왜 나를 이 고통의 한복판에 홀로 남겨두고 먼저 떠나버린 것인지, 죽음 앞에 돈을 아까워하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지만, 그 비릿한 감정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신들의 정원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쿰부히말라야의 풍경.
이번 네팔에 있었던 기간, 히말라야의 차가운 품속에서 두 분이 더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한 달 사이 일어난 두 분의 사고 앞에 나는 무너졌지만, 그분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히말라야 능선 위에서 다시금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비록 몸은 떠났으나 그들이 산에 남긴 뜨거운 열정만큼은 결코 잊지 않고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 내려올 것이라 믿는다.
연초부터 흘린 땀방울도, 원정비에 매달린 지독한 현실도, 차가운 선배의 가슴을 압박하던 그 처절한 순간도 모두 아마다블람이 내게 준 진짜 정상이었다. 정상을 밟아야만 등반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내가 온 힘을 다해 도달하고 버텨낸 그 지점이 바로 나만의 정상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비극과 원망, 그리고 생존자의 부끄러운 고백까지 모두 배낭에 담아 산을 내려온다. 산은 내게 비릿한 슬픔만을 남기지 않았다. 후에 나를 걱정해 주고 다방면으로 응원해 준 사람들, 그 따뜻한 마음들을 얻었기에 나의 원정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오를 수 있는 곳이 정상임을 알았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