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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기자]
▲ 광양제철소 앞에서 바라본 태인도 모습
ⓒ 양진형
한국 김이 지난해 국내 수산식품 분야 에서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견인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김 수출액은 1조 61 무료릴게임 95억 원으로 수산식품 가운데 1위다. 조미김과 스낵, 간편식 등 다양한 형태로 제품군이 확대되면서 김은 미국·일본·중국은 물론 유럽과 중동 등 신흥 시장까지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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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인도 도촌마을의 '김 건조 과정' 벽화
ⓒ 양진형
그렇다면 이 같은 K-김 신화는 어디에서 바다이야기 시작됐을까. 겨울 댓바람이 잠시 주춤한 지난 1일, 우리나라 최초의 김 시식지로 알려진 전남 광양시 태인도(太仁島)를 찾았다.
섬진강 하구 기수지역에 있는 문어를 닮은 섬
태인도는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 건너편에 자리 잡은 섬이다. 기수지역에 위치한 덕분에 예로부터 김은 물론 우럭, 야마토게임예시 백합, 맛조개, 개불, 바지락 등 해산물이 풍부한 곳으로 이름났다. 태인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섬의 형상이 마치 문어가 여러 갈래 다리를 늘어뜨린 모습과 닮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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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인도 최고봉(삼봉산)에서 바라본 광양제철 전경
ⓒ 양진형
섬의 주봉인 삼봉산(해발 222m) 아래로 문어 발처럼 길게 뻗은 산줄기 사이에 용지·담안·궁기·도산 등 네 개의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한때 이곳에는 800여 가구가 살 정도로 섬이 활기를 띠었다고 한다.
태인도와 금오도 앞바다에는 과거 15개 안팎의 유·무인도가 흩어져 있었으나, 1981년 매립되며 약 500만 평 규모의 광양제철 부지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바다로 향하던 태인도의 산줄기 역시 매립토로 잘려 나갔다. 지금은 도산마을 앞 작은 포구만이 이곳이 한때 섬이었음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 태인도 도촌포구
ⓒ 양진형
궁기마을에 위치한 광양 김 시식지 기념관에 들어서서야 태인도가 과거 김 생산의 중심지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곳에는 김 시식을 최초로 시도한 김여익(金汝瀷·1606~1660)과 그 후손을 기리는 사당을 비롯해, 근대 광양김의 채취와 양식, 건조 과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최초의 김 시식자로 알려진 김여익은 누구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김'이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해의(海衣)'로 기록돼 있다. 전남 지역에서는 영광·장흥·나주·영암·진도·강진·해남·순천·보성·고흥·광양 등 11개 고을에서 생산된 토산품으로 소개돼 있다.
▲ 국내 최초 김 시식자로 알려진 김여익 초상화
ⓒ 양진형
1910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수산지>에도 광양의 주요 물산으로 쌀·면화·철기·소금·해태(김)를 꼽고 있으며, 이 가운데 해태가 가장 중요한 물산으로 기록돼 있다. 광양이 예로부터 김 산지로 명성이 높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궁기마을에 위치한 김시식지 기념관
ⓒ 양진형
김여익은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고,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뒤인 1640년 태인도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마을 앞 유목(流木)에 해의(海衣)가 착상한 것을 보고 밤나무 가지를 개펄에 꽂아 김을 최초로 양식했다.
▲ 김시식지 기념관에 있는 옛 광양 김 양식 광경
ⓒ 양진형
인조가 태인도에서 올라온 진상품 김을 맛본 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신하들이 바다 식물의 통칭인 해조(海藻)라고만 답했다. 이에 인조가 "김씨(金氏)가 발조한 것이니 성자의 음을 따 '김'이라 하라"고 명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 양식은 사라졌지만 '김부각'은 남았다
김 시식이 처음 이뤄진 곳은 용지마을 앞바다, 이른바 '애기섬' 일대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 자리에는 '김 시식지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용지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지금 태인도에서는 김 양식을 할 수 없지만, 완도나 진도에서 물김을 들여와 김부각을 만드는 집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 도촌마을의 벽화
ⓒ 양진형
실제로 도산마을 일대에는 400년 역사의 김부각을 판매한다는 표지판을 내건 집들을 여기저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태인도와 인근 섬들이 오랫동안 김 산업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 태인도 갯벌에서 갯것을 채취하는 섬 주민
ⓒ 양진형
태인도 사람들은 오랜 세월 김을 비롯해 전어, 숭어, 돔 등 풍부한 수산물로 삶을 이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바닷일 대신 제철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린다. 휴일임에도 공장지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에 목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과연 이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옛 태인도와 그 앞바다가 그대로 보존됐다면 청정 바다와 갯벌이 주는 혜택이 더 크지 않았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광양제철에 근무 중이라는 태인도 주민 A씨(61)는 "공장이 들어설 당시 일본에서 온 매립 기술자들이 '이렇게 살기 좋은 천혜의 환경을 메워 공장을 짓는 건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더라"며 말끝을 흐렸다.
태인도 삼봉산에서 내려다본 섬진강과 남해바다
궁기마을 김 시식지 기념관을 나와 섬 최고봉인 삼봉산으로 향했다. 삼봉산은 도산마을 태인초등학교 옆 도로를 따라 오를 수 있다. 해발 222m로 높지 않지만 산허리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 잘 정비돼 있어 걷기 좋다. 도촌마을 태인초등학교 옆으로 출발해 정상까지는 왕복 2.5km 정도로 난이도가 쉬운 코스이다.
▲ 삼봉산 오르는 길에 바라본 섬진강 하구 모습. 좌측이 백두대간 호남정맥의 시작지인 망덕산이다
ⓒ 양진형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동쪽으로는 남해군 망운산과 하동 화력발전소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수백 리를 흘러온 섬진강이 망덕포구와 배알도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 삼봉산에서 바라본 남해~여수 해역
ⓒ 양진형
그리고 남쪽으로는 광양제철소 너머 해역 사이에 남해 설흘산과 여수 영취산, 제석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바다 아래에서는 현재 남해와 여수를 잇는 해저터널 공사가 진행 중으로, 2031년쯤이면 두 지역은 하나로 연결될 예정이다.
윤동주 시인의 흔적이 남은 망덕포구
이제 태인도를 뒤로하고 망덕포구로 향한다.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550리 물길을 굽이돌아 이곳에서 바다와 만난다. 망덕산은 백두대간 호남정맥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 망덕포구 모습
ⓒ 양진형
망덕포구는 광양만을 한눈에 파수(경계하여 지키다)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망뎅이'라 이름하였고, 이를 한자음을 빌려 '망덕'이라 하였다. 옛사람들이 섬진강을 거슬러 다압, 구례, 곡성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 역할을 했다. 태인도에서 생산된 김도 이 포구를 거쳐 섬진강 내륙 하동장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북적이던 사람의 수런거림 대신 포구는 지나온 여정을 회상하는 듯 고요하다.
망덕포구 앞은 섬진강 물길이 풍성한 어장을 형성한 기수지역으로 가을 별미인 전어 산지로 현지에서 유명하다. 봄이면 섬진강 하구에서 자란 어른 손바닥만 한 벚굴의 집산지이기도 해서 즐비한 횟집에는 계절별로 많은 식객들이 찾아든다.
▲ 망덕포구 앞에 있는 정병욱 가옥
ⓒ 양진형
포구 앞에는 일제강점기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보존했던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이 위치해 있어 사계절 꾸준히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한 정병욱의 어머니가 일제강점기 이곳에 살면서 윤동주의 유고를 잘 보존해 준 덕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948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러한 망덕포구에서 태인도를 바라보며 새삼 깨닫는다. 강물도, 섬도, 포구도 어제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태인도에서 시작된 K-김의 역사는 지금도 바다와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맥동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광양제철소 앞에서 바라본 태인도 모습
ⓒ 양진형
한국 김이 지난해 국내 수산식품 분야 에서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견인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김 수출액은 1조 61 무료릴게임 95억 원으로 수산식품 가운데 1위다. 조미김과 스낵, 간편식 등 다양한 형태로 제품군이 확대되면서 김은 미국·일본·중국은 물론 유럽과 중동 등 신흥 시장까지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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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인도 도촌마을의 '김 건조 과정' 벽화
ⓒ 양진형
그렇다면 이 같은 K-김 신화는 어디에서 바다이야기 시작됐을까. 겨울 댓바람이 잠시 주춤한 지난 1일, 우리나라 최초의 김 시식지로 알려진 전남 광양시 태인도(太仁島)를 찾았다.
섬진강 하구 기수지역에 있는 문어를 닮은 섬
태인도는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 건너편에 자리 잡은 섬이다. 기수지역에 위치한 덕분에 예로부터 김은 물론 우럭, 야마토게임예시 백합, 맛조개, 개불, 바지락 등 해산물이 풍부한 곳으로 이름났다. 태인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섬의 형상이 마치 문어가 여러 갈래 다리를 늘어뜨린 모습과 닮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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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인도 최고봉(삼봉산)에서 바라본 광양제철 전경
ⓒ 양진형
섬의 주봉인 삼봉산(해발 222m) 아래로 문어 발처럼 길게 뻗은 산줄기 사이에 용지·담안·궁기·도산 등 네 개의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한때 이곳에는 800여 가구가 살 정도로 섬이 활기를 띠었다고 한다.
태인도와 금오도 앞바다에는 과거 15개 안팎의 유·무인도가 흩어져 있었으나, 1981년 매립되며 약 500만 평 규모의 광양제철 부지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바다로 향하던 태인도의 산줄기 역시 매립토로 잘려 나갔다. 지금은 도산마을 앞 작은 포구만이 이곳이 한때 섬이었음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 태인도 도촌포구
ⓒ 양진형
궁기마을에 위치한 광양 김 시식지 기념관에 들어서서야 태인도가 과거 김 생산의 중심지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곳에는 김 시식을 최초로 시도한 김여익(金汝瀷·1606~1660)과 그 후손을 기리는 사당을 비롯해, 근대 광양김의 채취와 양식, 건조 과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최초의 김 시식자로 알려진 김여익은 누구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김'이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해의(海衣)'로 기록돼 있다. 전남 지역에서는 영광·장흥·나주·영암·진도·강진·해남·순천·보성·고흥·광양 등 11개 고을에서 생산된 토산품으로 소개돼 있다.
▲ 국내 최초 김 시식자로 알려진 김여익 초상화
ⓒ 양진형
1910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수산지>에도 광양의 주요 물산으로 쌀·면화·철기·소금·해태(김)를 꼽고 있으며, 이 가운데 해태가 가장 중요한 물산으로 기록돼 있다. 광양이 예로부터 김 산지로 명성이 높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궁기마을에 위치한 김시식지 기념관
ⓒ 양진형
김여익은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고,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뒤인 1640년 태인도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마을 앞 유목(流木)에 해의(海衣)가 착상한 것을 보고 밤나무 가지를 개펄에 꽂아 김을 최초로 양식했다.
▲ 김시식지 기념관에 있는 옛 광양 김 양식 광경
ⓒ 양진형
인조가 태인도에서 올라온 진상품 김을 맛본 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신하들이 바다 식물의 통칭인 해조(海藻)라고만 답했다. 이에 인조가 "김씨(金氏)가 발조한 것이니 성자의 음을 따 '김'이라 하라"고 명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 양식은 사라졌지만 '김부각'은 남았다
김 시식이 처음 이뤄진 곳은 용지마을 앞바다, 이른바 '애기섬' 일대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 자리에는 '김 시식지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용지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지금 태인도에서는 김 양식을 할 수 없지만, 완도나 진도에서 물김을 들여와 김부각을 만드는 집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 도촌마을의 벽화
ⓒ 양진형
실제로 도산마을 일대에는 400년 역사의 김부각을 판매한다는 표지판을 내건 집들을 여기저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태인도와 인근 섬들이 오랫동안 김 산업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 태인도 갯벌에서 갯것을 채취하는 섬 주민
ⓒ 양진형
태인도 사람들은 오랜 세월 김을 비롯해 전어, 숭어, 돔 등 풍부한 수산물로 삶을 이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바닷일 대신 제철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린다. 휴일임에도 공장지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에 목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과연 이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옛 태인도와 그 앞바다가 그대로 보존됐다면 청정 바다와 갯벌이 주는 혜택이 더 크지 않았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광양제철에 근무 중이라는 태인도 주민 A씨(61)는 "공장이 들어설 당시 일본에서 온 매립 기술자들이 '이렇게 살기 좋은 천혜의 환경을 메워 공장을 짓는 건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더라"며 말끝을 흐렸다.
태인도 삼봉산에서 내려다본 섬진강과 남해바다
궁기마을 김 시식지 기념관을 나와 섬 최고봉인 삼봉산으로 향했다. 삼봉산은 도산마을 태인초등학교 옆 도로를 따라 오를 수 있다. 해발 222m로 높지 않지만 산허리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 잘 정비돼 있어 걷기 좋다. 도촌마을 태인초등학교 옆으로 출발해 정상까지는 왕복 2.5km 정도로 난이도가 쉬운 코스이다.
▲ 삼봉산 오르는 길에 바라본 섬진강 하구 모습. 좌측이 백두대간 호남정맥의 시작지인 망덕산이다
ⓒ 양진형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동쪽으로는 남해군 망운산과 하동 화력발전소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수백 리를 흘러온 섬진강이 망덕포구와 배알도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 삼봉산에서 바라본 남해~여수 해역
ⓒ 양진형
그리고 남쪽으로는 광양제철소 너머 해역 사이에 남해 설흘산과 여수 영취산, 제석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바다 아래에서는 현재 남해와 여수를 잇는 해저터널 공사가 진행 중으로, 2031년쯤이면 두 지역은 하나로 연결될 예정이다.
윤동주 시인의 흔적이 남은 망덕포구
이제 태인도를 뒤로하고 망덕포구로 향한다.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550리 물길을 굽이돌아 이곳에서 바다와 만난다. 망덕산은 백두대간 호남정맥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 망덕포구 모습
ⓒ 양진형
망덕포구는 광양만을 한눈에 파수(경계하여 지키다)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망뎅이'라 이름하였고, 이를 한자음을 빌려 '망덕'이라 하였다. 옛사람들이 섬진강을 거슬러 다압, 구례, 곡성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 역할을 했다. 태인도에서 생산된 김도 이 포구를 거쳐 섬진강 내륙 하동장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북적이던 사람의 수런거림 대신 포구는 지나온 여정을 회상하는 듯 고요하다.
망덕포구 앞은 섬진강 물길이 풍성한 어장을 형성한 기수지역으로 가을 별미인 전어 산지로 현지에서 유명하다. 봄이면 섬진강 하구에서 자란 어른 손바닥만 한 벚굴의 집산지이기도 해서 즐비한 횟집에는 계절별로 많은 식객들이 찾아든다.
▲ 망덕포구 앞에 있는 정병욱 가옥
ⓒ 양진형
포구 앞에는 일제강점기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보존했던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이 위치해 있어 사계절 꾸준히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한 정병욱의 어머니가 일제강점기 이곳에 살면서 윤동주의 유고를 잘 보존해 준 덕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948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러한 망덕포구에서 태인도를 바라보며 새삼 깨닫는다. 강물도, 섬도, 포구도 어제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태인도에서 시작된 K-김의 역사는 지금도 바다와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맥동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